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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전 Oct 01. 2019

해군 장교 이야기 #17 군항제 1

진해의 벚꽃축제

진해의 대축제

  매년 봄이 되면 진해에서는 1년 중 가장 큰 행사가 열린다. 바로 군항제 행사다.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지만 유독 벚꽃나무가 많은 진해에서는 벚꽃축제 시즌이 되면 수많은 벚꽃들이 모든 도로와 건물들 사이를 분홍 빛으로 적신다. 4월이 되면 진해에서 펼쳐지는 분홍 빛의 장관은 정말 아름답다. 흩어지는 벚꽃잎의 가벼움은 바람을 따라 흥얼거렸으며, 붉은 꽃잎에 비친 햇빛은 봄이 한창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한 편의 음악이자 수채화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진해에는 땀을 흘리는 해군사관학교 생도들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대한민국 해군이 있었다.


드라마가 촬영되었던 여좌천의 '로망스다리'와 '경화역'은 진해 벚꽃축제 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관광명소다.


   군항제는 4월 중 벚꽃이 가장 만개하는 시기에 약 1~2주간 실시된다. 대한민국의 남쪽에 위치해 상대적으로 개화시기가 빨랐기 때문에, 진해의 벚꽃은 봄이 왔음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끽하고자 하는 가족과 연인들,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벚꽃나무로 둘러쌓 철도와 기차로 유명한 '경화역'과 드라마 '로망스'로 유명해진 '여좌천'의 로망스 다리, 바다와 함께 펼쳐진 벚꽃의 경치를 간직할 수 있는 해군사관학교는 그 유명한 진해의 군항제 속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4학년 시절 분대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즐거웠던 기억


  나는 사관학교에 들어갔던 2010년도부터 군항제 행사를 꾸준히 함께해왔다. 사관학교 내에서 생도들은 벚꽃이 개화하는 시기가 되면 동기들 및 선후배들과 함께, 반짝이는 우리의 젊음과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곤 했다. 생도들은 자체적으로 벚꽃사진 콘테스트를 열어 아름답고 기발한 사진을 찍은 생도들에게 포상을 주거나 군항제 기간 중 부분적으로 개방하는 사관학교 내에서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체험거리를 제공해주는 등 생도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군항제를 즐기곤 했다.


군항제 시즌이 되면 사관학교는 부대의 일부를 개방하고 관광객을 위한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매일같이 진해에서 생활하며 근무하는 군인들은 퇴근을 하거나 주말이 되면 마치 진해에 처음 온 관광객들과 같이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군항제를 즐겼다. 고된 환경 속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에게 군항제의 벚꽃은 그들이 생활하는 진해의 마스코트이자 바쁜 생활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주는 치유의 꽃이었으며 오랜 시간을 인내해 꽃을 피운다는 점에서 군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다.


진해의 해변공원 '진해루'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 벚꽃과 어우러져 하늘과 땅을 붉게 물들인다.


  군항제가 시작되면 진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벚꽃과 같이 관광객들이 도로를 가득 채웠다. 사람이 많은 만큼 행사에서 이루어지는 볼거리 또한 많았는데, 군항제가 시작하기 전부터 미리 이루어지는 무대와 현수막 부스 설치 과정을 보면서 항상 봐왔던 벚꽃임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럽게도 벚꽃이 곧 만개할 시점이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곤 했다. 그리고 군항제가 시작하면 미리 준비되었던 무대와 부스는 온갖 잡동사니와 기념품, 음식을 파는 상인들로 가득 찼다. 그들은  미어터지는 관광객들 덕분에 두둑이 한몫을 챙길 수 있었으며, 관광객들은 상인들 덕분에 더 풍성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즐거운 벚꽃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주말에는 군 숙소 앞에 위치한 진해 공설운동장에 가수가 초청되어 공연을 하기도 하고 진해에 위치한 주한미군과 대한민국 해군이 준비한 공연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대망의 군항제 마지막 날이 되면 약 1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불꽃놀이의 폭죽이 하늘에 펼쳐진다. 어두운 밤 조명 아래 붉은 벚꽃과 하늘의 붉고 노란 불꽃은 군항제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꽃놀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운이 좋게도 내가 살고 있는 숙소에서 베란다에 몸을 기댄 채 이 모든 광경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아이템 판매

