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만난 대표님과 나의 환절기, ‘기적’을 선물하며
2월이 모두 지나며 한껏 기온이 오른 요즘을 느낀다. 그렇다고 봄이 코앞까지 온 것 같지는 않다. 2월의 마지막 밤, 추위를 핫초코로 녹여가며 셀프 세차를 두 시간 반 동안 했다. 묵은 때를 벗기듯 후련해했지만, 오늘 내린 비로 인해 우리의 세차가 결국 기우제였음을 알게 된다. 그다지 반갑지 않은, 지나가는 계절의 비였다.
한 달보다 며칠 적은 2월에도 돌이켜보면 많은 일이 있었다. 두 번째 조카가 태어났고, 이름을 짓느라 사돈댁까지 “손주의 이름에 투표하세요!” 같은 이벤트에 며칠 동안 단톡방이 들썩였다. 오늘에서야 남동생은 아들 둘의 아빠가 되어 출생신고를 마쳤다. 딸 같은 아들은 없다지만, 접신한 것처럼 한 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첫째 조카와 달리 두 번째 조카는 얌전한 편이란다.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얌전하다니 더 희망이 생긴다. 첫째는 내가 고모로서 무한한 사랑을 주고 싶은 존재였는데 두 번째 조카는 또 나에게 어떤 존재가 될까.
퇴사했던 사회적 기업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을 만났다. 그것은 '화해'라기보다 애정했던 곳의 사람들과 나누는 '해후'에 가까웠다. 특히 대표님과의 만남은 새로 설립하시려는 회사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고민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 귀한 시간이었다.
사무실 근처 꽃집에 들러 파란 장미 한 송이를 샀다. 꽃말이 뭐냐는 질문에 사장님은 '기적'이라고 답해주었다. 1년 전 퇴사한 여직원에게 꽃을 받는 경험이 생소하실 것 같았지만, 사무실이 마땅치 않은 시점에 그저 화분보다 가벼울 것 같아 선택한 선물이었다. 대표님은 "마침 기적이 필요한 지금이었다"며 고마워하셨다. 나는 2만 원짜리 파란 장미를 선물했지만, 사실은 내게도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그 꽃을 골랐던 시간과 마음을 되돌려 받은 듯했다.
며칠 뒤엔 오랜만에 만난 장애인 직원과 영화를 봤다. 가끔 이렇게 고민이 생기거나 안부를 물어오는 것이 내심 고맙다. 전에는 밥을 사주고 집까지 데려다주곤 했는데, 이번엔 그에게 음료을 얻어마시고 집에 데려다주며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라떼 아트를 더 잘하고 싶다며 수줍게 웃는 그는 어느새 팀의 에이스가 되어 있었다. 실수도 많았지만 능숙하게 커피를 뽑기까지 가르친 보람이 있었다. 2년 가까이 한 곳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그가 나는 늘 기특하다. 기적 같은 일은 어쩌면 이미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오랜만에 친한 동생으로부터 안부 전화를 받았는데 내 목소리가 좋다고 했다. 나는 이력서를 쓰며 담담히 3월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좋은 상황이랄 것은 딱히 없었고, 마치 봄을 맞이하기 싫은 사람처럼 일주일의 며칠은 땅속에 파묻혀 있고 싶어 하기도 했다.
이번 명절에는 본가에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엄마의 컨디션이 신경 쓰여 내려갔다. 그곳에서 또다시 내게 책임을 전가하는 아빠에게 사자후를 지르고 왔다. 그러고 나면 늘 죄책감이 몰려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마흔이 된 나는 이제 경계를 긋고 나를 보호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부모님의 어긋난 사랑이나 나를 자책하게 만드는 내면의 음성으로부터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여린 마음이 강해지길 바라왔다.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무른 표면 같아서 잘 긁히고 흠집이 나는지 원망스러운 적도 있었다.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무수한 생채기가 난 만큼 다른 사람의 상처도 볼 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이제야 나를 사랑하고 지키게 된 것 같다. 나를 제일 사랑하지 못했던 것은 결국 내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 동생에게 이번 명절의 에피소드를 말하면서 내 사자후 때문에 도리어 내가 성장했음을 깨달았노라고 고백했다.
어떤 퇴사자의 이야기에서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무망감(無望感)'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희망도 절망도 없는,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감정. 나도 그랬다. 제일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내게 권한도 없고 미래도 그려지지 않는 무력감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내게 어떤 일이 주어지더라도 그 안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아갈 힘이 있다는 것을. 내가 소진될 구조나 사람에게서 내면의 경고를 알아차리고 멈출 줄 안다. 인내해야 할 것과 나를 방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임을 안다.
조금 성숙해진 것에 대한 기쁨, 나는 빛나는 별인 줄 알았는데 반딧불이더라는 인정, 그런 작은 빛이라도 썩 괜찮다는 수용. 근거 없지만 왠지 모를 자신감과 희망이 차오른다. 나는 때로 찌질하고 별로지만, 나아지고 있고 건강해지고 있다.
이런 환절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면역이다. 그것이 신체든 마음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