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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전 Sep 08. 2019

해군 장교 이야기 #10 SS-068 이순신함

잠수함 생활

이순신함 승조

  나는 사관학교 졸업 전에는 다른 병과로 전과하여 함정 생활보다는 육상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하지만 순항훈련을 다녀온 이후에는 전역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해군 생활을 진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며 잠수함 장교를 선택했다. 장교로서 잠수함을 승조했던 경험은 내 진했던 해군 생활의 정점이었다. 잠수함 자체의 매력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들 함께 근무하며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아무나 탈 수 없는 잠수함 승조원이라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자부심이 되었다.

 

무의공 이순신은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충무공 이순신의 동명이인인 부하 장수다.


  잠수함 교육기간을 수료한 후 나는 이순신함의 전투정보관으로서 직책을 부여받아 근무하게 되었다. 해군 잠수함의 이름을 정하는 방식은 우리나라 역사의 해전 명장과 독립투사의 이름으로 명명된다. 흔히 이순신이라고 하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 제독을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잠수함의 이순신 제독은 무의공 이순신으로 충무공 이순신 제독 예하에서 활약했던 동명이인 장수의 이름이다.


수중 정보를 바탕으로 자료를 분석하고 있는 당직자들,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이순신함에서 전투정보관으로서 나는 작전관 선배를 보좌하여 함의 작전과 항해와 관련된 부분을 담당했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 아침 브리핑을 준비하여 항해 조건과 일정, 작전현황 등에 대한 보고를 했고 작전관 선배와 함께 당직을 서면서 항해를 잘할 수 있도록 정보를 올바르게 해독하는 방법과 돌발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방법, 잠수함의 장비들과 특성, 운용방법에 대해서 차근차근 하나씩 배워나갈 수 있었다. 잠수함 승조원들은 대부분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분위기 공부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도 빠르게 잠수함에 대해서 배우고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첨단과학의 집합체

  잠수함은 수상함과 같이 시각정보를 바탕으로 기상환경과 작전상황을 판단할 수 없 함 운용과 작전개념에 있어 수상함과는 큰 차이가 있다. 잠수함은 잠항해서 물속으로 항해하기 때문에 바닷속에서 들어오는 소음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장애물의 종류와 움직임을 계산하고 예측하여 항해를 한다. 함정의 기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당직사관 임무를 수행하는 장교들은 제한적으로 주어진 조건들을 바탕으로 판단하여 조함 지시를 내려야 했기 때문에 이를 위해 상당한 경험과 공부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나는 당직을 서면서 동료들과 협동하여 정보를 하나씩 처리해 나가면서 항해를 하곤 했다. 판단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국 당직사관 임무를 수행하는 장교가 가진다는 점과 수중이라는 폐쇄된 환경 속에서 잘못된 판단은 더 큰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은 더 많은 책임감을 갖게 만들었으며, 내가 정확한 판단을 위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 더 많은 경험과 공부, 노력을 하도록 만들어주었다.


수중 항해 중인 3000t급 잠수함 시뮬레이션 사진, 잠수함은 항공기와 같은 3차원 운동을 한다.

    

  소리를 듣고 상황을 판단해서 항해한다는 점은 항공기, 수상함과 차별화되는 잠수함의 가장 큰 특징이다. 난 소음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들이 많다는 사실을 잠수함을 타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물속을 항해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공부하고 배우고 음향장비, 레이더, 통신장비, 전기 기관, 무기체계 등 다양한 전투체계가 종합되어 운용되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잠수함은 첨단과학과 기술의 집합체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 인류 과학의 가장 큰 발전은 전쟁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잠수함 또한 비대칭 전력으로서 지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에서 효과적으로 화력을 투사할 수 있도록 만든 인류 최고의 첨단 과학기술의 결과물이다.


