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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 Jun 08. 2020

포천 1

200606

모처럼 혼자 보내는 휴일이라 포천에 갔다. 숙박비가 말이 안 되게 싼 오래된 한옥에서 하루 묵었다. 낮에는 산정호수에 가고, 밤에는 별이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이유를 말하자면 책을 읽고 싶어서였다. 집에서 책을 읽으려고 거실에 TV 대신 책장을 놓았는데, 역시 집은 TV를 보는 곳이더라. 책 읽는 시간 또한 어떠한 상황이 주어져야 생긴다는 것을 며칠 전에야 깨달았다. 읽고 싶은 마음만은 가득한 책 네 권을 들고 포천에 갔다.


짜임새 있게 준비하지 않아서인지 처음부터 무언가 꼬이긴 했다. 첫날 점심으로 정한 음식점은 아예 문을 닫았고, 별을 보기 위해 가려던 천문과학관은 도무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책이 없어 곧장 숙소로 갔다.

몇 안 되는 여행 경험에서 공통으로 느낀 점이 있다. 조금이라도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단 거다. 해지기 전의 숙소 말이다. 술과 함께하는 밤의 숙소는 좋지 않아도 좋아 보이니 다음에는 낮의 숙소를 기억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그럴 수 있게 되었다.

60년도 더 된 조부모님의 집을 숙소로 내놓은 호스트는 섬세했다. 정말 오래된 한옥이었지만 가능한 선(외관은 그대로 살리되 내부만 고친)에서는 깔끔하려 해서 좋았다. 상이 놓여있던 조용한 마루에 앉아 읽기 시작한 소설은 호수에서 마저 읽기로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호수에 안 갈 것 같다. 곳곳에 벤치가 있고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호수를 생각하고 책을 챙겼지만,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둘레길의 벤치에서 소설을 읽어내진 못할 것 같았다. 지난번에 간 삽교호도 그렇고, 산정호수 또한 완연한 관광지였다. 바이킹은 끝없이 넘실댔고 DJ DOC의 ‘나 이런 사람이야’ 같은 댄스곡이 호수 반대편까지 울러 퍼졌다.

우선 둘레길을 돌며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곳을 찾기로 했다. 마땅한 곳이 없으면 숙소로 돌아갈 작정으로 열심히 걸었다. 슬슬 땀이 나고 몸이 찐득해질 때쯤 갈림길이 나왔다. 샛길로 보이는 쪽으로 조금 걸으니 벤치 두 개가 놓인 조용한 길목이 나왔다. 송충이와 벌레들이 툭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책 읽을 장소로는 이곳밖에 없을 것 같단 불안감에 냉큼 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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