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꿈과 애도 사이』

#151

by 온정선

봄비와 함께, 올해 4월은 김윤아의 콘서트로 시작했다.

잔인한 달에 어울리는, 잔인하리만치 아름다운 공연이다.


어둡게 깔린 조명과

한 손에 종을 든 김윤아의 등장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흔들리는 종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심장 어딘가까지 울리게 하는 진동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첫 곡은 '이제 가면 언제 오나'였다.

곧 '새야 새야'가 흐르고,

무대 뒤엔 붉은색으로 물어가는 천막이 내려왔다.


천막 양 옆으로 여러 개의 사다리들이 내려왔는데

불길하면서도, 조명 때문인지 신비한 이미지였다.


무섭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소름이 돋진 않았다.

다만 "하나님이 이 공연, 나 봐도 된다고 하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해서, 아파 보여서, 그 안에 묘한 신성함이 느껴졌다.

이 공연은 고백이자 의례 같았다.


이후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너바나인지, 헤비메탈인지 모를 음악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김윤아는 무대를 찢어발기듯 노래했고, 감정은 폭발했다.

그 순간, 어떤 관객이 공연장을 나갔다.

혹시 누군가를 데리러 나간 것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간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 무대는 어떤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진솔하고

지나치게 날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남았다.

그리고 그 이후가 정말이었다.


폭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 속에서, 김윤아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시인의 문장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얹었다.


죽음과 애도, 친구에 대한 그리움, 빈자리에 대한 사색.


유진목 시인의 글,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가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하나의 예술이라는 것을 느꼈다.


노래로 추도하고, 말로 슬픔을 건축하고

오래전 그녀의 콘서트와는 또 다른,

성장


친구 쿄가 떠올랐다. 신랑과 이 공연을 함께 봤다면, 친구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아버지가 오래전 김윤아 콘서트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던 것도 생각났다.


하지만 이 공연은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종류는 아니었다.


무거웠고, 깊었고, 무엇보다 너무 진심이었다.


김윤아는 불어로 노래했고, 시를 읊었으며,

오래된 통증을 무대 위에 꺼내 올렸다. 그것은 치유라기보다 증언에 가까웠다.


나는 그 증언을 조용히 듣는 관객이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녀는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4월은 여전히 잔인하다. 하지만 어떤 잔인함은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나는 그날 밤, 무덤가에서 울린 종소리를 따라 조금 더 깊은 곳까지 다녀왔다.

아직 그 여운이 마음속에 남아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애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