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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니언수프 Mar 28. 2019

3월, 결혼식 부페를 대하는 마음가짐

부페는 우아한 음식이 아니야


이제껏 수없이 많은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했다.

하나하나 셈할 수야 없지만, 체감상으로는 그동안 참석한 결혼식 중 대략 70% 정도가 부페식 식사였을 거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다. 남의 결혼식에 제일 중요한 건 아무래도 '밥이 맛있는지' 라고.

나는 웨딩홀 공간의 '세련됨' (달리 말하면 깔끔함, 또는 고급짐으로 치환할 수 있겠다)을 의외로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역시 '밥 맛있는가'는 중요도 3순위 안에는 드는 것 같다.


수많은 남의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가졌던 생각들이 '신부가 예쁜가, 결혼 당사자들은 행복해 보이는가, 공간이 멋진가, 부페 구색은 잘 갖춰졌는가, 무엇보다 거울 속 내가 예뻐보이는 날인가' 이런 것들이었다면, 가족의 결혼식은 실제 액션!이 들어가는 순간 그런 로맨틱한 생각이 산산조각 나는 현장이었다.


생각보다 정신없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


신랑 신부의 만남과 결혼까지 이어지는 스토리, 결혼 당사자가 읊는 서약 혼주의 축사에 딸려오는 눈물 한 방울은 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보다 현장을 생생하게 담은 사진과 동영상 찍어주기, 우리 엄마의 수정 메이크업, 대신 받은 축의금 봉투와 식권 및 포토테이블 사진 등등을 적재적소에 전달하기, 얼굴도 가물가물한 하객 분들과의 넉살 좋은 인사, 중간중간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담당까지. 이 모든 걸 보조 역할로서 누군가는 그때 그때 필요한 곳에 있어야 했다. (이런 걸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 나 아니면 거기 누가 있으랴.


부페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부페 식사를 하면서 앞에 앉은 사람과도 커뮤니케이션 하고, 엄마의 특별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친척 중 한 분이 어디 앉아 계시는 지 스캔하며, 중간 중간 찾아와 말을 거시는 친척분들과 이야기하고, 그러는 동시에 오가다 마주쳤을 때 모른 척 하지 않도록 하객들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눈이 바빴다.

이 모든 게 내가 가족으로서 완수해야 할 '일이다' 라는 부담감보다는 약간 본능에 따라 움직인 거긴 하지만.


그 결혼식 현장의 정신없음과 구색 갖춰진 부페 사이에서 선택과 집중은 자연스레 일어났다.

샐러드와 초밥부터 시작해서 더운 요리, 구운 고기, 파스타와 피자, 마지막으로 디저트와 커피까지 소화하던 내 한갓진 부페식사 루틴 같은 건 생략했다. 이 자리에서 그런 여유는 버려. 못 먹어 본 음식, 그릇 하나 더 필요한 음식은 잊어. 첫 번째 접시는 차가운 요리, 두 번째 접시는 더운 요리. 디저트와 커피는 패스.


그 와중에 맛?

음미라는 걸 하고 먹어야 맛있는 줄 알지.

샐러드도 생모짜렐라치즈와 방울토마토, 루꼴라가 들어간 샐러드는 양식이고, 연근과 흑임자, 유자청을 버무린 것은 한식이다. 연근 샐러드를 먹은 다음에 육회나 간장새우가 아닌 갑자기 토마토 파스타를 입에 넣는 건 맛의 스토리가 연결되지 않는다. 생연어를 아무 것도 안 찍고 그냥 먹는 건 왠지 심심하다. '이런 걸 따져 가며 부페 식사를 하다니 겁나 피곤한 인간이군.' 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내게는 조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자연스러운 욕망, 혹은 우아함을 내려놓는 현장이 가족의 결혼식이니, 내가 호스트인 언젠가의 결혼식은 오죽할까 싶다.


그동안 내가 너무 '결혼식'에 의미부여가 쩔었으며 낭만적인 감성에 젖어 있었다고 본다면 그 말이 맞다.

비교적 최근에야 남의 잔칫날에 눈물 훌쩍이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밥부터 먹고 와서 사진 찍자." 는 친구의 제안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어느 새 감성은 50% 덜어내고, 덜어낸 만큼 조금 더 어른이 된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다른 어느 날의 부페. 이젠 이렇게 양껏 못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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