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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전 Sep 17. 2019

해군 장교 이야기 #14 한 배를 탄다는 것

운명공동체가 되다.

우리는 하나다

  흔히 같은 상황에 직면해 이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을 가리켜 '같은 배를 탔다'라고 말하곤 한다. 같은 배를 탄다는 것은 같은 배 위에서 함께 항해한다는 뜻이며, 이후의 판단과 결정, 행동에 대한 책임 또한 함께 진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같은 배를 타게 된 이상 조직 전체의 위험과 책임은 곧 나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각 소속원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행동보다는 조직 전체를 위한 사고와 행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때때로 전체를 위해서 본인이 희생하는 부분이 생기게 되기도 한다.


함정에 탑승하는 승조원들은 모두 고유한 역할이 있으며, 불필요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해군으로 근무하면서 함정을 타게 되면 우리는 말 그대로 한 배를 타게 된다. 같은 배를 타게 되었기 때문에, 승조원들은 운명공동체가 되어 함께 함정을 운용하고 앞으로 전진해 나가며 임무를 수행한다. 해군의 경우 한 함정에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백 명이 넘는 승조원들이 타지만 그 많은 인원 중 불필요한 직책과 역할은 하나도 없다. 승조원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야만 배가 이상 없이 운용되고 항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역할은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요구되며 협조가 당연시되는 환경이 조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한 배를 탄다는 소속감과 동질감으로 이어 강한 신뢰와 협동성을 구축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한배를 타는 승조원들에게는 협동이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함정 안에서는 모든 개인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에 협동성이 강조된다. 함정 특성상 운용을 할 때, 여러 명이 함께 조화를 이뤄야 하는 만큼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혼자서 해결하기 어렵 다른 부서 및 인원들과 협조해서 해결해야 하는 업무들이 많기 때문이다. 함정의 승조원들은 서로 도우며 일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공통적, 보편적인 인식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업무 협조는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편이었으며, 이런 부분은 처음 장교생활을 하면서 부족한 점이 많았던 내가 함정과 관련된 지식을 습득 선배를 포함한 승조원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아 빨리 적응하 내 역할을 해 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도 내가 내 역할을 확실하게 해 낼 수 있어야 그들 또한 나에게 도움을 받고 그들의 일이 더욱 수월해지기 때문에 더욱 협조적으로 도움을 주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해타산적 의도보다는 전우애와 이타심이 우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조직을 이루어 한 배를 타고 함께 항해하면서 같은 환경 속에서 다양한 상황을 접하고 이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며 희로애락을 함께하다 보면 소속감,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특히 해군은 배를 타면서 대한민국을 지키고 목숨을 담보로 함께하는 사람들이었기에 경비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날이면 별 탈없이 복귀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고 료들과 함께 임무를 수행했기에 그것이 가능했음을 인정하게 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동료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유대감을 느끼곤 했던 것 같다. 특히 마음이 잘 맞아 팀워크가 잘 맞는 부대원들과 함께 하다 보면 대한민국에서 우리의 팀워크가 최고라는 자부심 느끼는 경우도 있다. 유쾌하고 훈훈한 분위기 속 선배들 또는 대원들과 회식을 함께하다 보면, 내가 과연 배를 타지 않았다면 이런 좋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싶었던 적도 종종 있었다. 전역을 하게 된 지금, 그때와 같은 감정을 다시 겪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나중에 조직을 만들어 이끌게 되는 입장이 된다면, 한 배를 타고 함께하는 입장에서 구성원들 사이에 끈끈한 유대감과 신뢰, 애정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충무공 이순신함-무의공 이순신함 교류행사, '우리는 하나다.'


 인사이동 시기가 되어 다른 직책을 부여받고 배를 내리게 되는 상황에서는 기존 생활의 정리와 함께 새로운 환경의 변화가 기다리고 있기에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게 되지만, 그 감정들 중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고맙고 좋은 추억을 함께 했던 좋은 동료들과 이별하여 다음을 기약했야만 했다는 사실이었다. 아쉬워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기에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었음에 또 한 번 감사하게 된다. 해군이 자주 쓰는 말 중에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가 있다. 해군사관학교 생도 시절부터 이 구호를 써왔음에도 그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장교로 임관하여 배를 타고난 이후였던 것 같다. 하나가 될 수 있는 '우리'가 있었음은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한통 속 사람들
잠수함 승조원들은 한 통 안에서 생활한다.

  배를 타면서 '한 배를 탄다'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면 잠수함을 타면서는 '한 통속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상당한 기간을 한 통 속에서 함께 보내며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같이 생활하다 보면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이해하게 된다. 서로의 성향과 습관, 호와 불호에 대한 요소들을 알게 되고 이에 대한 이해가 공유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더욱 존중하고 배려하게 다. 좁은 한 통 속에서 함께 항해하며, 서로의 인간관계 속 적정 거리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인간관계 능력에 있어서도 더욱 진전이 있었다. 소음이 통제되는 좁은 잠수함 내에서 생활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조금 더 예민해지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더욱 이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과 엉켜 생활하면서 개개인마다 조금씩 다른 관계의 적정 거리를 맞춰가면서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경험은 거리가 가까울수록 관계 또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적정거리에서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경험이었다. 잠수함을 타고 시행착오 겪으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과 통찰도 조금씩 성장해갈 수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 이해가 요구된다.


  '한통 속'이라는 말을 사전서에 찾아보면, '서로 뜻이 맞아 어울리는 무리'를 뜻하며 주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 문구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실 한통 속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과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반대로, 하나의 조직 구성원들이 '한통 속'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이 같은 방향성과 생각을 품기 위한 수많은 노력과 구성원들 간의 이해와 존중, 배려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멋진 의미로 느껴지기도 한다. 난 잠수함을 타면서 좋은 선배들, 대원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좋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한 통속'이 되고 싶었다. 나는 닮고 싶은 그들의 장점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고 이런 노력이 누적되어 또 다른 내 성장의 양분이 되었기를 희망한다. 잠수함이라는 '한 통'은 내게 자부심이자 구성원들과 행복한 경험을 공유했던 감사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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