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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면

고모부

191215

by onl

“우리가 친구들을 여의게 되었을 때, 그들이 한 말을 하나도 잊지 않게 하고 그들과 완전한 소통을 이루게 하는 것, 다시 말해서 경험적 앎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위로보다 더 감미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 몽테뉴


글감을 곧잘 떠올리면서도 늘 어려운 게 글로 옮기는 거다. 요즘 몸이 안 좋은 어머니가 걱정돼 했던 전화에선 고모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말이 왔다. 그 말에 마음이 내려앉거나 어떤 감정이 나를 휩싸지는 않았다. 고모부와의 특별한 교류가 있던 건 아니었으니. 그런데도 이 글을 쓰는 건, 언젠가 고모부와 있었던 이야기를 글로 쓰려했기 때문이다. 또 늦어버렸다.

고모부는 산악인이었다. 예사로운 산악인 말고 꽤 저명했던 거로 안다. 사촌 누나의 레고를 갖고 놀기 위해 가끔 고모부 집에 가면 <사람과 산> 잡지가 쌓여 있던 기억이 난다. 고모부 집은 항상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들 사이에서 늘 TV를 보고 계셨던 고모부는 말이 별로 없으셨고, 그런 고모부를 나는 무서워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던 고상돈 씨의 위인전을 읽는데 고모부의 이름이 책에 나왔다. 책 뒷부분의 에베레스트 등반대 단체 사진에도 고모부가 계셨다. 친구들한테 이분이 내 고모부라며 자랑했다. 안 믿는 애들과 그러려니 하는 애들로 나뉘었다. 그 주 주말엔 그 이야기를 고모와 사촌 누나에게 신이 난 채로 말했다.

며칠 뒤에 고모부가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심부름이겠거니 찾아가자 사진 한 장을 건네주셨다. 그 위인전 뒤에 있던 단체 사진이었다. 가서 친구들한테 보여주라고 말씀하시면서 웃으셨다. 그때부터 고모부가 무섭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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