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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Feb 12. 2018

영화 리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

억압, 그 속에서 피어난 예술이라는 이름의 사랑

※강력 스포일러 다량 함유!

원치 않으실 경우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길...










2018년 재개봉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 무비>





영화에 대한 나름의 소개:


이 영화는 네덜란드의 화가인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그린 세계적인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1666)>를 모티브로 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갑자기 하녀가 된 소녀이자 이 영화의 주인공, 그리트(스칼렛 요한슨) <사진 출처: 다음 무비>

17세기 네덜란드, 그리트(스칼렛 요한슨)라는 소녀가 갑작스레 시력을 상실한 자신의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되며 우연히 천재화가인 요하네스 베르메르(콜린 퍼스)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천재 화가이지만 데릴사위로 세 들어 살고 있는, 요하네스 베르베르(콜린 퍼스) <사진 출처: 다음 무비>

어느 날 화실을 청소하던 그리트에게서 베르메르는 우연히 예술가로서 그녀가 가진 '본능적인 영감'과 '예술적 재능'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고, 이를 계기로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아내인 카타리나를 포함한 주변인들 모르게 그의 그림 그리는 작업을 돕게 되며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된다. 종종 애틋한 기류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동료'로서 서로를 인식하고 예술을 위해 노력했던 그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그림 작업은 카타리나에게 의심과 질투를 불러일으키고, 그리트를 모델로 한 그림인 세기의 명작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완성되지만 그리트의 존재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던 카타리나의 분노가 폭발하며 그리트는 쫓겨나고, 결국 베르메르와 그리트 두 사람은 이별하게 된다.






이 영화, 좋은 점과 아쉬운 점:



<사진 출처: 다음 무비>

이 영화가 지닌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17세기 유럽의 시대상을 '숨 막히게' 잘 그려내었다는 것일 터. 주로 베르메르의 집이라고 하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어리고 순수한 하녀인 그리트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심, 그리고 질투를 불러일으키며 점점 긴장감을 자아내기 시작하고, 특히 영화 중반이 넘어가면서 관객들은 마치 당시 여성들의 허리를 졸라매던 억센 코르셋을 직접 하고 있는 것처럼 절로 숨이 턱턱 막히는 최고의 경험(?)을 하게 된다(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며 그런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멋진 경험이라 생각한다).


또한 영화의 막바지 부분을 제외하고 상당히 격화될 수 있었던 베르메르와 그리트 양자 간의 감정들을 최대한 억누르고, 어디까지나 동료로서 존재하게 함으로써 명화 그 자체에 누가 될 수 있는 여지는 남기지 않았다는 점 또한 높게 평가받을만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사실과 다르게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모티브가 된 명화 그 자체에 대한 오해가 생겨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물론 이 부분은 영화 그 자체의 힘이라기보다는 원작 소설이 그렇게 쓰인 덕일 수도 있겠으나, 그를 다시 스크린에 훌륭하게 옮긴 감독과 배우, 그리고 제작진의 역량 또한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한 가지, 마무리 부분에서 폭발해야 했을 감정이 전혀 폭발하지 못했다는 것. 마지막 부분에서 카타리나에게 해고 통지를 들은 그리트가 베르메르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러 와서 그의 방문을 어루만지며, 방문 건너편에 있을 그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흐느끼는 애절한 장면이 나온다(베르메르도 그 문을 사이에 두고 그리트가 그렇게 흐느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상황). 그리트가 베르메르를 대하는 감정선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느껴지지만, 그리트를 대하던 베르메르의 모습은 그가 그 상황에서 느껴야 할 감정을 충분하게 담아내는 데에는 실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그가 그리트와 작업을 진행하는 도중 종종 두 사람의 미묘한 설렘이 생기는, 흔히 말해 남녀 간에서 느낄 수 있는 '스파크가 튀는' 장면이 적어도 두 번 정도는 분명히 나왔고(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베르메르 본인도 분명히 그 감정을 감지하고 또 점점 그를 통해 그리트에 대한 마음을 키워나가는 장면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떠나는 그리트에게 마치 그동안 느꼈던 감정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은 채 그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역시 좀 아쉽다. 설령 베르메르가 그리트에게 가졌던 감정이 '사랑'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는 관객들에게 자신이 그간 그와 함께 숱한 작업을 함께 했던 훌륭한 '동료'에게 그가 느꼈던 고마움, 애틋함 등의 감정을 충분히 보여줬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별 당시에는 거진 생략되다시피 했던 베르메르의 그 모든 감정이, 마지막에 그가 그리트에게 보낸 진주 귀걸이 한 쌍만으로 대변되기는 조금 부족하다 생각한다(아니면 베르메르 자신이 그녀를 하녀 이상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고, 그 스스로가 부자 귀부인의 남편으로 얹혀사는 존재에 불과했기에 거기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소극적인 성격을 연기에 반영했던 것일까? 하지만 의도된 연출이었다 해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섬세함이 부족했다는 필자의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배우들은 어땠나:



