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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Feb 02. 2018

영화 리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감히 누가 이들이 사랑이 아니었다 말할 수 있을까.





 
 한 남매가 변호사로부터 그녀의 어머니의 유품을 받아 정리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허나 남매가 하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를 화장해서 매디슨 카운티 다리에 뿌려달라”는 어머니의 유언. 뜬금없는 장소에 그녀의 유해를 뿌려달라는 어머니의 유언에 남매는 어이를 상실하지만, 유품 가운데에서 발견된 어머니의 지를 통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그녀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그들은 어머니의 유언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차츰 이해하기 시작한다.





※강력 스포일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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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카운티 다리'를 찾아 온 떠돌이 사진작가,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평범한 주부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

미국의 조용한 시골마을 아이오와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주부, 프란체스카 존슨(메릴 스트립). 


4일 간 가족이 여행을 떠나고 혼자 집에 남아있던 그녀는, 그녀의 집 근처였던 메디슨 카운티 다리를 찾으러 들른 사진작가인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만나게 된다. 우연한 기회로 친해진 그들. 결국, 그들은 넘어서는 안 될 금단의 선까지 넘을 정도로 깊은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고 만다. 꿈 같았던 4일이 어느 새  지나고, 떠나야 하는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한다. 스스로가 가정이, 그리고 아이들이 있기에 당연히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계속되고 있었던 남편과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힘들어하던 그녀였기에 그녀는 혼란에 빠지고, 로버트는 그런 그녀에게 그들의 만남이 결코 환상 같은 것이 아니며 “일생에 단 한 번 느끼는 어떤 것”이라며 그녀를 설득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로서의, 아내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로버트는 홀로 아이오와를 떠나게 된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홀로 노년의 시기를 보내던 프란체스카 앞으로 소포가 하나 도착한다.


로버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녀의 앞으로 작성한 편지, 그리고 그녀와의 사랑을 죽기 직전까지 간직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아이오와에서의 찬란하고 소중했던 4일 간의 추억이 담긴 사진집과 함께.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원작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스크린으로 옮긴 이 작품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우연히 집에 들른 사진작가와 만나며 벌어지는, 지금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다뤄지는 주제 중 하나인 '불륜'에 대해 이야기한다.


녹아내릴 듯 달콤한 재즈의 떨림, 그 속에서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않는 애타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나는 어쩐지 섬세하면서도 격정적인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할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든 이것이 있어서는 안 될 사랑, 그러니까 '사랑'이라 표현되기에도 민망한 그런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불편했으니까.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시대가 낳은 두 명배우인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 그리고 감미로운 음악이 어우러지는 그 사치스러운 감상에 빠져들다가도 문득문득 느끼는 불편한 감정으로 인해 현실로 돌아오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반복되었고, 그것이 아마 내가 유일하게 느낀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단점을 굳이 들추자면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 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들이 그럴 것을 예측이라도 한 듯, 두 가지 장치를 통해 그 불편함이라는 것에 대해 상당히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영리한 선택을 한다.




첫째,


  고민하고, 또 괴로워하면서도 가족의 곁에 남기를 선택하는 프란체스카, 그리고 그녀의 그런 선택을 이해하고 그녀를 떠나가는 로버트의 모습을 통해 ‘성숙한 사랑’를 선택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는 그동안 관객들이 느꼈을 불편함을 해소하고 어떤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선사한다. 불안불안했던 그들의 관계가 결국은 서로의 '현실적인' 행복에의 선택으로 이어지면서 관객에게 '그럼 그렇지! 이런 사랑은 이어질 수는 없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듦과 동시에 안도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이 그들이 헤어지는 장면을 끝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것은 절대 아니었다는 사실은 아마 관객 모두가 공감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가족, 책임, 관계 등 그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로버트를 사랑하기보다는, 그 짧은 4일 간의 기억을 평생 가슴 속에 간직하며 더 이상 그 빛이 바래지 않게, 일그러지지 않고 아름답게 남기기를 선택함으로써 오히려 더 오래도록 서로를 사랑하고, 추억하는 쪽을 택한 프란체스카의 눈물의 결단이 관객들에게 더더욱 멋지고, 또 존경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만약,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이성보다 감정에 치우쳐버린 선택을 하는 쪽으로 결말이 났더라면, 이 영화가 이렇게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명작이 되어,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이후 바다 건너 한국에서 재개봉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단언할 수 있다.





 
둘째,


 영화는 중간중간 남매가 어머니가 남겨놓은 로버트에 대한 추억이 담긴 다이어리를 함께 읽어나가며 과거 어머니의 행동에 대해,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가족들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이해하고 또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점에서, 남매가 편지를 발견하고 어머니의 '불륜'에 대해 알았을 때 관객들이 느낀 감정은 남매가 느낀 것과 똑같았을 것이다. ‘당혹감', 그리고 ‘배신감’.


 하지만 다이어리를 계속 읽어나가며 남매는 과거의 두 사람이 특정한 목적 없이, 서로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쳤을 뿐이며, 그 과정 가운데 인생 가운데 쉽사리 느낄 수 없는, 그 어떤 운명적인 끌림 같은 것을 우연찮게 느끼게 되었음과, 그들의 감정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것임을 충분히 인지했음을, 그리고 그 것을 알면서도 서로의 감정을 이길 수 없는 자신들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고, 또 괴로워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들이 서로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선택을 했다는 사실도


이를 통해 남매는 결국 그들의 어머니 또한 그들이 생각했던 것 처럼 ‘완전무결한 어떤 존재’가 아닌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의 여성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고, 이를 통해 '사람과의 관계'라는, 결코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 모습을 보여주고 마찬가지로 관객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그리고 이 두 남매 역시 자신들을 고민하고 괴롭게 만들고 있던 관계에 대해서 각자의 선택을 내리게 된다).


영화의 말미, 두 남매가 화장한 프란체스카의 유골을 그녀와 로버트의 숨겨진 추억이 담겨있는 메디슨 카운티 다리 위에서 뿌릴 수 있었던 것 어디까지나 그들이 프란체스카를 어머니로서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주연이었던 두 사람,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 이 영화가 명작으로 기억되는 데에는 이 두 명배우들의 공이 상당히 컸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런 불륜막장영화가 명작일 수가 있어!"라는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나는 언제까지나 이 영화를 명작이라 주장하기에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단순히 자극적으로 버무려진 불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맺는 ‘관계’, 그리고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영화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라는 말이 있다지만, 과연 어느 누가 이들의 만남을 사랑이 아니었다 할 수 있을까(그렇다고 불륜에 대해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그 누가 눈 앞에 찾아온 '일생의 사랑'을 떠나보내며 그저 ‘인생의 빛나는 한 페이지’ 정도로 마음 한 켠에 고이 접어 간직하고 살아간다고 하는, 성숙하디 성숙한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재개봉한 지금 이 시점에서 뿐 아니라 더 먼 미래에까지, 이 영화가 단순히 불륜을 미화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인간의 불완전함과 유한함을 드러내는 작품으로써, 또 성숙한 사랑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아름답게 삶을 살아낼 수 있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그런 작품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았으면 한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간직한 추억처럼, 가능한 한 '아름답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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