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선택 앞에 주저하거나 머뭇거리거나
흐린 날씨처럼 온몸에 습기를 머금고 축 처진 하루들이 이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두통이 시작됐고, 머릿속엔 안개가 자욱한 느낌마저 들었다.
매일 밤, 오늘은 일찍 자고 말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침대에 누우면 온갖 쇼츠와 릴스가
“이거 더 보지 않을래?”
“이거, 필요하지 않아?”
하며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게 새벽 세 시에 잠든 지 벌써 며칠째다.
그러는 동안 생일을 맞는 친구들을 위한 선물이 며칠째 장바구니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
더 적절한 건 없는지 유튜브와 검색을 오가며 고르고 또 고르다 결국 결제는 미뤄둔다.
사실 주저하고 있는 건 선물만이 아니다.
내게 필요한 물건들 역시 한 번에 결제하려고 담아둔 장바구니 앞에서 나는 지겨우리만치 망설이고 있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은 불안정한 수입 속에서 멍청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크지만
결국은 버리고 마는 불필요한 짐을 사지 않고 싶다는 마음에 더 가깝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비에 실패하지 않겠다는 목표는 적절한 가격의 오래 쓸 양품을 사는 대신
어정쩡한 가격의 저품질을 사버리게 만들기도 했다.
뭔가를 결정하는 데 유난히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된 건 최근 1년 사이에 더 심해진 것 같다.
‘결정장애’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아 의도적으로 피해왔는데,
우연히 결정피로(Decision fatigue)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계속 참거나 선택해야 하는 일이 이어지면 머리가 서서히 고갈되고,
우선순위가 흐려진 채 괜히 더 나쁜 선택을 하게 될 수 있다는 설명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싶은 걸 참는 일, 정리정돈처럼 사소해 보이는 선택들이 겹치면
어쩐지 오늘 같은 피로가 찾아온다는 것.
특히 코스트코나 다이소 같은 곳에서 느끼는 묘한 피로도 내가 더 샀는지, 덜 샀는지를 과도하게 점검해서가 아닐까 싶다. 계산대를 지나오면서도 마음 한편이 개운치 않은 이유다.
나는 ‘결정피로’라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어떤 감정에 이름이 붙는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이 비슷한 상태를 겪고 있다는 뜻이니까.
세상이 참 빠르다. 너무 빠르다.
내가 넘기는 릴스의 속도,
직장이란 곳에서의 유효기간마저도.
짧아진 해의 길이만큼 하루가 더 짧아진 것처럼 느껴지고,
나이만큼 세월의 속도를 체감한다는 말을 요즘은 유난히 실감하고 있다.
영포티가 된 87년생의 나는 확실히 예전보다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고 느낀다.
실패해도 되고 다시 해도 됐던 사회초년생 시절과 달리,
지금의 나는 그래서 실패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더 자주 몰아붙이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예순의 나, 팔순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아마 헛웃음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스물을 맞이했어도 나는 여전히 삶이 어렵다.
나의 결정피로가 여행을 망치려 했던 최근의 일도 떠오른다.
얼마 전 강릉커피축제 충동적으로 사고 싶어져 한참을 망설였던 세 가지 물건.
당장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한 바퀴를 돌고 나서도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다.
‘이걸 사고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까.’
결국 실반지를 골랐다.
세 개를 세트로 사는 대신 두 개만 샀고, 육포와 핸드드립 포트는 내려놓았다.
(육포는 다시 생각해도 정말 맛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후회하지 않는다.)
가치 없이 쓰게 될까 봐 주저했었지만, 계산대에서 머뭇거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왕 산 거라면 아끼지 말고 자주 쓰자! 뽕(?)을 뽑자!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생각보다 자주 끼던 반지 중 하나는 추운 날씨 탓에 손에서 빠져 잃어버렸고,
다른 하나는 이번 울산 방문에서 깜빡 두고 와버린 엔딩.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제 값을 다할 만큼 사용하겠다고 마음먹는 일, 그럴 자신이 없다면 과감히 내려놓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거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