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
숙소로 돌아왔을 땐 다른 여행자들도 입실한 것 같았다. 내심 숙소에 나 혼자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 나머지 방에 묵는 듯했다. 인사하기 어색해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오래된 한옥에서 방음을 기대하기엔 무리였다. 엿들으려던 게 아닌데 딴에 조심하는 그들의 기척이 문 사이로 들어왔다. 그들은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려는 것 같았다. 나도 포장해온 갈비찜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포천에 왔으니 마셔야 할 것만 같은 포천막걸리도 사뒀다.
마당에서의 만찬은 나름 조용했지만, 그 고요는 오래 가지 않았다. 술이 점점 들어가 톤이 높아지는 그들의 대화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또 말하지만 내가 들은 게 아니고 말소리가 허락도 없이 들어와 내 방을 휘저었다. 중간중간에 아무노래 챌린지도 하고, 이상형 월드컵도 하던데 상당히 행복해 보였다.
다만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노래도 틀지 않은 조용한 공간이어야만 책을 읽는 난 비장하게 다 읽어치우겠다 다짐하며 챙겨 온 네 권의 책을 꺼내지도 않았다. 막걸리로 옅은 피로와 취기가 올라와 잠도 슬슬 오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시끄러워서 잘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쓴 게다. 이때만큼은 일필휘지였다.
‘내 사적인 이야기가 남이 무작정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가?’
‘나만 이렇게 곤두섰나?’
‘듣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를 억지로 들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싫다.’
세 시간 가까이 이런 생각을 하며 포천에서 겪은 일들을 써 내려갔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글이 술술 잘 써져서 ‘아무노래’ 후렴에 춤추는 그들의 옷자락 소리가 내 시간을 방해해도 조금은 신이 났다는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행했던 건 화장실과 욕실에 가려면 마당을 통해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을 열면 시끄러웠던 마당은 순간 정적이 될 거고, 나는 겸연쩍은 인사를 하면서 지나쳐야겠지. 예상대로였다. 취한 그들은 심지어 같이 맥주를 마시자 했고, 나는 “아뇨아뇨아뇨아뇨아뇨” 하며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날 밤엔 총 세 번 방 문을 열어야 했다. 화장실 한 번, 여자친구와 통화도 할 겸 하는 밤 산책에 두 번, 그리고 샤워까지 세 번.
통화를 위해 두 번째 문을 열었을 때는 이곳에 혼자 온 내가 신기했는지 질문 공세를 해댔다. 나이를 묻더니 이 숙소를 어떻게 찾았는지, 왜 혼자 왔는지 등 그들은 밤 열한 시의 시골에서는 지양해야 마땅한 목소리 톤으로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 저희는 언제쯤 들어가야 할까요?
내 대답
- 통화하고 오면 슬 정리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왔을 때 그들은 마당을 정리하고 있었다. 무리 중 한 명이 자기는 마당에서 계속 놀고 싶다고 투덜대는 듯했으나 끝내 숙소로 들어가 다음 술자리를 갖는 것으로 체념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씻기 위해 세 번째 방 문을 열었고, 고요하게 샤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 숙소 안에서 들리는 지치지 않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곧장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