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도, 어제와 같았던 하루는 없지만 일상이라는 것이 늘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날들의 반복이라지만 2020년은 유독 더 고되고 피곤하다. 2020년이 가지고 오고 있는 다양한 삶의 변화는 실로 낯설고 당황스러운 것들의 연속이라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이겨내고 버텨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상반기는 내내 코로나와의 싸움이었다. 마찬가지로 계획이라는 것이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큰 외부 작용으로 인해 계획이 완전히 엎어지는 일도 처음 겪는 것이라서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또 대안이라는 것이 있긴 한지 의문이었다. 세웠던 계획들이 모조리 엎어지고 완벽하게 새로운 것을 다시 구상할 수밖에 없었다. 4월이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가 한 여름까지 이어졌고 하반기에는 좀 더 다른 날이 올 것을 기대하고 있던 이 여름에 지긋지긋한 장마가 시작되었다.
퍼붓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비가 오지 않았던 날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최장기간 장마로 기록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매일 비가 왔다. 가벼운 샌들을 신고 출근하거나 우산을 들고 다니는 일이 일상으로 굳어졌을 만큼 비가 많이 왔다. 큰 피해도 함께 가지고 와서 연일 비로 인한 피해 소식이 티비를 타고 흘러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2020년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다른 특별한 외부 요인이 없이도 기운이 빠지는 코로나와 장마, 이 두 가지의 치명적인 사건이 의욕을 앗아가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가 날로 심해졌을 때에도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겼었다. 사람 간의 간격을 유지해야 하고, 어떤 작은 모임도 용인될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계속되자 사람들은 외로워하며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체감해서 배우게 될 정도였다. 그 분위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는 비로 실외도, 실내도 축축하다. 이 습한 기운이 나의 영혼까지 좀먹는 기분이다. 나의 삶 어딘가에 나도 모르는 곰팡이가 뭉게뭉게 퍼져나가는 것만 같다. 찝찝하고 불쾌하다. 힘이 없고 기운이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녹이는 것 같다.
나는 여름의 뜨거움과 에너지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바짝 말려버릴 것 같은 태양의 강렬함과 숨이 쉬어지지 않을 것처럼 치솟는 기온을 느낄 때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이 더위와 맞서 싸워내면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위를 이겨내며 해냈을 땐 더 큰 성취감이 찾아왔다. 집 앞에 우유를 사러 갈 때도, 이 더위를 헤치고 혹은 이겨내고 우유를 사 왔다는 표현을 꼭 덧붙이곤 했다. 그 강렬함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그랬던 나의 여름마저 사라졌다. 매미 소리가 맑게 들리던 뜨거운 여름이 그립다. 피부가 바짝 타버리는 것 같은 강렬한 햇볕이 그립다. 그 더위를 어떻게든 피하고자 그늘 밑에 들어가 바람을 기다리던 시간들이 그립다. 흐르는 땀을 쓱쓱 닦아내며 시원한 커피 한 입을 쭈욱 빨아 마시던 여유가 그립다. 여름의 생기와 에너지가 그립다.
2020년은 자꾸만 나를 축 쳐지게 만든다.
도대체 언제쯤 나는 일상을 되찾게 될까. 그 일상이라는 것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순 있는 것일까.
나는 일상을 완벽하게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