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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전 Oct 14. 2019

해군 장교 이야기 #19 동기생

함께하는 동료

단체생활의 시작

  나는 생도 시절부터 조직생활을 경험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항상 동기들과 함께 생활하는 환경 속에 있었다. 나를 비롯한 생도들은 사관학교에서 동기, 선후배와 함께 생활하면서 단체생활을 배웠으며, 단체생활의 출발선은 함께 동고동락하는 동기들이었다.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가정이라는 관계 속에 소속되듯이, 사관학교에서는 동기들, 그 안에서도 룸메이트들이 나의 가정과 같은 생도 관계의 가장 기초적인 관계가 되었다. 우리는 마냥 즐겁고 쉽지만은 않았던 사관학교 생활을 동기들과 함께 해나가면서 때로는 즐거워하고 슬퍼했으며,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서로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하고 배려하며 더 깊은 관계가 될 수 있었다.


동기들과 함께했던 생도사 야경


  해군사관학교 생활 속 지친 하루 속에서 동기들은 함께 생활하면서 같은 공감대를 나누며 서로를 북돋아주고 에너지를 채워갈 수 있는 좋은 동료였다. 우리는 서로를 챙기고 지원하면서 힘든 상황을 하나씩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같은 상황을 함께 해나가고 있다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큰 위안이 되었으며, 이렇게 동기들과 함께하며 이겨낸 시간들은 추억이 되었고 조금씩 내 안에 누적되어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임관 후에도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양분이 되었다. 동기들이 항상 내게 힘을 주는 존재였던 것처럼 나 또한 생활 속에서 그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사관학교는 이런 과정 속에서 상대방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성숙의 공간이기도 했다.



룸메이트

  같은 중대의 동기들과는 각종 집합과 훈련, 교육, 생활을 함께 하기에 더 가까운 관계가 되지만, 룸메이트끼리의 관계는 특히 더 돈독하다. 룸메이트들은 같은 공간 속에서 함께 먹고 자고 공부했기에 더 많은 일상의 사건들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룸메이트들은 학과 시간이 되면 바쁜 동기를 위해 청소와 정리를 대신해주기도 하고 선배들로부터의 지적과 얼차려로 힘들어하는 동기를 위해 지적받지 않을 수 있도록 대신 옷을 다려주거나 구두를 닦아주는 등 서로를 열심히 도왔고 때로는 룸메이트의 실수로 방 총원이 훈련받는 연좌제를 경험하면서 신체의 고통과 정신적 외상을 함께 공유하기도 했다.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룸메이트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즐거움과 슬픔은 룸메이트들끼리 더욱 각별한 사이가 되도록 동질감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했다.


저학년은 4인실, 고학년은 2인실을 사용한다.


    동기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맞춰져 간다. 특히 고학년이 되면서 서로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하고 알 수 있었던 그동안의 시간들 덕분에 동기들은 서로 관계의 적정거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동기생들과 더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동기생들과 점차 갈등은 줄어들고 공유하는 추억거리는 늘어나면서 생도생활이 더욱 풍성하고 즐거워진다. 고학년이 되면서 생도생활에 더욱 활력과 즐거움이 붙는 이유는 자유와 권한이 늘어나는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선후배 동기들과의 관계가 더욱 윤택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수탁생도

  해군사관학교에는 다른 나라의 수탁생도를 받아 대한민국의 생도들과 함께 4년간의 정규 교육과정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우리 기수의 경우 베트남과 카자흐스탄 해군사관학교의 생도 2명이 우리와 4년간 함께했는데, 이 제도는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내가 해군사관학교 6중대에서 생활하면서 약 1년 반 동안 함께했던 룸메이트가 베트남 수탁생도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언어와 민족의 장벽을 뛰어넘어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해군사관학교에는 매년 수탁생도들이 함께 입교한다.


