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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하라 Sep 02. 2020

만들어진 나의 삶을 발견했을 때

레볼루셔너리 로드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x 케이트 윈슬렛

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 2008


나는 영화를 보고 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막 글을 쓰고 싶어 지는데, 이렇게 말문이 막히는 영화는 또 처음이었다. 영화가 내 허를 찌른 것 같아서 숨이 턱 멎는 것 같았고 그 이후로도 계속 시원하게 숨을 내쉬기 힘든 기분이었다. 첫눈에 서로에게 반해 사랑에 빠지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에이프릴과 프랭크. 매일 똑같은 회사로 출근해서 의욕도 없는 일을 반복하며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프랭크. 연극배우였던 자신의 꿈을 내려놓고 평범한 주부가 되어 두 아이를 키우는 에이프릴. 남들이 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화목한 가정이지만 둘은 권태로운 일상에 지쳐있다. 에이프릴은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파리로의 이민을 제안하고 둘은 훌쩍, 일상의 모든 것을 접고 떠나기로 한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닥친 새로운 환경은 서로를 흔들리게 하고 현실과 이상의 벽 앞에서 둘은 갈등은 깊어진다.




타이타닉 이후 다시 만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은, 비극적인 운명으로 헤어졌던 잭과 로즈가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두 사람을 한 영화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 자체가 타이타닉 팬들에게도 얼마나 떨리고 설레는 일이었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감독도 타이타닉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접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도 부담이 있고, 그 스토리를 이어가는 것도 영화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전체적인 이야기와 캐릭터는 타이타닉과 전혀 다르지만 기대하는 팬들을 위해서일까 초반에는 서로가 반해서 춤을 추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는데 그 장면이 타이타닉에서의 파티를 떠올리게 한다. 자연스럽게 그때의 잭과 로즈에서, 지금의 프랭크와 에이프릴로 연결되게 만들어준다.


사실 이 영화의 감독은 여주인공인 케이트 윈슬렛의 남편이다. 그녀는 먼저 이 각본을 소설로 접하고 남편에게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상대 배우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추천한다. 그녀에게도 대담한 도전이었겠지만 그녀는 결단력과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두 배우가 함께 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엄청나게 큰 이슈였고 그녀는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많은 관람객들이 이 영화를 현실과 이상 사이의 벽으로 평가한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과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이상이 부딪치게 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가에 대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둘에게는 현실을 버리고 떠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들이 갑자기 쏟아진다. 그들이 이상을 더 원하는 사람들이었다면 현실의 문제를 뛰어넘어서 이상을 선택하게 됐을까? 그들이 원했던 것이 현실이 아니라 이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원하던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일까?


나는 이 영화를 '현실과 이상'으로 보고 싶지 않다. 나에게 이 영화는 '만들어진 나'와 '만들어가고 싶은 진짜 나'에 대한 갈등으로 보였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누가 봐도 부족함이 전혀 없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지만 그들은 그 삶에서 끊임없이 권태로움을 느낀다. 그들은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배우자, 사랑스러운 자녀, 예쁘고 좋은 집과 안정적인 직장. 지금 시대에서도 누구나 꿈꾸는 일상적인 욕심 리스트겠지만 그게 있다면 정말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불현듯 떠올랐다. 대체 그게 필요하다는 것을 누가 나에게 알려줬을까. 때가 됐으니 졸업을 해야 하고, 대학에 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직장에 취업해야 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으니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한 이후에는 자녀를 낳아야 하는 이 과정이 정말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가야 하는 삶의 순서일까?


그래서인지 이 순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질문의, 호기심과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된다. 대학에 안 간 사람,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먼저 낳은 사람, 취업을 하지 않고 여행을 떠난 사람 등등. 사람들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순서에 맞춰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그것과 다른 순서를 택한 사람들에 대한 질투와 불안한 마음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너는 어떻게 다른 삶을 택할 수 있어? 너는 왜 이 순서대로 가지 않아?라는 불안함. 영화 속에서도 잭과 에이프릴이 모든 것을 두고 파리로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인물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떠난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나의 삶을 마주하게 되는 공포다. 순서에 맞춰서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던 나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주변 이웃들은 무너지고, 비아냥거리고, 반대한다. 그건 너무 무모하지 않냐고. 여기서도 희망이 있고. 원하던 것을 채울 수 있다고.



그래서 나도 영화를 보고 숨이 막혔다.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이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인가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정말 내가 원해서 나는 그걸 얻고자 하는지에 대해 고민도 하지 않은 채 달려들었다. 어느 순간 마주한 내가 '정말 그걸 원해?'라고 물었을 때, 나는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응. 내가 정말 바라던 것이야.'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에 걸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것을 얻은 후에도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구나. 나도 내가 원하던 나의 모습이 아니라 만들어진 나를 열심히 채워가다가 진실을 마주했을 때 당황하는 나약한 존재였구나 라는 것을 알고 나니 눈물이 펑펑 날 것만 같았다. 무서웠다. 내가 가야 한다고 믿었던 삶의 순서가 한순간에 타버리고 사라진 느낌이었다. 이제 나는 원하는 순서를 찾아가면 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아 겁에 질린 상태였다.


다른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부러움,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현실'을 떠나 '이상'을 찾아간다고 비난했던 부끄러운 나의 열등감. 내 삶이 내가 원하던 삶이었는가에 대한 확신을 잃은 '불안함'과 '두려움' 그것을 마주하게 했던 영화가 레볼루셔너리 로드였다.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온 길이 원하던 곳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시 방향을 틀 용기. 주어진 순서에 맞춰서 가지 않더라도 불안해하지 않을 내면의 힘. 누가 나의 길을 비아냥거리며 정신 차리라고 하더라도 덤덤하게 나의 길을 걸어갈 담대함. 무서워하지 않고 그저 내가 원하던 나의 모습대로 하루를 살아갈 그 작은 용기 하나가 내 삶에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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