저는 생협에서 유기농 식품을 이용한 지 8년 정도 되었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매장에 참기름 공급이 중단된 해가 있었습니다. 전해 여름에 역대 최장 장마로 참깨 농가가 수확량에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타까웠지만 금방 또 회복되어서 공급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먹을 기름이 참기름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들기름 뿐만 아니라 요즘은 얼마나 식용유가 다양하게 나오나요. 당분간 다른 걸로 대체해서 먹으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며칠 동안 참기름 없이 지내보니까요, 참기름이 음식에 정말 많이 쓰인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각종 나물을 무칠 때도 그렇고, 고소한 맛을 내는 양념으로도 참기름이 필요했어요. 고기를 찍어먹을 때도 참기름이 없으니 아쉬웠고요. 비빔국수나 새콤달콤한 쫄면에도 참기름을 넣는 것과 안 넣는 것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다양한 음식에 두루 필요한 게 참기름이더군요. 재공급되기를 기다리다가 저는 더 기다리지 못하고 마트에서 수입 참기름을 사 왔습니다.
한동안 제가 못 먹은 것은 주식도 아니고 그저 여러 가지 기름 중 하나였는데요. 이것 한 가지가 없으니까 식탁에 향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참기름 향은 참기름만이 낼 수 있더라고요.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 어떤 식용유로도 대체가 안 되었습니다.
평균 기온이 오르면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바나나를 재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 땅에서 길러 먹던 작물을 기후가 변해서 더 이상 키우지 못한다면 다른 걸 재배해서 먹으면 되는 걸까요? 한두 가지 없어지면 그것 좀 안 먹으면 되지, 생각하기 쉬운데요. 저는 그게 과연 그렇게 쉬울까 싶습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는 지겠지요. 하지만 참기름이 없이 살아본 경험으로 비춰보았을 때 평소 식탁에서 느끼던 즐거움의 일부를 잃는다면 너무나 아쉽고 허전할 것 같습니다.
세계적으로 기후가 변하면요, 우리나라 식량 생산에만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 않거든요. 최악의 경우에는 동시다발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식량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자기네 나라 먹기도 모자랄 경우에는 외국에 수출하던 것도 금지시키겠지요. 식량자급률이 중요하다는 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를 통해 또 한 번 느꼈습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국토도 줄고 농경지 역시 줄어들 수 있는데요. 기후로 식량생산이 줄어든다는 건 적은 식량을 가지고 국가 간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국가 안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기후위기와 농촌 고령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식량생산기술을 개발 중인 기업들이 있습니다. 컨테이너식 농장은 공간 활용성이 뛰어나고 생산성도 월등히 높습니다. 농사 지을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중동과 같은 국가에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1년 내내 햇빛 없이 실내에서 채소를 키우는 곳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란 채소가 실제로 유통이 되고 있지요. 저도 스마트팜에서 키운 양상추를 먹어봤는데요. 일반 농장에서 길러진 채소와 맛에서 차이가 없었습니다.
서울 지하철 역사 안에서도 공산품을 찍어내듯 채소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 기술만 있으면 기후변화 걱정이 없을까요? 완전한 대안은 아닙니다. 모든 채소를 이렇게 기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대안이 연구되고 있다는 게 다행이면서도 씁쓸합니다.
저는 햇빛도 쬐고 바람도 쏘이고 빗물도 먹고 땅에서 자란 채소를 먹고 싶은데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