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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니언수프 Jan 14. 2019

1월 겨울철 최애 식재료, 굴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를 대라면


굴은 난이도 상급의 식재료다.


"굴 드시나요?" 라고 질문했을 때 좋아한다, 는 반응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먹는다, 라고 반응하는 사람이 그나마 천엽 같은것보다야 많아서 다행인 식재료다.


조개와는 차원이 다른 물컹한 식감과 냄새 때문이다. 사실 굴향이라는 건 다른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제대로 표현할 말이 없다. 조개의 식감보다 부드럽고 미더덕처럼 독특한 향이 있다고까지는 할 수 있겠지만, 그 고유의 맛과 향을 대체 어설픈 텍스트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게다가 굴을 해체해 보면 가관이다. 하얗고 통통한 부위가 어쩌다 그 속이 드러나 버리면, 푸르검검한 내장을 보고 식욕이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뭐라 설명할 길 없는 독특함 때문에 나는 굴을 좋아한다. 굴향은 굴향이고, 굴맛은 굴맛이다.


나는 하루키언이라 할 만큼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그 사람의 유명한 소설들보다 에세이를 나는 훨씬 선호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숲>은 읽다 말았을 정도니까. 아무튼 지난 가을에 읽은 하루키의 책 중에 <잡문집> 이 있다. 상당 부분을 취미인 재즈에 할애하고 있지만 나는 재즈는 잘 모르니까 덜 몰입해 읽었다면, 그런 중에도 내 시선을 강하게 잡아끈 글 중에 '굴튀김'을 소재로 한 글이 있었다. '이자까야에서 파는 굴튀김 한 그릇으로 이렇게 멋진 글을 쓸 수 있다니, 캬, 프로는 프로다.' 할 수 밖에 없었던 글이다. 내가 이런 글들을 발행하는 건 어쩌면 지속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일까.

            


https://sea999sea.blog.me/221366696401



사실 집에서 튀김을 요리하는 건 녹록치 않은 일이다. 현실적으로 그 많은 양의 기름을 한번에 다 쓰면서, 튀기며 나오는 냄새에다 남은 기름이 너무나 처치곤란이라 가정에서 요리하기에는 경제적이지 못하다. 그런 이유로 집에서 마음껏 튀김 요리를 해본 적은 손에 꼽았고, 이번에도 역시나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을 해본다.


굴을 가루와 달걀에 입혀 부쳤다. 가루는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1:1로 섞어서, 비록 튀김은 아니지만 바삭한 느낌을 내 보고자. '굴전'이라고 해 두어야 겠다. 간은 특별한 것은 없고 달걀에만 소금을 살짝 간한다. 달걀을 풀 때 소금을 뿌리고 나서 저으면 잘 풀어지는구나, 하고 언제부턴가 깨달은 건 내 기분 탓인지 정말 일리가 있는지 알고 싶다. 튀김에서 타협한 메뉴인데도, 집에서 한번 전을 부치고 나면 공기에 진하게 떠도는 기름내에 당분간은 전 생각이 안 난다. 그게 호박전이든 동그랑땡이든 오늘의 굴전이든 상관이 없다.

프로답지는 못하지만, 노릇하게 구워지는 모양새를 보니 오늘의 굴전은 만족스럽다.  


괜히 이자까야에서 나오는 것처럼 양배추도 썰어 보고.


아무래도 나는 뜨겁고 얼큰한 국물 요리를 상당히 좋아한다. 그런 이유로 굴로 끓이는 국도 포기할 수가 없다. 실은 처음부터 국도 끓일 생각으로 같이 넣을 두부랑 청양고추도 사 왔다. 국물 요리를 할 때에 청양고추는 이제 혹시나 빠질까 서운할 정도다.


굴, 두부, 청양고추, 콩나물과 다진마늘을 조금 넣고 소금간을 해서 끓이는데, 육수를 내지 않아도 좋고 콩나물도 없어도 된다. 나는 식재료의 맛을 살려 줄 제대로 된 레시피를 보통 모른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고 (그러기엔 귀찮고) 어디서 먹어보긴 했는데 그때 그때 먹고 싶은 음식을 주로 이런저런 블로그를 검색해서 요리할 뿐이다. 그래서, 이 굴두부국도 좋은 레시피는 모르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이렇게 끓여 왔다.


이렇게 굴을 메인 재료로 해서 저녁 밥상이 차려진다.


추운 겨울 이후, 3월만 지나도 굴은 위험한 짐승이 되어 버린다. 한겨울에도 굴 때문에 식중독이나 노로바이러스 같은 걸로 한 차례 크게 앓는 경우가 꽤 있는데 날이 따뜻해지면 산란 때문에 독성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먹을 수 있을 때 한껏 즐겨 놓는 게 좋다.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굴밥을 지어 먹고도 싶고, 찜으로 먹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아주 신선한 굴을 사서 초장에 찍어 먹거나 서양식으로 레몬즙만 살짝 뿌려 먹는 것도 좋다. 감칠맛 나는 통통한 굴은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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