달의 위상은 야간 밝기에 영향을 미치기에 은밀성이 요구되는 잠수함에게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잠수함은 아군에게도 발각되어서는 안 되는 은밀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잠수함을 조함 할 경우에는 수상함보다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더욱 많다. 또 잠항 중 사고가 생기면 큰 사고로 직결되기에 잠수함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해역과 기상, 조석과 일출, 수중 장애물, 일몰시간, 달의 위상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며 항해를 해야만 했고 이와 관련된 더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했다. 우리나라의 잠수함 승조원들은 아군을 포함하여 적에게도 절대 들키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런 차별화되는 특징은 잠수함 승조원들에게 그만큼 더 많은 자부심을 갖게 했으며, 같은 상황을 겪으며 항해하며 잠수함 승조원끼리의 동질감과 소속감, 전우애로 승화되었다.



잠수함 생활

  주변 소음을 통해 항해하는 잠수함은 마찬가지로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소음 또한 상대방에게 정보가 될 수 있기에 발생하는 소음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함 내부에서의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승조원들은 함 내에서 움직이거나 장비를 움직일 때, 화장실을 이용할 때에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움직이고 소음을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며 대화를 할 때도 항상 차분하게 조심해서 소곤소곤 말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있었다. 씻을 때도 물을 계속 틀어놓으며 씻기보다는 물을 받아놓고 씻는 식으로 소음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환경이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어느새 금방 적응하고 있었다.


좁은 공간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무장과 장비가 우선되기 때문에 생활공간이 매우 좁다.


  잠수함은 정말 좁다. 세계에는 큰 잠수함도 있지만 국내에는 생활에 넉넉한 공간으로 구성된 잠수함은 아직 없기에 좁은 공간에 적응해서 생활해야만 했다. 잠수함이라는 제한된 크기의 공간 속에서 작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승조원들의 의식주를 해결할 공간, 무장, 동력을 담당하는 장치 등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지만, 임무 특성상 장비와 무장이 주가 되다 보니 승조원들의 생활공간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승조하는 인원수만큼 침대가 마련되어있지 않아 당직자들끼리 번갈아가며 침대를 공유하기도 하고, 돌아다닐 공간이 부족해서 당직을 서는 시간이 아니면 자거나 제한된 공간에서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곤 다. 참수리를 타면서 배가 정말 좁다고 생각했지만, 잠수함은 더욱 좁았고 동료 한 명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복도로 나오면 다른 인원은 피해주기 위해 침대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환경이었다. 마찬가지로 이런 생활 또한 익숙해져 갔다.


  잠수함은 빛이 들어오지 않기에 일출시간과 일몰 시간에 맞추어 실내조명을 켜고 끄면서 생활 리듬을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서 생활하기에 잠수함 내 공기의 비율을 맞추기 위장비를 갖추고 있다. 덕분에 연료와 식량이 허용되는 한 수중에서 별 탈 없이 꽤 오랜 시간을 항해할 수 있었다.


  잠수함 내부는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시원하다는 특징이 있다. 잠수함 내부가 더우면 장비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장비 효율을 위해서 항상 시원한 상태로 유지해야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여름에도 잠수함 내부에서는 잠바를 입는 등 항상 쾌적한 상태에서 업무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항해를 나가면 외부 인터넷망과는 완전히 차단이 되었기 때문에 행정업무를 전혀 할 수 없어 작전과 출동임무에 전념할 수 있었지만, 항해를 마치고 육상으로 돌아오면 그동안 쌓인 업무를 처리해야만 했다.


식사하는 승조원의 모습, 식탁이 좁아 돌아가면서 식사를 한다.


  잠수함의 매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식사다. 우리나라 군 내에서도 해군의 식사는 맛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해군 내에서 잠수함 식사는 더욱 맛있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특수한 조건 속에서 근무를 하기 때문에 식비로 할당된 예산이 좀 더 많고 물속에서 항해하는 특수성으로 취사 시에 불 사용에 대한 제한이 있어 주로 열로 쪄서 먹을 수 있고 보관이 상대적으로 유용하며 음식물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 스테이크, 수육과 같은 고기류와 채소류를 중심으로 메뉴가 구성되었다. 잠수함을 탈 때만큼 고기를 많이 먹었던 적도 없었던 던 것 같다. 특히 제한된 공간 내에서 생활이 제약되다 보니 맛있는 음식은 항해를 하면서 가장 큰 삶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다.


