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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전 Sep 09. 2019

해군 장교 이야기 #11 기동력 확보

내 차 '연두색 봉봉이'

차가 필요해

  나는 적어도 장교 생활 5년 차가 되는 순간까지는 차를 살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전역의 기로에 서는 5년 차가 될 때까지는 저축을 최대한 열심히 해서 돈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를 사게 되면 보험비와 기름비, 유지비용 등으로 인해서 지출이 늘어날 것을 염려하기도 했고 군생활을 하면서 차 없이 사는 것도 나름대로 익숙해졌기에 차를 사지 않아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 운전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차를 사서 몰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운전면허를 상대적으로 늦게 취득한 편이었다. 잠수함 교육을 받던 시절 시간적인 여유가 있마침 운면허를 따 보기로 마음먹었고 동기의 차를 빌려 연습하거나 학원에서 연수를 받으면서 시험을 준비했다. 마침 시험 당일에 비가 왔기 때문에 긴장을 많이 했지만, 운 좋게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다.


잠수함 부두는 부대 입구에서 꽤 멀어 차가 필요했다.


  나는 잠수함 부대에서 근무하면서 차를 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잠수함 부대는 부대 내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어 더욱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출퇴근을 걸어서 하게 되면 1~2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잠수함 교육을 받던 시절에는 차가 있는 동기에게 차를 얻어서 타고 다녔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 않았지만, 잠수함을 타게 되면서 내 차의 필요성에 대해 느끼게 되었다. 개개인의 업무가 다른 실무생활 속에서 차를 태워주는 선배의 업무 스케줄에 맞춰야 하는  좀 더 일찍 출근하거나 야근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내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편했다. 한 번은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선배가 퇴근하기를 기다렸지만, 선배가 새벽까지 일을 하는 바람에 기다리다가 결국 걸어서 퇴근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차를 사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차를 사다

    장교에게 있어 차는 필수재에 속한다. 업무와 작업을 처리하는 과정 속에서 함정과 사령부, 타부대를 오고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 그 거리 또한 짧지 않기 때문이다. 출장도 자주 가는 편이고 무엇보다도 출퇴근 시간이 항상 불규칙했기 때문에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차를 사는 것이 필요한 환경이다. 함장님께서는 차를 사지 말고 선배들 차를 얻어 타면서 저축을 열심히 하라고 조언해주셨지만, 나는 결국 차를 사고야 말았다.


해군 내에도 사고팔기 게시판이 있다.


  잠수함 동기들은 잠수함 교육을 받으면서 차의 필요성을 느끼고 대부분 이 기간 중에 차를 샀다. 대부분 동기들은 중고보다는 새 차를 샀다. 나는 나름대로 타협을 해서 유지비가 저렴하고 싼 중고차를 구매했다.


  해군 인트라넷에는 사고팔기 게시판이 있다. 보통 군인끼리는 싸게 사고파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 번씩 들어가서 구경하며 종종 애용하곤 했는데, 나는 이 게시판을 통해서 군인에게 내 첫 차 마티즈를 매우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첫 차를 가지게 되었다.


내 첫차 '연봉이', 잘빠진 녀석


  나는 내 차에 '연두색 봉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줄여서 '연봉이'라고 불렀다. 연봉이는 기동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나는 이제 출퇴근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이동시간도 확실하게 단축되었. 40km~50km의 속도 제한이 있는 부대 내에서는 최적의 경제속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비가 좋아 기름값도 거의 들지 않았다. '연봉이'는 수동이었기 때문에 운전에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내 활동 범위도 넓혀져 갔다. 삶의 질이 확실히 높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사를 하는 경우 전에는 택배를 통해 짐을 옮겼지만, 이제는 직접 운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사를 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번거로움이 크게 줄었다. 또한 부대가 지역의 중심지보다는 외각에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차를 운전하면서 이동시간이 단축되고 갈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 것은 큰 장점이었다.


  첫 차를 거래하면서 자동차 등록소에서 등록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던 길이 떠오른다. 운전면허를 땄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운전을 했고 익숙하지 않은 도로를 주행하며 신호에 의해 정차와 출발을 반복하면서 시동이 몇 번이나 꺼지곤 했다. 당황했지만 마음만은 운전 선수였던 나는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대처하면서 앞으로 전진하면서 결국 숙소에 도착다. 그리고 바로 초보운전 스티커를 사서 붙였다.


내 머릿속 주행 모습과 실제 주행모습, 별 차이 없다.


  나는 '연봉이' 덕분에 운전 실력을 많이 키울 수 있었다. 옵션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풀옵션이 되어야만 했고 후방 센서와 카메라가 없는 상황에서 거리를 조율하며 주차주행을 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또  차가 작았기 때문에 고속도로를 타거나 고속으로 길을 주행할 때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방어운전이 생활화되었다. 그리고 가속이 느려 과속이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범 운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습관은 지금까지도 유효하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첫 차를 중고로 경차를 구매하는 것 꽤 좋은 선택지라는 생각을 한다.



차를 팔다

  전역을 하면서 나는 '연봉이'와 이별하고 새 차를 사게 되었다. 좋은 차를 군인에게 저렴하게 사서 3년 동안 잘 탔기 때문에 다른 군인에게 저렴하게 팔았다. 첫 차에 대한 의미부여가 있었고 나름대로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차였기에 아쉬운 마음도 컸지만 군부대 내에서 빛을 발하는 차였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보이지 않고 떠나보내기로 했다. '연봉이'는 내 군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 준 일등공신이었다. 운전 능력도 함께 길러준 연봉이는 고마운 마음이 드는 내 첫 차다. 나는 전역했지만 '연봉이'는 아직 군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항상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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