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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an 10. 2019

필요없는 살 버리기 프로젝트




그날도, 오매불망 기다림 끝에 맞은 소중하고도 소중한 날이었다.







그대는 선샤인~ 나만의 햇 살~ ♪ 힘들고 지친 날~감싸줘요~ 워히 ~♬♪








회사에서 벗어나 오롯이 내가 되는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하고 싶거나 해야할 일들이 머릿속을 바쁘게 오고 갔다. 하고 싶은 거 다 해야지!


그랬는데




     
     










 
일요일 밤 내 손에 남은 것은 황망함이었다. 주말 내내 나 뭐...뭐한 거야???

24시간이 다 내 꺼였는데. 읽으려고 했던 책 한 장 안 펼쳐 보고, 그리고 싶다던 그림도 안 그리고
영어 공부도 안 했네!?

분명 나는 끊임없이 뭔가를 했기에 이건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냥 넘길 수 없어서 기억을 더듬어보기로 했다.
토요일은 약속이 있었고 기억도 대강만 나니까 넘어가고, 일요일 아침에 나 뭐했지?
아!





하루를 개운하게 시작했지. 맞아, 시작은 좋았어.








그러고 나서 업로드 해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잠깐 쉬었던 것 같아. 그러다가,



아침 먹을 시간이 되서 밥을 먹었어.









설거지를 하고 났더니 좀 쉬고 싶어졌지. 쉬면서 뭔가를 했던 것 같은데...아,

후식을 먹었구나.








그러고 나서 잠깐 멍을 때렸나? 무심코 손톱을 봤는데 길더라구. 깎았지.

그때 불연듯 인터넷 서점 카트에 넣어둔 책이 생각났을 거야. 평일엔 시간이 없으니까 컴퓨터를 바로 켰어.리뷰도 읽고 미리보기도 보고 꼼꼼하게 고르다가 <함께 구매한 책>을 순회-순회-하고 신간도 몇 개 클릭했지.

그러다가 포털사이트를 열어서 재밌는 기사도 몇 개 보고. 그렇게 모니터를 들여다 봤더니 눈이 피곤해서 중간에 쉬었어. 그냥은 아니고 이거랑.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책을 마저 골랐지. 주문을 하고 나니까 뿌듯하긴 한데 이게 뭐라고 왜 이렇게 힘들어.

 

힘드니까 10분만 쉬어야지. 그 다음엔 그림도 그리고 책도 보고 생산적인 걸 하는 거야.








그냥 있기 심심해서 SNS도 보고 웹툰도 보다보니

30분이 훌쩍 넘었을거야.









점심을 먹은 뒤 했던 건 치우고 설거지하고, 장보러 마트에 갔다가 화방에 들르고 옷가게랑 은행도 들른 거.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은 걸렸지 아마.

집에 와서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책상에 앉았는데







에너지 소진...
피곤하다...









누워서 조금 쉬었지.
그랬더니 힘이 나서 저녁을 먹었어.
식구들이랑 얘기하고 먹은 거 치우고, 양치질하고 세수하고 방청소하고, 벽에 다리 올린 채로 음악듣고, 그 다음에는...?








음악 들으며 잤다
.

.

.

.

.

.
.
.
.
.
.
니!!!








황금같은 일요일을! 말도 안 돼에!


    

     



놀랍게도 많은 시간을 먹고-치우고-쉬고-먹고-치우고-쉬기에 썼더랬다.








.
.
.
먹기 위해서 태어난 것인가.
그건 아닐 거잖아.
     







왜 맨날 시간이 없는가 했더니 먹는 데 시간을 너무 썼어. 그것만 줄였어도 하고 싶은 거 했겠다.     






나이 들면 이렇게 말하고 싶은데, 지금처럼 살아도 할 수 있을까?





아니요 이렇게 하다가는 먹다가 세월 다 가겠어요.


 


먹는 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  적어 보니 어마어마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장을 본다→
돈을 쓴다 →
그거 사려고 힘들게 일한다→
먹으면서 시간을 쓴다→
먹은 거 치우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먹고 나면 소화되라고 또 쉰다 →

먹는 족족 쓰레기가 나온다 →
환경에 해를 준다→
분리수거하고 밖에 내놓아야 한다 →

필요 이상으로 섭취한 칼로리로
살이 찐다 →
맞는 옷 사기가 힘들다
(=쇼핑시간이 많이 걸린다)  →
체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
그런데 더 먹는다 →
  
먹고 나면 자신감은 떨어지고 ↓↓
후회와 자괴감은 승천한다  ↑↑








이 악순환을 깨기로 했다.


"바빠서 OO 을 할 시간이 없어" 라는 말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으니까. '시간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동안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물건을 줄인 것처럼 내 몸을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미니멀 라이프에 이어서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기를 내 몸에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명,





주말을 늘 이렇게 보낸 것은 아니지만,  틈만 나면 먹는 습관에 길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중한 시간이 먹는 즐거움에 밀려난 이날의 작은 충격으로, 전부터 관심있던 소식(小食)을 다부지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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