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전 Sep 10. 2019

해군 장교 이야기 #12 대우 조선소

조선소 근무를 경험하다

잠수함 수리

  모든 함정은 정상적인 함 운용을 위해 정기적인 정비와 및 수리를 실시한다. 잠수함 또한 예외는 아니었는데, 잠수함은 부대 내의 정비창에서 실시하는 정비와 수리 외에도 8년마다 한 번 씩 1년이 넘는 장기간의 수리와 정비기간을 갖는다. 그리고 8년마다 하는 수리의 경우 군내에서 자체적으로 정비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 조선소로 인도하여 조선소의 잠수함 전문 인력들이 직접 수리와 정비를 담당한다. 마침 내가 이순신함에서 근무했던 시기는 8년 만에 이순신함이 조선소에 들어가 수리하는 해였기에 나는 이순신함이 건조된 대우조선소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나는 거제에 위치한 대우조선소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거제에 위치한 대우 조선소에서 했던 일은 주로 잠수함 수리를 하면서 관련된 부서의 일정과 진행상황을 확인하고 대외 지역이라는 새로운 업무환경에서 부대 운영을 하기 위한 보안업무, 부대를 유지하면서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행정업무와 인원관리다. 수리를 하면서 새로운 업무 스케줄에 적응해야 했지만, 실제 함정업무에 비하면 업무가 많은 편도 아니었고 민간 기업에서 사무공간을 얻어 근무했던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생활여유가 있었다. 나는 거제 조선소에서의 근무가 교육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경험했던 육상에서 이루어지는 근무였다는 점과 처음으로 군부대가 아닌 민간기업에 출근하여 일을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떠있었다. 과연 민간 기업에서는 어떤 업무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군대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라는 의문과 호기심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거제 조선소 생활

  출퇴근으로 시작해서 식사, 업무 진행 및 협조 등의 하루 대부분의 업무와 생활은 조선소의 시스템에 맞추어서 진행되었다. 심지어 휴일도 부대가 아닌 조선소의 일정에 따라 맞추어졌는데, 잠수함 승조원들은 군복을 입고 근무를 했지만 실제 조선소의 일원이 된 것처럼 함께 업무를 진행했다. 업무적으로 협조 관계를 맺고 있는 조선소 인원들과 회식도 하고 운동도 같이 하는 등 상호교류하 나는 조금씩 조선소의 삶에 적응하게 되었다. 마치 대우조선소에서 해군 잠수함의 대표로서 근무를 하는 느낌도 받았다.


조선소 인원들의 출퇴근 모습,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인원으로 빽빽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부분의 조선소 인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는 사실이었다. 워낙 근무하는 직원이 많고 모두 차를 가져올 수 없는 물리적인 환경 때문이었지만, 마치 동남아처럼 대부분의 직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광경은 처음 겪어보는 나에게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장교들은 숙소에서 대우조선소에서 제공하는 출퇴근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거나 배정받은 공용차량을 타고 장교들끼리 함께 출퇴근을 하는 형태로 사무실로 이동했다.


'이순신함' 장교들과 인도네시아의 '나가파사함' 인수요원들,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하루 일에 반영되어있는 오후의 전투체육활동 시간이 되면 보통은 업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운동하러 가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지만, 조선소에서는 종종 장교들끼리, 대원들과 함께 체육활동도 할 수 있었다. 일정이 잘 맞아떨어지는 날이면, 업무 협조관계에 있는 조선소 사람들과 함께 체육활동을 하거나, 마침 이순신함의 수리를 하던 기간 동안 잠수함을 인수하고 있었던 인도네시아의 '나가파사'함 승조원들과 체육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순신함의 승조원들과 함께 여러 협조관계의 인원들과 친선교류를 하고 함께 회식도 하면서 친목을 다지고 원만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새로운 업무 환경 속에서 적응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민간 부대에서 군의 업무를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수반되는 부가적인 업무들도 많이 있긴 했지만, 해군사관학교에 입교한 이후 아르바이트를 포함해서 민간업체에서 일을 해본 경험은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대우조선소의 업무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고 직원들이 일을 처리해 나가는지에 관심이 있었다. 내가 얻은 결론은 군대와 민간기업의 일 처리 시스템과 방식에 큰 차이는 없었다는 점이다. 하나의 큰 업무를 위해 세부 과제를 분류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 협조부서와 함께 회의하고 의견을 맞추어나가면서 일을 진행시키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군대의 업무가 좀 더 정형화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우조선소는 세계적인 잠수함 건조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소에서 근무하면서 조선소의 업무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새로운 환경 속에서 분위기와 업무 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점은 큰 도움이 되었다.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한 업무환경과 일반 기업의 인원관리와 업무 스타일을 비교하고 유사점과 차이점을 느껴보면서, 각 시스템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군대의 장점

