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전 Oct 19. 2019

해군 장교 이야기 #20 2함대 사령부

필승함대 2함대

2함대로의 복귀

  나의 군생활 마지막 참수리 고속정을 탔던 평택 2함대였다. 이전에는 2함대에서 참수리 고속정을 타며 해상 직책을 수행했다면, 이번에는 2함대 사령부에서 육상 직책을 맡아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나는 사령부 계획참모실 작전계획과에 작전계획담당으로 부임하여 약 4개월간 전시 작전을 계획하고 전쟁연습 및 훈련 업무를 담당했으며, 이후 8개월간 해군 2함대 및 합동군의 무장 운용을 주관하고 협조하는 합동화력담당으로 직책을 수행하게 되었다.


내가 다시 근무하게 된 2함대 사령부


  2함대 사령부는 내가 이전에 근무했던 작전사령부 예하의 조직으로 함대 내의 작전 및 전력운용, 인원관리 등 함대 내 조직에 대한 총괄적인 지휘 및 운용을 담당하며, 북한과 마주 보고 있는 NLL을 경계로 서해 바다를 수호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내가 근무했던 작전계획과는 전시 2함대의 작전 및 계획에 대한 교리를 검토하고 개정 및 작성하며, 화력 운용을 총괄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주요 업무는 현재의 작전 운용개념을 바탕으로 전시 계획을 현 상황에 맞추어 지속해서 대응해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계획과 개선, 검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업무들은 내가 일에 흥미를 가지고 재미있게 임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사실 평택에서의 근무는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원래 나는 정보사령부에서 잠수함 훈련장비를 인수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조선소에서 추가 잠수함 전력을 인수하는 인수 부대에서 직책을 수행할 예정이었으나, 잠수함 인수 과정 중 발생한 문제들로 인해 인수 시기가 지속적으로 늦어지면서 인사가 예정되어있었던 부대가 산되었고 인원 충원이 필요했던 2함대 작전계획과에 작전계획담당이라는 직책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나는 전역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업무강도가 높고 항상 바쁜 것으로 유명한 2함대 사령부에서의 근무는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함대 사령부에서의 1년은 그 어느 해보다 배우고 얻은 것이 많았던 한해로 남았다.


미 공군 장교들과 함께


  내가 속한 계획참모실은 함대의 전시 연습을 주관다. 흔히 아는 키리졸브 훈련(KR), 을지연습(UFG) 등 함대의 다양한 연습을 주관하여 진행하였고 전 국가적으로 크게 이루어지는 전시 연습이 어떤 계획과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 내가 속했던 작전계획과에서는 미군과의 연합 훈련 및 업무협조를 담당했기 때문에 주한 미군부대와 필요한 협조사항이 있을 경우 평택에 위치한 주한미군 부대인 캠프 험프리로 출장을 가서 실무 담당자와 협조를 하기도 했다. 각종 연습과 훈련은 주한미군과 대한민국의 전국가적인 준비가 필요한 작업이지만 계획과 순서에 맞추어 구성원이 각자 역할을 하나씩 준비하면서 막막해 보이는 일도 순탄하게 수행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군대의 시스템
시스템은 조직의 목표 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군 조직의 가장 큰 장점은 시스템이다. 처음 해군의 지휘체계와 업무를 만들고 진행하는 절차와 방법을 구축한 대한민국 해군의 창시자 손원일 제독과 이후의 해군 선배들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함정을 운용하고 작전을 수행하면서 조직을 운용하는 시스템을 이룩했고 우리 또한 마찬가지로 해군의 조직 내에서 갖추어진 시스템에 맞추어 업무를 진행하며 조금씩 수정해나갔다. 오랜 시간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군대에서는 모든 업무가 체계적으로 분할되어 있어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서  해야 하는 부분을 수행하면 마치 톱니바퀴처럼 부서가 돌아가고 사령부가 돌아가며 군 전체가 잘 운용되는 훌륭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어느 조직이든 성공적인 성과를 내는 조직은 훌륭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나는 2함대 사령부에서 예하 조직을 지휘하고 연합연습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경험을 하면서 이런 군대 시스템이 잘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그 중요성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으며, 예하부대를 지휘하는 함대사령부의 입장에서 시스템 속의 개인을 위해 개선할 수 있는 구조적, 제도적인 방안도 고민해볼 수 있었다.



발전의 시간

  나는 이 시기 이미 전역을 결정한 상황이었다. 나는 원래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직책에서 전역을 준비하고 싶었지만 희망과 현실은 달랐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이 주어진 이상, 나는 사령부의 작전계획과 생활에 최대한 빨리 적응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내 시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전에도 그랬듯이 '나'라는 사람 자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사령부 내에서 많은 경험을 통해 새로운 교훈과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사령부에서의 업무는 부대 전체를 총괄하는 상급 부대로서 조직관리와 업무시스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직책이었다. 그만큼 업무가 많고 하루의 많은 부분을 부대 안에서 보내야만 했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예하부대를 지휘 운용하는 사령부의 역할을 직접 느끼고 지휘관과 참모들의 업무태도와 결심 과정을 지켜보면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세부계획을 수립 및 추진하는 과정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프리다이빙 자격증도 땄다!


