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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전 Sep 20. 2019

해군 장교 이야기
#15 국군 정보사령부

충성은 금석을 뚫는다.

인생의 전환점

  내 군생활 중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 있다면, 첫 번째는 순항훈련이며 두 번째는 정보사령부에서 근무했던 경험이다. 나는 해군 잠수함 사령부에서 잠수함 승조원으로서 근무를 마치고 난 뒤 정보사령부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정보사령부 내 해군부대의 일원으로서 장비를 인수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영화 '인천 상륙작전'에서 다뤘던 X-ray 작전은 정보사령부 첩보 공작원들의 이야기다.


  정보사령부는 국군 부대로서 육해공군이 통합되어 구성된 조직이며, 국군의 첩보부대로써 군 내의 정보, 보안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한다. 6.25. 전쟁 시 전세를 크게 역전시켰던 인천상륙작전의 사전 공작과 첩보작전 또한 정보사령부의 성과 중 하나다.


  난 정보사령부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육해공 삼군이 통합되어 운용되는 부대는 상급 부대가 아닌 이상 거의 없었고, 해군에게 정보사령부에서의 근무는 장기간 군 생활을 하더라도 근무해볼 가능성이 매우 낮은 부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중위라는 계급을 가진 나 같은 초급장교가 통합부대에서 근무할 기회를 갖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온 부분이었다. 이러한 특징과 함께 삼군이 모인 정보사령부는 해군과 어떻게 다른 시스템으로 부대가 운영되는지 관심이 있었다.



'충성은 금석을 뚫는다'라는 문구는 정보사령부의 대표 슬로건이다. 너무 멋진 말이다.


  내가 속해있던 부대는 정보사령부 내에서도 해군의 비율이 높은 부대였지만 상급부대, 타 부대와 소통하면서 티군의 다양한 사람들과 업무를 협조하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나는 정보사령부에서 근무하면서 타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타군에서 해군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도 접할 수 있었다. 해군이라는 강물 속에서만 있었던 내가 국군이라는 바닷속에서 근무하고 생활할 수 있었던 기회는 국군 내에서 해군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안에 몸담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주었다. 다양한 종류의 자극과 새로운 시선은 내가 더 폭넓은 사고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부서장이 되다

  나는 정보사에서 부서장 역할을 처음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내가 주체적으로 업무를 추진하여 진행경과를 확인하고 부대장에게 주요 사항을 보고하는 경험을 하면서 내가 진짜 부서장이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인수하는 장비와 관련된 의제가 회의에서 나올 때면 주관부서의 부서장으로서 의견을 힘 있게 개진하기도 하면서 부서장이 되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부서장으로서 장비 인수에 대한 진행상황을 지속 확인하고 있는 부대의 유일한 장교였기 때문에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해야만 했다.


  나는 부서장으로서 부대장에게 업무 추진 계획과 결과를 보고하고 정기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문건들을 반복해 작성하면서, 보고서 작성 능력 키울 수 있었다. 또 업무보고를 위해서 예상되는 질문을 미리 예상해보며 답변을 준비해보고 부대장님의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다시 또 공부하고 확인하는 절차를 반복하면서 좀 더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고 더 많이 공부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있었다.


  우리 부서는 아직 장비가 인수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선발대로서 소수의 인원만 증원되었으며, 성공적인 인수를 위해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부서원로 구성되었다. 준위, 원사, 상사로 이어지는 부서원들은 군생활이 길지 않았던 나에게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베테랑인 만큼 워낙 성향이 훌륭하고 전문성 있게 업무를 처리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서로 협조하며 함께 업무들을 하나씩 처리해나갈 수 있었다. 나는 우리 부서와 부서원들을 대표해 목소리를 냈으며, 그들의 고충을 듣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마찬가지로 그들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내공이 쌓인다는 것

  초급장교는 업무와 생활에 있어서 대부분의 상황들을 처음 접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잘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뭐든지 열심히 하지만 어설픈 경우가 대부분이며, 어설프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열정, 패기가 요구된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고자 하는 진심과 노력은 모든 사람에게 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차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누적되는 배경지식들과 다양한 상황을 접했던 경험은 우리를 노련하게 만들어주며, 새로운 업무와 생활에 적응하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의식적인 노력을 감소시키면 결과물을 덜 어설프게 만들어준다. 이것이 군 생활 속의 내공이다. 군인들은 각자 자신의 상황 속에서 경험을 축적해나가며 내공을 쌓아간다.


