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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 Feb 22. 2018

연휴 일지

이번 연휴는 꽉 채웠다.

설 연휴는 스무 번도 넘게 보냈지만, 이제야 처음 꽉 채운 듯하다. 많은 것이 느슨해졌기에 그럴 수 있었다. 결혼한 형이 분가하고 엄마가 연휴에도 쉬지 않는 일을 해서다. 내가 운전을 할 수 있고 새로운 일을 구하시는 아빠의 차가 쓰임 없이 있어서다. 동네 친구들이 없는 곳으로 이사했고 심심하지만 나는 그게 좋아서다. 이것들 외에도 이유가 조금 더 있다.


첫날엔 일찍 합천을 갔다. 하천들이 만나서 합천인가 하니 합할 합이 아니라 좁을 합이다. 좁은 계곡과 천이 많아 합천이란다.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와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었던 테마파크를 갔다. 함께 간 고향 친구들은 합천을 가는 것보다 같이 있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난 아무래도 좋았지만, 합천이 더 궁금했다. 사진을 많이 찍었고, 8인 상을 가득 채운 한정식을 먹었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잘못 알려준 덕분에 노을 지는 합천댐도 보았다. 연휴 첫날인데도 차는 막히지 않았다. 7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형네가 집에 와 있었다. 형수는 엄마를 도와 두부 전을 굽고 있었다. 아빠와 형은 거실에서 TV를 틀어놓고 이야기를 했다. 방으로 피했다.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자버렸다.

 

형수가 있는 첫 명절이다 보니 몇 년 만에 부지런한 차례를 지냈다. 아빠와 형은 넥타이를 맸고, 내게도 다음부터는 정장을 입으라 했다. 성묘를 갔다 오니 오후 한 시. 평소라면 성묘를 출발하는 시간이었을 게다. 해가 질 때까지 종일 누워있다 친구와 영화를 보기로 해 집을 나섰다. 밤 열한 시가 되어서야 영화가 끝났다. 집에 가기 아쉬워 술을 마셨고, 그 자리에 7년 만에 보는 친구도 있었다.


고향으로 내려오는 연휴 중 하루는 꼭 가족과 보내려 한다. 리클라이너 소파가 있는 영화관에서 엄마와 영화를 보고, 집 앞 고깃집에서 다 같이 밥을 먹었다. 고깃집에서 나오니 해가 지고 있었다. 형의 신혼집으로 갔다. 회를 시켜놓고 올림픽을 봤다. 술을 마시다 형이 나보고 자기 아류라 했다. 맞는 말이다. 애인에게 형네 집에서 나눴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말하니 자기도 내 가족이 되고 싶다 했다. 나도 생각이 같다고 말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하루를 남기고 아빠 차를 끌고 봉하마을에 갔다. 연휴 전, 노무현의 다큐멘터리 영화 두 편을 보고 가기로 정했다. 김해는 집에서 멀지 않았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주차를 하고 생가부터 묘역, 부엉이바위가 있는 뒷산까지 돌아보기로 했다. 묘역에는 추모와 어울리는 음악이 나왔고, 너럭바위 옆에는 경찰 한 명이 옆에 서 있었다. 바닥의 돌에는 추모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추모하는 돌을 하나하나 읽으며 천천히 걸었다. 글씨가 많았고, 묘역을 나오니 제법 숨이 찼다. 날씨는 춥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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