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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전 Oct 03. 2019

해군 장교 이야기 #18 군항제 2

우리가 즐겼던 벚꽃축제

경화역에서

  아침이 밝았다. 나와 동생은 미리 준비했던 상품들과 판매를 위한 부가적인 준비물을 차에 싣고 경화역을 향했다. 경화역은 과거에 운행했던 기차역으로 현재는 운행하지 않지만 공원으로 조성되어 진해의 대표적인 벚꽃 관광지로 손꼽힌다. 우리가 경화역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7시가 되기 전이었지만, 부지런한 관광객들은 이미 경화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준비한 책상을 펴고 우리가 만든 핀과 캔들, 디퓨저를 펼쳐놓고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지나가던 사람들은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우리가 만든 상품들을 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판매가 이루어졌을 때 느꼈던 감동을 지금도 기억한다. 이는 우리의 생각과 노력이 세상에 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였으며, 몇 주간 상품을 만들며 판매를 준비했던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보상해주었다. 상품을 팔면서 손님들에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찬을 듣거나 젊은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주는 말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런 사소한 말들은 우리가 더 힘을 내고 즐겁게 장사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다. 주말이었고 우리가 상품을 판매했던 장소는 부대 근처였기 때문에 장사를 하면서 내가 아는 군인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디퓨저를 산 선배에게 캔들을 같이 주기도 했고 데이트를 하는 후배에게 핀을 팔면서 폴라로이드로 커플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후배가 진심으로 사고 싶어 했기를 바란다.


경화역, 벚꽃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기차의 모습


  판매를 하면서 느끼던 즐거움도 잠시 시간이 지나면서 역시나 고민이 찾아왔다. 판매가 꾸준히 이루어지긴 했지만, 우리가 준비한 재고와 비교해서 팔리는 속도가 부진했기 때문이다. 가만 고민해보니 예상만큼 경화역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나는 경화역이 유명하기 때문에 관광객으로 가득 찰 것이라 예상했으나, 경화역의 위치가 진해의 다른 벚꽃 명소들과 거리가 있고 정체된 도로의 상황으로 인해 사람들이 와서 잠깐 머물고 간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날씨도 흐려지면서 비가 올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고 우리는 비를 피할 겸, 서둘러 짐을 챙겨 차에 실었고 '로망스 다리'가 있는 여좌천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좌천에서

  우리가 여좌천에 도착해서 놀랐던 것은 경화역과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자리를 잡지 않고 오후에 여좌천으로 왔기에 사람들이 접근하기 좋은 위치도 이미 선점이 되었다. 우리는 빈자리에 다시 자리를 펼치고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여좌천으로 왔어야 했다는 장소와 자리선정에 대한 아쉬움과 반성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이런 다짐이 무색하게도 흐릿했던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또 다른 고난이 찾아온 것이다.


여좌천의 야경, 비가 쏟아지자 우리는 준비했던 우산으로 비를 막았다.


  군항제 기간 중에는 항상 소나기가 온다. 나는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뒤로 진해에서 생활하면서 군항제를 여러 번 겪어봤지만 1~2주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 중 비가 오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으면 아름다운 벚꽃을 며칠은 더 오래 볼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항상 남곤 했다. 참고로 행사를 즐기기에 가장 좋은 시점은 행사가 시작하는 날 전후인데, 이때가 벚꽃이 가장 화창하게 피며, 조금씩 흩날리기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빗방울은 떨어졌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였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우리는 혹시 몰라 가져온 우산 하나로 자리를 지켰다. 큰 우산이었지만 우리 둘과 탁자 위의 상품들, 재고로 가져온 박스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우리는 상품을 보호하는 쪽을 택했고 우리는 비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상품을 지킨 탓에 소나기가 그치고 다시 휘몰아치는 사이에도 판매는 조금씩, 꾸준히 이루어졌다. 그렇게 밤 10시 30분이 되었고 우리는 태어나서 도전한 첫 장사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향했다.