내공은 우리를 노련하게 만들어준다.


  해군 장교들은 다양한 직책을 수행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업무와 생활환경에 적응해 나가야만 한다. 1~2년마다 이루어지는 인사이동은 장교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훌륭한 지휘관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으며, 여러 함정을 탔던 경험과 다양한 보직에서 업무를 수행했던 경험은 지휘관에게 큰 강점이 될 수 있었다. 장교들에게 인사이동이 꾸준히 이루어진다는 말은 주기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적응해야 한다는 뜻이었으며, 군 내에는 워낙 다양한 업무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를 처음부터 배울 필요가 있었다.


  내공은 모든 것이 새로운 상황에서 일찍이 적응하고 돌발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준다. 모든 일들은 세부적인 부분에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꿰뚫는 본질이 있으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에 조금씩 다가가게 되면서 처음 해보는 일도 그럴듯하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나 또한 처음 소위로 임관했을 때와 전역하기 전 대위로서 새로운 직책을 맡았을 때를 비교해보면, 똑같이 처음 해보는 일을 하더라도 덜 당황하면서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장비 인수의 교훈

  내가 인수하던 장비는 현대중공업에서 주관하여 제작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이를 외주를 통해 제작을 했으며, 외주업체는 다시 하청업체를 통해 장비 제작을 위한 설계와 자재, 프로그램, 전자장비 등을 조달하고 제작했다. 우리 부서원들은 운용부대 및 인수 부대의 대표로서 현대중공업에서 매월 주관하는 제작회의에 참가하였으며, 현대중공업 담당자, 제작업체 및 하청업체의 담당자들과 함께 진행경과를 확인하고 세부사항에 대해 의견을 맞추어나갔다. 우리 부서에서는 제작 단계별 운용자로서 운용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부대의 요구를 개진했으며,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맞춰나가는 과정을 통해 장비에 대한 전문성 또한 키워나갈 수 있었다.


  장비 제작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과, 외주업체가 있는 세종시에 출장을 가면서 다양한 업체에서 일하는 담당자들을 만나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민간업체에서 수주를 받아 어떤 식으로 장비를 제작하고, 회의를 통해서 어떻게 개선점을 도출하고 해결해나가는지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하청업체에 부품을 의뢰하여 종합하고 훈련 장비를 구성하는 세부 장비를 담당하는 회사의 실무자들이 와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했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지속적으로 회의에 참가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수확은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공사 진행의 근거가 되는 계약서와 관련 근거를 철저하게 확인하는 방법을 익힌 것이다. 장비 제작을 위한 계약서부터 시작해 만드는 과정과 이후 운용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관련 근거와 문서들을 확인해야만 했으며, 근거 안에 명시된 문구 하나하나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해석의 차이점이 생기는 부분에 대해서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고 이해를 일치시키는 과정을 통해 혼란을 줄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 간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기도 하지만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고 오해의 소지를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진행 공정을 훨씬 단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회의 담당자들은 관련 근거를 수정해나가고 새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일치화해갔다. 나는 장비를 인수하여 운용하는 실무자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관련 근거들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아야만 했다.


  나는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회의에 참가하면서 각 업체의 대표자들과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었다. 40~50대의 업체 담당자들은 운용부대의 대표로 회의에 참가한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었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되었다장교로서, 부서의 대표로서 내 역할에 맞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하여 노력했다.



관련 근거

  나는 관련 근거를 통해 제작되는 훈련장비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득 사람의 표현 또한 같은 메커니즘으로 구성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각자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가치관과 생각, 습관으로 구성된 개인적 관련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입각하여 무의식으로 전환된 형태인 말과 행동으로 표현다. 나의 말과 표정,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과 생기는 충돌과 마찰은 결국 내 행동의 근간이 되는 가치관과 생각, 습관이라는 관련 근거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의견차를 좁히고 오해를 방지하며 성공적인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관련 근거들을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내가 경험했던 회의에서의 절차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느꼈다인간관계에 있어 나타나는 갈등과 충돌은 서로의 생각을 일치화하고 오해를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며, 이후 관계를 더욱 잘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뿌리가 된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발단은 내 안에서 시작된다. 나를 다스리고 나의 생각과 사고를 바꾸면 무의식적으로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며, 이에 따라 외부의 피드백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개선된 나의 가치관과 생각, 습관은 앞으로 내 인생 전체에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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