  그렇게 수년간 군항제를 즐기면서 군항제에서 나의 도전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난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면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는 성격인 것 같다. 내가 정보사령부 근무를 하면서 좋았던 점들은 정말 많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 중에 하나는 비상상황에 대비한 태세로부터 자유로웠다는 부분이었다. 육상 근무를 했기 때문에 비교적 당직 주기가 길었고 주말에는 휴가를 써서 집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이러한 시간적 여유는 내가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이와 동시에 진해에서 이루어지는 연간 최대 벚꽃축제 행사인 군항제에서 장사를 직접 해보도록 이끌게 되었다.


군항제가 되면 장사를 위해 설치된 수많은 부스들이 가득차고 길거리에는 인파가 넘쳐난다. 뭔가 해보고 싶었다.


  나는 생도 시절부터 군항제를 경험하면서 수많은 인파 가운데 장사를 하면 참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하곤 했다. 이런 내 생각은 항상 내 머릿속에 머물러있었고 실행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었지만, 결국 행동으로 옮겨보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장사를 하기로 결심하고 난 뒤, 첫 번째로 생각했던 것은 판매 아이템이었다. 이전부터 축제 시즌에는 주제와 연관된 상품이 당연히 잘 팔린다고 생각해왔었기 때문에 벚꽃과 관련된 아이템을 생각했고 벚꽃축제의 분위기를 낼 수 있는 핀, 캔들, 디퓨저를 선정해서 준비하게 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함께 할 동료를 모으는 것이었는데, 나 혼자서도 할 수는 있었지만 같이 하는 게 더 재미있고 힘도 덜 들 것 같다는 마음이 있었고 마음 맞는 동료와 함께한다면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변 친구들이나 동기들에게 나의 계획을 말했을 때 긍정적으로 답변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들 워낙 바쁘기도 했을 것이고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귀찮음과 수익이 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 노상에서 물건을 팔아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모두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나는 결국 가장 믿음직한 친구에게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고 그 친구는 바로 승낙했다. 새로운 것을 해보기로 하면서 내가 느꼈던 흥분과 설렘을 친구 또한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기에 고맙기도 했고 더욱 신뢰가 갔다. 그 친구는 바로 내 여동생이다.

 

  나는 내 여동생을 좋아하고 높게 평가한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똑똑했고 좋아하는 것과 관심있는 것에 대한 추진력도 상당했기에 어려서부터 뚜렷한 목표나 관심사가 없었던 나는 동생의 그런 모습이 부럽다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동생과 함께 한다는 것은 내가 인정하고 마음의 의지를 할 수 있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이었기에 큰 힘이 되었다. 유전자 때문인지 자라온 환경 탓인지는 모르지만 동생과 나는 가치관이나 생각하는 것이 비슷한데, 군항제에서 장사를 하는 것에 대한 반응이 나와 비슷했던 것도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 동생이 군항제 중 물건을 팔아보자는 내 계획에 합류하자 일은 더욱 재밌어지고 수월해졌다. 동생은 학교를 졸업하고 외국에 있는 한국 기업에 취업이 결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시점이었고 그런 환경이 심심했던 동생에게 더 큰 활력으로 다가왔었던 것 같다. 동생은 엑셀로 우리의 사업계획을 작성하여 내게 보내주었고 세부적인 사항은 서로의 합의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우리는 벚꽃축제에 어울리면서도 느낌과 추억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준비과정

  다음각 아이템들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수집하고 재료를 준비하는 것이었는데, 우리가 생각하고 원했던 상품들이 시중에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만들기로 했다. 동생과 나는 메신저를 통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향초와 디퓨저를 만드는 방법을 찾았고,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공유해나갔다. 그리고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 준비물을 목록화했다. 리는 각종 오픈마켓과 소셜커머스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단가를 비교 분석하고 배송비를 포함하여 가장 적은 비용이 드는 과정을 확인했다. 그리고 가격비교가 애매한 것들에 대해서는 동생과 같이 시장에 나가서 가격을 비교하면서 구매를 했다.