  내가 느낀 군의 장점으로는 먼저 군대는 상부의 지시나 명령에 대하여 예하부대와 개인이 즉각 이행하는 편이며 스스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군 내에서도 여러 사건들과 사고가 존재하지만 모든 사회에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며, 군대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군인만큼 지시에 잘 따르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들도 없다.


  또 군은 잘못된 것에 대해서 스스로 인지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은 조직이다. 부서-개인 간 업무협조가 잘된다는 점도 장점인데, 보통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으면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업무의 주관이 누구인지 싸우는 것이 비일비재한 여러 일반 기업들과 달리 군인들은 서로 문의하고 협조하는 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도움을 많이 받는 만큼 나도 도움을 줘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들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같은 군인으로서 느끼는 전우애와 소속감도 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음주, 자살, 성관련 문제, 안전사고 등과 같은 잘못된 사건사고와 관련해서도 군 내에서 문제가 생기면 특히 더 사회적으로 조명을 받다 보니 대부분의 군인들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각별히 노력하고 신경 쓴다는 사실 군에서 각종 교육, 강조 등의 다양한 노력을 통해 사건사고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수많은 장점 중 하나가 되었다.


시위하는 조선소 인원들, 분위기가 살벌하다.


  그 당시 대우조선소를 포함한 국내의 조선소들은 경영난으로 힘든 시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해외 수주의 감소와 타국 경쟁업체들의 등장으로 국내 조선업이 위기에 빠진 상황이었으며, 특히 대우조선소가 경영적으로도 특히 더 어려운 상황에 있어 매각을 하거나 구조조정을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나는 이런 상황 속 우울한 분위기가 직원들 사이에서 흐르는 것을 직접 느끼기했다. 사측에서는 초과근무를 제한하고 업무시간을 조정하는 등 자체적인 조치를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직원들은 이에 대항하여 출근시간, 점심시간에 시위를 하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들의 집회와 시위를 뉴스나 영상이 아닌 실제로 목격하면서 그들의 방식이 다소 과격하고 살벌하다는 생각에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고충과 역경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군인으로서 군대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바깥 사회 세상이 치열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사건이었다.



해군 출신들과의 만남

  조선소에는 해군을 전역하고 취업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 실제로 해군의 함정을 건조하는 조선소 입장에서는 배를 만들고 시험해보는 과정 속에서 배를 직접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들이 반드시 필요했고 타 조선소와 경쟁해서 수주를 따오는 것에 있어서도 해군 내부의 구조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선소에서 해군 출신의 직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해군사관학교 선배들도 꽤 있었다. 해군 출신의 선배들과 만나 그들이 전역을 결심하게 된 계기, 조선소에서 일하게 된 계기, 현재 그들의 삶, 이전 군 생활에 대한 이야기 등에 대해 들으며 내 삶과 나를 둘러싼 환경을 다시 둘러볼 수 있었다. 나는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을 듣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경험과 행동이 흥미롭게 다가오곤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 군인의 삶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을 객관화시켜 되돌아보며, 군인의 장점과 단점, 내가 군생활을 하면서 순응해야 할 부분과 타협하고 극복해야 할 부분 등 다양한 개념을 정립할 수 있었다. 나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내 경험과 생각을 전달해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내가 그들에게 삶에 좋고 유익한 얘기를 많이 들었던 것처럼, 나도 상대방의 상황에 맞추어 도움이 되는 얘기를 잘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 11화 해군 장교 이야기 #11 기동력 확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