이상과 현실

  우리는 어떤 일을 계획할 때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할 것이라 생각한다. 자격증을 따거나, 다이어트를 시작하거나, 장사를 시작하거나 우리는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을 준비하지만 실제로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은 우리의 예상을 항상 빗나가곤 한다. 우리 삶의 다변성과 수많은 우연들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장애물을 만들고 계획했던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계획 자체보다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며, 계획에는 반드시 방향성과 생각지 못한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완충장치가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의 계획과 현실은 다르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수많은 변수들은 우리의 계획을 변경시킨다.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상황판단 능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관찰,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형성된 사고력과 통찰력을 통해 빠르게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며, 결심을 개인의 적극적 태도, 용기, 대담함, 융통성과 같은 개인적인 특성을 통해 행동으로 실행하는 능력이다. 이는 문제 해결 능력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이며 성취를 위해 추구해야 할 능력이기도 하다.


  방향성은 계획과 달리 뒤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관철하고 유지하며 나아가야 할 목표와 성취를 의미한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며 노력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완충장치는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사전 준비 또는 추가적인 시간이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지만 사고와 통찰을 통한 가능성에 대한 예측을 통해 미리 준비할 수 있다. 이는 성취를 결정짓는 유리한 요소로 작용된다. 그리고 시간은 예측 못한 문제에 대처하여 이를 해결하고 새로운 계획을 설정해 진행할 수 있는 물리적인 요소다. 실제로 기한을 정해두고 이루어지는 계획이 실패하고 연장되는 이유는 다양한 변수로 인해 틀어지는 계획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장사를 마치고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나는 비가 내릴 수 있다는 변수를 크게 고려하지 않았으며, 경화역의 위치적 특성과 교통으로 인한 유동인구의 특징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이미 만들어진 상품은 당장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었으며, 여좌천은 판매하기에 좋은 장소였지만 도중에 도착했기 때문에 위치 선정에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는 다음날 일찍 여좌천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로 의지를 다지며 첫 장사를 했던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하루였으며, 궂은 날씨 속에서 함께 해준 동생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다시 여좌천에서

  둘째 날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여좌천에서 좋은 자리를 일찍 선점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아침 6시가 좀 넘은 시간에 여좌천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자리 잡은 위치는 사람들이 관광을 시작하자마자 한 번씩 꼭 구경하고 가는 명당이었고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우리는 전날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렸다.


여좌천에서 이어지는 길, 수면에 비친 벚꽃나무가 선명하다.


  좋아하던 시간도 잠시, 역시나 예상치 못한 새로운 고난이 찾아왔다. 몇몇 사람들이 본인이 먼저 맡아놓은 자리라고 비키라면서 시비를 걸었다.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임자라는 생각으로 그들과 대화했지만 그들은 강경하고 배타적이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자 자리를 옮길 테니 다른 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했고 주변에서 장사를 하시던 좋으신 분들의 배려로 여좌천의 입구는 아니지만 입구와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처음 잡은 자리만큼은 아니지만 물건은 계속 잘 팔렸다. 구경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핸드메이드 상표를 보며 직접 만든 것인지 물어보는 사람들, 주변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 상품을 사가는 사람들, 축제 분위기에 취해 얼떨결에 사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즐거움과 행복을 보았다. 나 또한 장사를 마치고 나면 동생과 여유 있게 군항제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상품을 판매하면서 번갈아가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밥을 먹고 판매장소로 다시 돌아왔을 때, 동생은 또다시 새로운 난관에 마주하고 있었다. 옆자리에 불쑥 벚꽃 핀을 파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보다 가격을 싸게 팔았기에 우리도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 가격을 낮췄다. 손님들이 우리의 상품이 더 이쁘고 낫다는 말을 해주면 치열한 경쟁 속에서 큰 힘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우리가 준비한 핀들은 다 팔렸다. 천 개가 넘는 핀을 다 팔고 나니 우리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고 향초와 디퓨저를 적당히 더 팔았다. 그렇게 우리는 오후 5시쯤 장사를 마무리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물건을 팔아보면서 경쟁을 했던 경험이었다.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지속적으로 직면했지만, 결과가 나쁘지 않았기에 더 값지고 좋은 경험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교훈

