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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자

#155

by 온정선

# 2001년 12월


대학교 4학년 겨울,

천가방 하나 들고 서울로 취직했다.


대전은 이제 고향이 되었다며 울었다.


신세 지고 있던 이모는

엄마같이 따뜻하게 챙겨주셨고


계절이 바뀌기도 전에

친구들이 서울로, 회사 앞으로 찾아와 주었다.


고향 친구들도 하나 둘 서울로 취직했으며

서너 명의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8년


서울에서 생활한 지 어언 7년 차.

여전히 친구들이 서울로 방문해 주니 즐겁구나.


꿈속 배경은 지독하게도

언제나 대전의 작은 동네, 목동사거리.


집 앞 버스 정류장,

늘 손 흔들어주던 엄마가 있던 곳.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보이던 길 건너 가게 불 빛들


난 뼛속까지

대전 사람.





#2015년


반복되는 매일의 일상

회사와 집, 집과 회사.


어느새 꿈속 배경은 더 이상 대전이 아니고,

내가 있는 이 공간,

생활하는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서울은 현실이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고향으로 쉽게 돌아갈 수 없다는 것

깨닫기까지, 14년의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2022년 2월


서울 생활 21년 차.


삶이 그러한 것이지,

나의 성향 때문인지

2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서울과 대전 그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


머물러있으나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였고,

떠나 있어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기분으로.


고향에 가도

서둘러 돌아온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렇게 방황하고 있음을 아는 지금


다시 고향을 떠나 올 수 있을까.






#2025년 5월


고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때 그 사람이 아니었다.


정착이란 건

한 곳에 뿌리내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누구인지를 알고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오늘도 머물르며

조금은 정착해 본다.


나 자신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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