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23
대전에 다녀왔다. 서너 달 전쯤 여행을 이야기했던 때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어서 설레기만 했던 것 같다. 대전은 하늘이 매끈해서 좋았고, 길이 조용해서 좋았다. 서울을 떠난다면 대전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그냥 했었는데 직접 살펴보니 정말 살아봄 직하다.
어제는 비가 왔다. 여행을 기다리면서는 대전에서 돌아와도 하루 더 쉴 수 있어 괜찮겠거니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다음 날에 내린 비는 여행과 현실을 구분 지어주었고, 그렇게 봄은 다 끝난 것만 같았다. 아껴야 할 돈과 시간이 바투 다가왔고, 새로 시작한 학원과 아르바이트 일과를 다시 익혀야 한다. 그리고 내일은 황사가 온다. 창문을 닫고 나가는 걸 잊지 말아야지.
일주일 전에는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오른쪽 날갯죽지와 골반을 다쳤다. 변기는 넘어지는 몸에 부딪혀 고정하는 바닥 쪽이 조금 금 갔다. 그 이후로 변기는 덜걱거리며, 물을 내릴 때 나는 소리가 금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 같다. 내가 시들해진 건 그때부터였을 게다. 여행 동안 잠시 멈췄다가 갔다 오니 재개되었다.
오늘은 모자를 빨아보려 했지만 하지 않았다. 대신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잤다. 운동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아직 힘이 안 난다. 여행에서 여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틀 넘게 집을 떠나면 생활이 망가지는 기분이다. 그렇게 여행은 허무하게 가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