  외국의 수탁생도들은 타국에 와서 의사소통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각종 훈련과 생활을 해나가기에 생활에 어려운 점이 많다. 처음 내가 베트남 수탁 생도와 함께 룸메이트를 하고자 했던 것은 그를 돕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한국에 대한 좋은 인식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하며 여러 경험을 공유하면서 추억과 함께 우정을 쌓아갔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우리는 잘 통하지 않는 언어와 생활습관, 태도 등으로 인해 힘든 점들도 있었는데,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깨달을 수 있었던 나의 부족한 점이 많았기에 그에게 더욱 고맙고 미안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 룸메이트 당더미엔과 함께


  그래도 결국 우리는 마음으로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베트남 동기는 표현과 행동은 서툴렀지만 넓은 이해심과 아량, 선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소등시간이 되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침대에 누워 불을 끈 채 서로의 생각과 하루, 각자의 삶, 인간관계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나누곤 했다. 한국 동기들과 같이 표현과 의미 전달이 명확하게 잘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의미는 충분히 통했 오히려 말이 편한 동기들보다 더 생각과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를 돕고 챙기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지만, 어느덧 우리는 서로의 관계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고 힘들고 어려운 부분도 점차 사라져 갔으며, 즐거움 자리잡게 되었다. 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그가 내게 써준 편지 속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은인'이라는 말은 그동안의 내 고생을 보상하고도 남을 여운을 남겼고 그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남겼다.


  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한국어로 대화를 했다. 1년이 넘는 생활을 함께하면서 내가 베트남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휴가가 끝나고 나면 그가 먹으라고 가져온 생전 처음 보는 보양식에 입을 대지 못했던 것도 기억이 나고 밖에서 방에 돌아왔을 때, 우리 방에서 학교의 베트남 수탁생도들을 모아 파티를 하고 있던 모습도 기억이 난다. 심지어 나에게 여자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안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한편에 자리 잡은 내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기를 희망한다.



장교가 되어

  4년간을 함께했던 동기들은 장교로 임관하고 각자 자신의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되면서 뿔뿔이 흩어진다. 장교생활을 하며 업무를 수행하고 협조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선배들과 후배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되기에, 오랜 시간 함께했던 동기들을 만나게 되면 그 누구보다 반가운 마음이 든다. 장교가 되어서도 동기들끼리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면 생도 시절 나누었던 이야기와 비슷하다. 생도 시절에는 생도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이었다면, 장교가 되어서는 장교생활을 하면서 겪은 힘들고 억울한 일, 재미있는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나라에 대한 걱정도 하고 건강에 대한 걱정도 하지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는 바로 과거의 생도 시절 얘기다.


임관 이후에도 동기들과 함께


  생도 시절 얘기는 동기들과 언제 만나 얘기를 나누어도 끝이 없다. 전부 이미 몇 번은 들었던 이야기지만 다시 들어도 즐겁고 웃음꽃이 피어난다. 과거의 생도 시절 추억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조금씩 희미해지고 점점 재미있게 각색되어간다. 생도 시절 우리의 추억은 이렇게 조금씩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가 되어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웃을 것이라고 말하고 아마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지만, 나중에는 그 이야기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중요치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함께했던 4년의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는 사실과 수많은 경험과 감정을 함께 공유했다는 사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평생 동안 간직될 것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을 것이다.



장교가 되어서도

  장교가 되면서 우리는 각자 개인 숙소를 지급받고 전국 각지에 있는 해군 부대에서 생활하게 된다. 하지만 함정 수리 및 각종 파견 및 훈련, 태풍 피항 등으로 본인이 속하지 않은 타지로 가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거처를 찾아야 하는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당연 동기생이다. 나는 소위 시절 부산이 모항이었던 강감찬함이 수리로 진해에 왔을 때, 동기 방을 얻어 함께 생활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잠수함을 타면서 진해에 있었던 시간 동안 내 방에서 함께 자면서 동고동락했던 동기들도 상당히 많다. 거제 조선소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조선소에서 숙소를 받았기 때문에 진해에 비어있었던 내 방이 몇몇 동기생들에게 공용으로 활용되었던 적도 있었다. 우리는 장교가 되어서도 이따금씩 함께 살면서, 생도 시절과는 또 다른 새로운 추억을 쌓아다. 해군 장교생활을 하면서 언제 어떤 상황 속에서 타지에 가더라도 연락할 사람이 있고 재워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감사함이자 행복이며, 동기들과 오랜시간 함께 했기에 느낄 수 있는 유대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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