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오매불망 기다림 끝에 맞은 소중하고도 소중한 날이었다.
회사에서 벗어나 오롯이 내가 되는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하고 싶거나 해야할 일들이 머릿속을 바쁘게 오고 갔다. 하고 싶은 거 다 해야지!
일요일 밤 내 손에 남은 것은 황망함이었다. 주말 내내 나 뭐...뭐한 거야???
24시간이 다 내 꺼였는데. 읽으려고 했던 책 한 장 안 펼쳐 보고, 그리고 싶다던 그림도 안 그리고
영어 공부도 안 했네!?
분명 나는 끊임없이 뭔가를 했기에 이건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냥 넘길 수 없어서 기억을 더듬어보기로 했다.
토요일은 약속이 있었고 기억도 대강만 나니까 넘어가고, 일요일 아침에 나 뭐했지?
아!
그러고 나서 업로드 해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잠깐 쉬었던 것 같아. 그러다가,
설거지를 하고 났더니 좀 쉬고 싶어졌지. 쉬면서 뭔가를 했던 것 같은데...아,
그러고 나서 잠깐 멍을 때렸나? 무심코 손톱을 봤는데 길더라구. 깎았지.
그때 불연듯 인터넷 서점 카트에 넣어둔 책이 생각났을 거야. 평일엔 시간이 없으니까 컴퓨터를 바로 켰어.리뷰도 읽고 미리보기도 보고 꼼꼼하게 고르다가 <함께 구매한 책>을 순회-순회-하고 신간도 몇 개 클릭했지.
그러다가 포털사이트를 열어서 재밌는 기사도 몇 개 보고. 그렇게 모니터를 들여다 봤더니 눈이 피곤해서 중간에 쉬었어. 그냥은 아니고 이거랑.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책을 마저 골랐지. 주문을 하고 나니까 뿌듯하긴 한데 이게 뭐라고 왜 이렇게 힘들어.
그냥 있기 심심해서 SNS도 보고 웹툰도 보다보니
30분이 훌쩍 넘었을거야.
점심을 먹은 뒤 했던 건 치우고 설거지하고, 장보러 마트에 갔다가 화방에 들르고 옷가게랑 은행도 들른 거.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은 걸렸지 아마.
집에 와서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책상에 앉았는데
누워서 조금 쉬었지.
그랬더니 힘이 나서 저녁을 먹었어.
식구들이랑 얘기하고 먹은 거 치우고, 양치질하고 세수하고 방청소하고, 벽에 다리 올린 채로 음악듣고, 그 다음에는...?
음악 들으며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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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놀랍게도 많은 시간을 먹고-치우고-쉬고-먹고-치우고-쉬기에 썼더랬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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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위해서 태어난 것인가.
그건 아닐 거잖아.
왜 맨날 시간이 없는가 했더니 먹는 데 시간을 너무 썼어. 그것만 줄였어도 하고 싶은 거 했겠다.
아니요 이렇게 하다가는 먹다가 세월 다 가겠어요.
먹는 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 적어 보니 어마어마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장을 본다→
돈을 쓴다 →
그거 사려고 힘들게 일한다→
먹으면서 시간을 쓴다→
먹은 거 치우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먹고 나면 소화되라고 또 쉰다 →
먹는 족족 쓰레기가 나온다 →
환경에 해를 준다→
분리수거하고 밖에 내놓아야 한다 →
필요 이상으로 섭취한 칼로리로
살이 찐다 →
맞는 옷 사기가 힘들다
(=쇼핑시간이 많이 걸린다) →
체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
그런데 더 먹는다 →
먹고 나면 자신감은 떨어지고 ↓↓
후회와 자괴감은 승천한다 ↑↑
이 악순환을 깨기로 했다.
"바빠서 OO 을 할 시간이 없어" 라는 말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으니까. '시간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동안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물건을 줄인 것처럼 내 몸을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미니멀 라이프에 이어서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기를 내 몸에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명,
주말을 늘 이렇게 보낸 것은 아니지만, 틈만 나면 먹는 습관에 길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중한 시간이 먹는 즐거움에 밀려난 이날의 작은 충격으로, 전부터 관심있던 소식(小食)을 다부지게 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