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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하라 Jul 17. 2020

요즘 유행하는 것들에 관하여

유행은 전염이에요? 곱창과 집게핀이요?

“저기 바봐, 요즘 여자들이 제일 많이 하는 머리 스타일 같아. 얇은 곱창 끈으로 똥머리 해서 올리는 거”


“그래? 요즘 저 머리를 많이 하나?”


“그럼. 저 머리 아니면 곱창 머리끈으로 반 묶음 해서 위로 높게 올리는 머리. 주로 머리 긴 여자들이 많이 하지.”


“어, 그거 내가 요즘 매일 하는 건데.”


“요즘 머리 스타일은 거의 다 저거 같아. 곱창으로 묶거나, 집게 핀으로 올려서 집는 머리.”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매장 안에 있는 여자들의 머리를 쭉 둘러보았다. 아주 묘하게도, 그리고 놀랍게도 그곳에 있는 모든 여자들의 머리가 세 가지 스타일로 나뉘었다. 요즘 다시 유행하고 있는 곱창 끈을 통해 머리를 묶은 사람, 마찬가지로 역주행의 주역이 된 집게 핀으로 머리를 묶은 사람, 그리고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있는 사람. 괜히 신기하단 생각이 들어서 창문 밖에 지나가는 사람을 보니 정말 곱창과 집게 핀이 많이 보였다. 하고 있는 사람도 많고, 팔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문득 이게 너무 희한하게 느껴졌다. 유행이 대체 뭘까? 특히 새로 나온 콘텐츠에 관한 열렬한 지지와 관심 말고, 기존에 있던 것들에 대해 다시 뜨거워지는 계기가 뭘까? 원래 존재하던 것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 어떻게 바뀌게 되는 걸까?


곱창과 집게 핀은 내가 초등학생일 때 한창 유행하던 물건들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시는 아빠에게 “아빠 올 때 곱창 사와!”라고 했더니, 정말 소곱창을 사 와서 아이가 울었다는 이야기는 초등학교 전래동화처럼 입에서 입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이야기였다. 내가 초등학생 때 곱창 머리 끈이 정말 유행이었고, 우리 집에도 다양한 색상의 곱창 끈이 많았다. 머리끈 정리하라는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지면, 작게는 휴지심에 길게는 프링글스 통 같은 곳에 곱창 머리끈을 일렬로 끼워서 정리하곤 했다. 그 추억 속 물건을 2020년도에 다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이건 반가움을 넘어선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유독 이 유행의 흐름을 목격하면서도, 따라가고 싶단 마음이 들지 않는 나에게 역주행하는 문화는 심히 낯설고 어색한 일이었다. 나도 그 유행에 편승해서 이거 요즘 예쁘니까 해야지! 했더라면 생각해보지 않았을 일을, 돌연 한 발 떨어져서 목격하게 됐다. 이상해!!!! 어떻게 곱창이 다시 유행할 수 있냐고! 어떻게 저 집게 핀을 다시 쓸 수 있지!


유행 (流行)
1. 전염병이 널리 퍼져 돌아다님.
2. 특정한 행동 양식이나 사상 따위가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추종을 받아서 널리 퍼짐. 또는 그런 사회적 동조 현상이나 경향.


궁금한 것은 그 뜻을 풀이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유행을 검색해보니 그 뜻이 너무나 확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흐를 유, 다닐 행. 내가 오늘 목격한 일들을 한자로 적으면 바로 ‘유행’ 그 자체가 된다. 사람들이 하고 다니는 흐름. 그것이 바로 유행인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나는 확진자가 늘어나는 코로나도 유행, 머리 긴 여자가 사용하는 곱창도 유행, 머리 짧은 여자가 위로 틀어 올린 집게 핀도 유행.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으니 그게 내 눈에도 자연스러워 보이고, 그래서 그게 예뻐 보이는 것. 유별나거나 특이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는 흐름. 그래서 나도 그 안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것. 그게 바로 유행 아닐까. 남들과 다르게 튀고 싶은 사람은 유행을 따르지 않는 법이니까.


나는 이 유행을 누가 만드는 걸까 생각해봤다. 유행을 한 명이 주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미 생겨난 흐름의 물줄기는 어느순간 깊고 넓어져 바다로 이어지게 된다. 유행이 물줄기라면, 모여든 바다는 문화 아닐까. 그렇다면 반대로 유행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할까?  모두가 다 하고 다니는 무언가, 그 어떤 흐름이 만들어지면 그게 하나의 줄기가 되고 바다가 되지 않을까? 실험해보고 싶지만, 어느 수준의 스케일이어야 가능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으니 그냥 곰곰이 생각만 해보고 말았다.


나는 새로운 유행이 나오는 것을 반기며 기대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유행이 돌고 돈다는 사실은 나를 멈칫하게 만든다. 세일러문 만화의 의상이, 돌고 돌아 지금 유행이라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인 줄만 알았는데 곱창과 집게핀을 보고 있자니 조용히 납득하게 된다. 어디선가 태어난 유행은 조용히 흘러서 일상에 도착하고, 그 일상은 유행이란 이름으로 옷을 갈아 입고 더 힘차게 흘러가 커다란 하나의 문화가 되는 것 같다. 유행은 눈에 보이지만,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완벽한 일상이 되어가는 과정. 곱창과 집게 핀은, 유행이 될까. 문화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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