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은수의 작은 수첩
은수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 수 있을 것만 같은 밤이었다.
긴 여정 끝에 돌아온 집은 익숙했고, 침대는 편안했다.
어쩌면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눈을 감자마자, 오전에 들렀던 남원의 한 골목, 작고 조용한 ‘은달래 커피집’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마신 커피 한 잔.
쓸쓸하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감미롭지도 않았지만
기묘하게 오래 남는 향이었다.
밤의 정적 속에서 커피 때문인지
며칠 동안 맡겨놓은 개츠비가 그리워서인지 은수는 다시 불을 켰다.
그리고 조용한 책상 앞에 앉아 짧은 글 하나를 남겼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려 눈을 감는 순간
오전,
은달래 커피집에서 마셨던
커피 향이 떠올랐다
기억 속 커피 향,
다시 돌아온 밤
오늘,
나 맛있는 커피를 마셨구나
아마도
다시 가기 힘든 장소
그래서 진한 향이
마음을 데우고 있을까
캄캄한 밤
언젠가는 다시 한번
남원의 골목에서
그 향과 마주하기를
별들이 가득한
밤 속의 커피 향
그리고는 불을 끄고 누웠다.
개츠비는 며칠째 친구에게 맡겨두고 있었다.
여행 내내 함께하지 못했던 고양이의 부재는, 생각보다 더 큰 정적을 남겼다.
익숙한 발소리도, 느릿한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집.
은수는 문득 생각했다.
그 커피 향이 그렇게 오래 남았던 건,
어쩌면 그날 아침에도,
낯선 숙소에서 고양이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개츠비가 곁에 없던 아침,
그 한 잔의 커피가
그 공허를 채워주었는지도 몰랐다.
고양이의 체온,
커피 향의 여운,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를 남원의 골목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