그림의 구도를 재보는 그리트의 모습을 비롯해 이 영화는 그녀가 예술적 재능이 있음을 영화의 중간중간 보여준다. <사진 출처: 다음 무비>

'스칼렛 요한슨이 다 한 영화'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이 영화는 그녀의 분량이 많고 또 그녀에게 많은 부분에서 빚을 지고 있다. 그녀는 분명하게 이 영화의 '유일한 주인공'이다. 어리고 순수한 소녀이자 당대 사회적으로 힘없는 하녀에 불과하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강한 성격을 가진 여성의 모습을 잘 표현해낸 스칼렛 요한슨은 당시 스무 살이 채 못됐던, 그녀의 앳되고 순수했던 모습을 무기로 아주 잘 활용하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 매우 능수능란한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그런 그녀의 모습으로 인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 그리고 메시지가 한층 더 잘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전 세계적 히트로 인해 블랙 위도우의 이미지가 강해지기는 했지만, 그녀가 어릴 때부터 '될성 부른 떡잎'이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사진 출처: 다음 무비>

스칼렛 요한슨과 함께 또 다른 주인공이었던 콜린 퍼스. 그에 대한 언급 또한 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는 스칼렛 요한슨의 거대한 존재감 때문인지, 시나리오상 그렇게 된 것인지, 혹은 촬영 분량이 삭제된 것인지 주인공이라 이야기하기에는 존재감이 비교적 약하고 옅다. 그의 부인과 주인마님으로 비롯되는 '주변 인물'들과 거의 비슷한 존재감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는 점은 상당히 아쉬운 포인트. 심지어 중반에 그리트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조금씩 쌓여가던 그의 존재감은 영화의 결말부에 언제 그랬냐는 듯 흩어지듯 사라진다.


(이 것 또한 콜린 퍼스 자신이 의도한 것인지, 그저 영화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만, 만약 그가 17세기 당시의 상류사회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예측되는 성격적인 부분과, 카타리나의 집에서 데릴사위로 살고 있던 베르메르의 처지로 인해 그가 아끼는 동료이자 연정을 품고 있던 상대였던 그리트가 떠나는 것을 만류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 어떤 내색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 자체를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연기를 보여준 것이라면, 콜린 퍼스 또한 섬세한 연기로 이 영화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숨은 공로자'로서 다시금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마무리 지으며:



과연, 베르메르와 이름 모를 소녀의 관계는 이토록 애틋한 것이었을까. <사진 출처: 다음 무비>

한 폭의 명화를 통해 시작되었을 작은 상상은 소설로, 그리고 스크린으로 한 차례 다시 옮겨지며 대중들에게 한 층 더 이 그림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물론 사실과는 다소의 거리가 존재하겠지만, 이 영화의 모티브인 명화, <진주 귀걸이를 건 소녀>가 예술과 외설이 거의 동일선 상에 놓여있던 중세 유럽에서 피어난, 몇 안 되는 '진정한 예술'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기에, 이 영화는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와는 전혀 관계없이 관객들 사이에서 세기의 명화에 대해 상기시키고, 그에 대한 경외감을 심어주는 역할을 계속 수행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 그림을 만들었던 것은 그들이 이루지 못한 미완의, '사랑'이라고 일컬어질 법한 그 어떤 감정이었을까.






그 해답을 알고 있을 유일한 목격자인 '소녀'는 그저 조용하게, 네덜란드의 마우리츠하이스 왕립 미술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누가 알겠는가? 오늘도 해답을 찾아 그녀를 찾아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작은 목소리로 그녀가 말을 건네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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