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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하라 Sep 11. 2020

네가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너 때문에 나를 바꾸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 

  

1. 그 사람은 우유를 싫어한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카페라떼'다. 함께 카페를 가면 나는 카페라떼를 시켰고 그는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다른 메뉴를 시켰다. 나는 그에게 왜 우유를 싫어하는지 묻거나 함께 우유를 먹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럴 마음도,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우유가 싫다고 했다. 함께 간 사람이 라떼를 시키면 우유 냄새가 나서 그마저도 싫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우유를 먹지 말라고 한 적이 없지만, 그는 내가 우유를 마실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 앞에서 우유를 선택하기 힘들어졌다. 나는 우유를 포기하고 그를 선택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목숨을 거는 절체절명의 사건도 아니었다. 그가 싫다고 하니까, 나는 그를 만날 때 자연스럽게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들을 골랐고 그와 함께 하지 않을 때는 꼭 우유를 선택했다. 


 어느 날인가 너무 우유가 먹고 싶었던 적이 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우유가 당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그를 위해 계속 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이 좋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는 것이 사랑일까. 그렇게 하는 나의 행동이 옳은 것이었을까. 그가 좋아하는 내 모습만 남으면 그게 나인 것일까. 나는 뭔가 해결되지 않는 문제 하나를 껴안은 느낌이었다. 뭔지 모를 답답함이 찾아왔지만 이내 잊고 살았다. 


2. 그 사람은 나에게 책을 읽지 말 것을 권했다. 
 그는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과 철학이 있는 사람이었다. 많은 것을 두루두루 알고 있고 어떤 일에 대한 자신의 소신이 뚜렷한 그가 좋았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아는 만물박사 같았고, 어떤 지점에서 어렵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명쾌한 답을 주는 부분이 좋았다. 처음에는 책을 읽는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그 책을 왜 읽는지, 책을 읽는 게 나에게 무슨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그도 한 때는 여러 가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책을 많이 읽었었다고 했다. 그러나 살면서 깨달은 중요한 것들은 책에 담겨있지 않다고 했다. 책이 아니라 직접 피부로 경험한 것들이 자신을 성장하게 하고 변하게 만들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모습도 좋았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자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 모습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것은 한낱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책을 읽을 시간에 밖으로 나가 직접 부딪치고 경험하는 것들이 진짜 삶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그 앞에서 책을 읽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만, 그는 책을 읽는 내 모습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 점점 책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우유가 생각났다. 그가 원하는 내가 되어 갈수록 내가 좋아하던 나는 사라지고 있었다. 


3. 나는 더 이상 타인에 의해 나를 바꿔가지 않겠다. 
 시간이 지나고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남이 되었다.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우유를 마시고,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으며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 그때는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내가 갖추어야 우리 관계가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정도 희생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어쩌면 사랑에는 서로를 위한 희생이 반드시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희생이 나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라면 조금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잡아야 할 관계는 없다. 나를 잃어가면서 붙잡아야 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있고, 그가 있는 것이다. 그를 위한 내가 되는 것은, 그가 사라졌을 때 허망함만 주었다. 그는 사라지더라도 나는 여전히 살아 숨 쉬며 나의 영혼을 돌봐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금 되찾고 회복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배웠다. 


 그가 소중하고, 내가 그를 아끼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나를 중요하게 여끼고 아껴야 한다. 그와 많은 대화와 조율을 통해서 나를 지키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나를 바꾸기만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누군가를 위한 존재가 되려고 하지 말자. 나는 나로서의 모습을 잘 간직했을 때 타인을 포용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또 사랑할 테고, 나에게 이런 것을 했으면 혹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많은 시선과 의견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를 바꿔가며 사랑하지 않겠다. 지금의 내 모습 이대로 직면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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