  또 작전계획과에서의 생활은 개인적으로도 발전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국군 정보사령부에서 근무하면서 항상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공부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바쁜 생활 속에서 조금씩 그 의미가 옅어지고 있었다. 특히 처음에는 새로운 업무환경에 적응하고 관련 지식을 쌓는 것이 필요했기에 더욱 바쁜 부분도 있었고, 긴급상황이 생기면 즉시 들어와야 하는 대기 태세 또한 상당한 피로감을 주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나는 다시 자기 계발을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실제로 시간은 부족한 편이었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은 언제나 변명이라는 것을 안다. 휴일 없이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야간 또는 다음날 새벽에 퇴근하는 생활에 적응하면서 나는 시간을 쪼개서 내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책을 읽거나, 점심시간에 운동을 하고 저녁을 빨리 먹고 공부를 하는 등  름대로 자기 계발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노력들은 삶에 피곤함보다는 삶의 활력과 자신감을 충족시키며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었다.


  나는 2함대 사령부에서 근무하면서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환경, 당장 내가 현재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순응하고 사는 것을 배웠다. 과거 나는 불만이 많은 생도였지만, 순항훈련을 계기로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사령부에서 근무하면서 잦은 야근, 과중된 업무, 태세 유지 등의 업무 환경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사람이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면 무엇이든지 비판적으로 보이고 짜증이 나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실을 인정하고 내 마음의 평화를 찾으며, 부정적인 에너지보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표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조금씩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조금씩 내 삶도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졌던 것 같다.



바쁜 해군 장교들

  직접 작전계획과에서 근무하면서, 나는 많은 해군 장교들이 바쁜 실무 생활 속에서 자신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해군 장교들은 바쁜 일과와 출동임무, 훈련 등의 영향으로 그들의 삶의 영역은 대부분 군대와 가정, 이 두 가지에만 머물게 되기 때문에 그만큼 삶의 영역이 좁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잦은 이사로 인해 주말부부를 하게 되는 군인의 경우 그들의 삶은 더욱 군대 편중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삶의 영역이 군대에 집중되면 그만큼 전문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게 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극복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있다.


사람은 다양한 영역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그 영역이 넓을수록 삶은 풍성해진다.


  삶 속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장애물 속에서 마음이 약해지고 흔들리는 상황을 건강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개인 시간과 취미생활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고 마음의 여유를 얻으며 삶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다방면에 걸쳐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 속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다양한 경험들과 성취, 소속감, 인간관계는 더욱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군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희생과 성실함이 요구되는 직업이고 직책에 따라서 업무강도의 편차가 큰 것이 사실이지만, 군생활을 지속하는 해군 장교라면 대부분의 시간은 개인 생활 없이 바쁜 업무 속에서 보내는 것이 사실이다. 지만 군생활마지막 해라는 이유 때문일지 하루 종일 바쁘게 생활했던 경험도 내게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국가를 수호하고 있는 해군 장교들과 모든 군인들의 희생을 알기에 그들에게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적성에 맞는 직업
'적성'의 사전적 정의, 일에 알맞은 성질은 형성하면 그만이다.


  직업에 적성이 맞는다는 말은 무엇일까. 적성은 '적합한 성질'을 뜻한다. 사람들은 어떤 직업을 가지면 적성에 맞는지를 질문하지만 대답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개인의 적성이라는 개념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바뀌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적성은 그 사람의 직업에 따라 변화한다. 처음부터 군인의 지휘체계 및 명령체계에 익숙한 사람은 없으며, 공무원의 생활과 업무 사이클에 익숙해진 사람은 없다. 영업인의 경우 처음부터 영업이 순탄하게 잘 풀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결과가 내 적성과 맞는지에 대한 여부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기에 조금 더 일을 해나가면서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주변 환경에 적응해 갈 필요성이 있다.


  나 또한 직업군인을 하면서 군인이 적성이 맞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초급장교 시절 나는 그 질문에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얘기하며 힘든 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 속에 있었다. 군 생활을 이어가면서 군 체계에 익숙해지고 조금씩 편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적성에 잘 맞는다고 대답하게 되었는데,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말은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을 지속하고 있는 나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이며,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군대는 내 다양한 적성을 찾아준 감사한 공간이었다.


  '적성'은 내가 일을 하기에 적합한 능력을 갖추었는지에 대한 성질이다. 적성은 내 노력, 시간에 따라서 갖출 수 있는 요소가 되며, 어느 일이든지 적합한 성질을 갖출 수 있다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일을 하기에 적합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의지를 가지고 노력할 의지가 충만한 것이 적성이라면 나는 모든 일에 적성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직업에 대한 사명감

  우리는 자신의 업무를 지속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를 오래 지속하기 위한 이유와 사명감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면서 힘든 상황에 봉착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이유가 필요하며 일을 지속하기 위해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명감은 가족이 되기도 하고 일에 대한 만족감과 성취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권한과 권력이 되는 등 다양한 요소가 존재한다.


군인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명감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변화한다. 나는 해군사관학교 생도시절, 해군을 좋게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으로 해군 장교라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을 가슴속에 품고 장교로 임관했다. 임관 이후에는 내 직책에서 내 역할을 충실히 다하는 과정 속에서의 성취, 인간관계에서의 만족, 국가를 위한 희생과 명예심이 사명감이 되었고 군생활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해군과 해군 장교라는 직업에 대한 만족, 더욱 성실하고 열심히 생활하며 더 많은 것을 얻고 싶다는 나의 생각이 해군 장교라는 직업을 유지해나가는 사명감이 되었다. 그리고 해군 장교로서 내가 가졌던 사명감의 기저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는 나의 사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전 19화 해군 장교 이야기 #19 동기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