방산시장에서 봤던 다양한 디퓨져 재료들,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막상 준비물을 목록화하다 보니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꾸밈을 위한 색소와 벚꽃 잎, 접착을 위한 본드와 글루건, 우리의 브랜드를 나타낼 수 있는 스티커 등 부수적인 준비물들도 많이 있었고 이를 가지고 다닐 수레도 필요했다. 또 향초와 디퓨저의 경우 이를 포장할 수 있는 포장박스, 판매를 위한 비닐봉지도 필요했다. 그리고 판매에 재미를 부여하고 사람들에게 추억을 주기 위해 폴라로이드 사진기와 필름도 준비했다.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이를 하나씩 해결해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판매를 위한 준비도 어느 정도 마무리될 수 있었다.


  나와 동생은 남대문의 부자재 시장에 가서 같이 재료를 사러 돌아다니면서 가격을 비교하면서 고급스러운 향초 재료와 향기도 맡아보고 석고 방향제를 어떻게 만드는 지도 보고 여러 캔들/디퓨저 용기도 보면서 핸드메이드의 세계를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일반 향초 외에 다양한 모양을 낼 수 있는 모양 틀도 사고 맛있는 밥도 먹고 벚꽃 아이템들과 관련 없는 주변 조명가게나 귀걸이 재료들도 구경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핸드메이드 상품 종류를 확인했고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새로운 것들에 대한 경험과 체험은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동생과 함께 시장을 돌아다니며 자재들을 구경하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이 내겐 더 큰 즐거움이자 추억이 되었다.


나와 동생이 함께 만든 디퓨져와 향초,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산 재료를 바탕으로 집에서 물품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나와 동생은 실패도 하면서 조금씩 만드는 방법을 익혔고, 동생과 나는 분업을 통해 각자 상품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물건들을 만드는 과정은 어렵지는 않았지만 숙달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특히 벚꽃 핀의 경우 기본 핀에 벚꽃 조화를 잘라서 붙여내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됐는데, 조금씩 숙달되면서 그 시간도 줄어들었던 것 같다.


  물품을 만드는 것은 단순한 육체노동이었지만 그 과정 또한 즐거웠다. 처음 나와 내 동생 둘이서 시작했던 만들기였지만, 나와 동생이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도 함께 도와주시곤 했고 놀러 왔던 친척 누나들까지 가세해 함께 만든 적도 있었는데, 가족, 친척들과 함께 도란도란 모여 이야기를 하면서 물건을 만드는 과정 그 자체가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물건을 만들면서 가족끼리 잘 팔릴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공유하기도 하고 만든 물건이 안 팔리면 어떡 하나에 대한 걱정도 함께 나누었던 것 같다.


   나는 주중에는 진해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주말에만 집에 올라와서 동생과 함께 물품 만들기를 준비할 수 있었다. 동생은 주중에 본인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처리하고 주말에는 나와 함께 물건을 만들었으며, 주말이 끝나면 완성된 물건은 내가 진해로 가지고 내려가는 식으로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상품들 하나하나는 우리의 계획대로 만들어졌으며, 진해에 있는 내 숙소에 보관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군항제가 시작된 첫 번째 주말, 동생이 진해로 내려오면서 오랜 시간 준비한 물품 판매 계획은 시작되었다.



동생의 숙소

  사람이 미어터지는 군항제 기간 중 동생이 머무를 숙소를 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다. 워낙 큰 축제이다 보니 주변 숙소들은 이미 예약으로 만실이 된 상태였고, 내가 머무는 숙소는 남군 전용으로 가족이라고 해도 들어올 수 없는 독신자 숙소였기 때문에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이리저리 알아보던 중 마침내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군인 숙소에 살면서 주말에 집을 비울 예정인 선배를 집 청소를 해준다는 조건으로 섭외할 수 있었고 결국 동생에게 숙소를 제공해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계획은 마무리 단계가 되었다. 동생은 서울에서 진해로 내려왔고 우리는 상품을 판매할 장소인 '경화역'에 사전답사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고 나는 내 숙소로 돌아가 짐을 챙겨야 했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각자 잠에 들었다. 조금은 설레고 두려운 감정과 함께 드디어 몇 주를 준비했던 우리의 물건들이 사람들에게 팔리는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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