  세상에는 다양한 분야에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난 이번 기회를 통해 머릿속에 있던 계획을 용기를 내 행동으로 옮기는 시도를 했고 준비과정을 통해 장사를 시작했지만, 시장에는 이미 나와 같은 생각을 행동에 옮긴 사람들이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품목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 개인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고 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대해서 내가 알아갈 부분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경험이었다. 내가 단순히 손님의 입장으로서 군항제 행사를 즐기기만 했다면 내가 상품 판매를 통해 배운 핸드메이드 상품들과 관련된 지식이나 행사에서의 상품 판매 시장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무한 경쟁시대에서 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나라가 발전하고 부의 축적이 이루어지면서 경쟁 분위기가 더욱 만연해진 것 같다. 우리는 학창 시절 학업에 대한 경쟁, 취업을 위한 경쟁, 취업 후에는 승진을 위한 경쟁, 자영업과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동종업체와의 경쟁 등 항상 경쟁을 직면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경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벚꽃 상품을 만들고 판매했던 경험은 군대 안에서만 생활했던 내가 미약하지만 바깥 사회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내가 이 경험을 통해 배운 교훈은 아이디어는 생각만으로 존재해서는 절대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며 이는 계획을 통해 구체화되고 실천과 행동으로 실현된다는 사실이다. 군항제에 사람이 정말 많기 때문에 뭐라도 팔면 잘 팔릴 것 같다는 생각은 그동안 내 머릿속에 생각으로만 자리 잡고 있었던 추상화된 개념이었다. 우리는 나름대로 계획과 준비를 통해 추상화된 개념을 구체화시켜나갔고 일단 시작을 하면서 당면하게 된 문제점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우리의 목표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 계획을 세우지만, 우리 주변 환경의 모든 변수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사실과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은 사람을 기다리게 하고 행동하지 않도록 유도한다. 이 두려움의 극복이 치열한 경쟁 사회 속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핵심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용기와 능력의 배양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와 동생은 팔고 남은 나머지 짐을 정리했다. 짐들을 차에 싣고 집에 주차해 놓은 뒤 우리도 군항제 행사를 즐기러 온 한 쌍의 남매로서 우리가 물건을 팔았던 경화역과 여좌천을 포함한 진해의 거리 곳곳을 향했다.



사랑하는 내 동생

  내 동생은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유전자 때문일 수도 있고 같이 크면서 자라온 환경 때문일 수도 있지만 성인이 되어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통하고 비슷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많은데, 군항제 기간에 함께 장사를 준비하고 일을 마무리하면서, 동생의 태도와 행동을 보며 다시 새삼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고 응원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성공적으로 판매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해 만들고 판매하는 과정에 동생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 찍어주었던 사진, 동생은 내게 항상 고마운 존재다.


  특히 주말에 장사를 마치고 난 다음날인 월요일에는 나도 휴가를 써서 동생과 함께 축제를 즐겼다. 축제 기간이었지만 평일이라 사람이 많이 줄었고 우리는 행사하는 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기도 하고 주전부리들을 사서 먹으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자전거를 빌려 진해를 돌아다니면서 벚꽃들을 구경했다. 장사를 하던 입장에서 관광객, 손님의 입장으로 바뀌자 다르게 느껴지는 벚꽃 축제의 광경은 재미있는 경험이자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같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흩날리는 벚꽃 잎 사이를 지나쳤고 벚꽃잎은 우리의 머리와 옷에 떨어졌다. 내가 길을 알기에 주로 앞에서 동생을 이끌었고 동생이 뒤에서 날 따라왔는데, 마치 어렸을 때 가족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네 주변을 다녔을 때에 아버지가 맨 앞에서 우리를 이끌어주었던 추억이 생각이 났다. 진해의 아름다운 경치 속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우리는 진해의 벚꽃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동생은 항상 날 잘 따라주었던 것 같다. 동생이 기숙사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우리는 학교가 같았기 때문에 같이 다니곤 했는데, 동생은 항상 나를 잘 따라주는 든든한 아군이었다. 항상 오빠로서 동생을 대했지만, 어느덧 동생도 대학교를 졸업 나와 같은 성인이 되어있었고 우리는 친구가 되어있었다.


  우리는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성장해온 환경과 다른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생각과 말이 잘 통하기에 그 존재만으로도 편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내 동생도 이 중 한 명인데 내 동생은 부모님이 내게 선물해주신 내 삶에 가장 좋은 친구가 아닐까. 내 동생을 항상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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