수상 항해 중인 잠수함, 함교에서 조함을 하면 보게 되는 광경이다.


  잠수함을 타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몇 주간의 출동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바다 위에서 부상하여 처음으로 바깥공기를 마시던 기억이다. 한 밤 중이었고 옅은 달빛에 바다가 아름다운 노란빛으로 물들었으며, 고요한 수면 위에는 잠수함의 물을 가르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맑고 상쾌한 바닷바람이 가슴을 가득 채웠고 하늘의 수놓은 별과 임무를 마쳤다는 성취감,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마음속에 소용돌이쳐 당직을 서는 내내 그 아름다운 광경을 음미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사람이 평생 간직하고 가는 인생의 아름다운 몇몇 장면들이 있다면 내게는 그중 한 장면이다.



잠수함 장교 문화

  잠수함 장교들 사이에그들만의 문화가 있다. 내 잠수함 생활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당시 이순신함 장교들의 문화일 수도 있지만 잠수함 장교들끼리는 더욱 끈끈한 전우애로 뭉친다는 특징이 있었고 항상 선배가 후배에게 밥을 사주는 문화가 있었다. 군생활을 마친 지금도 가장 애정이 넘쳤던 인간관계의 대상은 이순신함을 탈 때의 동료들인 것 같다. 이순신함에서는 항상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는 문화가 있었고, 나는 막내였기 때문에 항상 얻어먹기에 바빴다. 한 번씩 고마움과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내가 계산하고자 하면 받은 만큼 나중에 후배에게 그대로 베풀어주라던 멋진 선배들 사이에서 생활했다.


  나는 그들의 관심과 배려에 모든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선배들의 업무에 비해서 난이도나 중요성의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빈틈을 보이거나 실수를 하지 않 업무기한에 늦거나 놓치는 일이 없도록 나름대로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부분은 드러나기 마련이었지만 선배들은 항상 이해해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매년 정기적으로 받아야만 하는 보안감사에서 나의 실수에 대해 부장님과 함장님이 내 입장을 대변해주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직접 책임지겠다고 나서 주셨던 일, 아버지가 아프시면서 주말마다 서울에 갔던 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올라갈 수 있도록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게 배려해주었던 , 장거리 출장 시 운전이 미숙한 날 대신해서 선배들이 대신 운전을 해주었던 , 출동을 마치거나 주요 업무를 끝내고 나면 장교들끼리 회식을 하면서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를 했던 문화는 내가 그들에게 무한한 감사함과 애정을 느끼도록 만들었으며, 나는 그들의 인성과 성품, 능력에 반해 진정으로 존경하고 따르게 되었다. 나는 그런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꾸준히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내 해군 생활 중 그들을 만났던 것은 행운이었으며, 그들 또한 나를 만났던 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 해군 내에서 잠수함 장교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깐깐하고 성격이 예민하다는 편견이 있다. 따져야 할 것이 많고 업무를 철두철미하게 처리해야 하는 잠수함의 직업 특성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사람 나름이 내가 만났던 잠수함 장교들은 예민하고 따지기보다는 마음이 넓 너그럽고 배려를 해주는 사람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나는 소위로 임관해서 DDH 구축함을 지원해 청해부대로 해외 파병을 가길 희망했지만 결과적으로 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잠수함을 지원하면서 미국 중심의 동맹국 해양 연합훈련인 림팩훈련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지만 림팩 또한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무 생활을 하면서 해외파병과 연합훈련만큼 가치 있고 좋은 경험을 충분히 많이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되돌아보면 오히려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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