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렇게 쉬고 있습니다. 놀고 있다고 하시면... 섭합니다.
아직 우리 편의점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설명이 더 필요한 시점이지만, 이 번에는 나의 '쉬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보려 한다(물론 이 곳에서 쉰다는 의미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은 손님 응대를 하는 중간중간 이루어지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쉬는 시간 또한 나의 업무의 일부 아니겠는가.
6시가 조금 못 되어 출근.
시재와 물건 채우기 등의 일을 하며 나름의 오픈 준비를 끝내 놓고 정리를 마치면 대략 6시 반에서 7시 사이.
7시 30분에 빵과 샌드위치 등의 유통기한 경과가 임박한 상품들을 매대에서 빼는, '폐기정리'시간 이 전까지는 주로 핸드폰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나저나, 이 부분에서 나는 아주 불만이 많다.
카카오톡에 있는 카카오페이지, 왜 이렇게 재미있는 글이 많은 것인가. 이 것은 아마 나의 황금 같은 시간을 죽이려고 작정을 하고 재미있는 글만 찾아 올리는, 사악하기 그지없는 담당자들 때문이리라. 만약 담당자들이 재미있는 글이 아닌, '특출 나게 재미없는 글'만 골라 올리면 내가 그런 글들을 보다가 질려서라도 다른 건설적인 활동들로 나의 편의점에서의 남는 시간들을 채울 수 있지 않겠는가? 때문에 이 자리를 빌려 카카오페이지 담당자에게 말하고 싶다. 좀 더 재미없는 글로 페이지를 채워달라. 남는 시간에 독서하게. 나 진지하다 지금.
.....
폐기를 빼고 나서는 주류 코너의 빈칸을 꽉 채우고, 정리를 한 차례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핸드폰을 조금 더 하거나, 독서를 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글도 조금씩 쓰는 중이다. 대부분 '편의점 1년 차 김 씨 이야기'를 쓰는데, 주로 출근 이전에 작성해 올리는 편이지만, 근무 와중에 빠르게 후다닥 작성할 수 있을 정도의 짧은 주제로 글을 쓰려 노력하는 편. 혹은 글이 길어질 경우 퇴근 후 집에 가서 작성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다 보면 밖에서 물류기사님의 트럭이 도착하고, 기사님께서 냉장식품과 유제품을 담은 우유 박스들과 아이스크림을 포함함 냉동식품을 담은 종이박스를 여러 개 내려주시면 그것들을 냉장고에 채우고 개수를 검사하는 등의 작업을 30분에서 1시간 정도 진행. 그러고 나면 빠르면 9시, 혹은 10시가 넘어가고 늦으면 11시.
응...?
아니 뭘... 했다고 시간이 이렇게...
시간이 참으로 빠르고 덧없다며 짧은 푸념을 한 후 대충 11시가 되기 전에는 밥을 먹는다. 식사는 주로 폐기로 나온 도시락이나 햄버거 등의 식사대용품으로 하는데, 없을 경우 라면이나 컵밥을 주로 먹는다. 폐기와 사 먹는 경우는 둘 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데,
1) 폐기로 나온 상품은 공짜로 먹을 수 있지만, 오래 먹으면 쉽게 물린다(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2) 사 먹을 경우 돈은 들지만, 내가 원하는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감이 크다.
그래서 간혹 폐기가 나와있더라도 너무 먹기 싫은, 아주 사치스러운 기분이 들 경우 예외적으로 사 먹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편의점 알바 김씨와 '폐기상품'(?)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폐기에 관해서도 또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제가.)
11시 반이 좀 못되어 점장님이 오시면 자신이 오늘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일한 알바라는 듯한 표정으로 점장님께 인사를 꾸벅.
(농담입니다 여러분. 필자는 진짜로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애초에 힘든 표정을 지으려 애를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아 뭐.... 제가 오늘 이렇게 열심히 했다구요 점장님.
요호호홋...!
.....
아무튼 점장님이 도착하시고 난 후 11시 30분에 다시 2차로 폐기를 빼고, 빈 주류 칸이나 온장고를 채우고, 금고 입금과 시제를 하고 테이블과 쓰레기통을 정리하고 나면 12시. 퇴근할 시간.
옷을 걸치고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틀면, 집까지 가는 3~40분 동안 아주 즐겁게 퇴근을 할 수 있다. 이 것도 휴식이라면 휴식일 수 있겠구나.
집에 도착해서 외투만 벗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며 다시 하루가 끝났음을 실감한다.
잠시 쉬는 척을 하다가 '읏차'하며 추임새를 넣으며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잠옷으로 갈아입고, 씻고 나와 다이어리에 내일의 스케줄을 적으며 오늘 어떻게 쉬었는지, 내일은 또 어떻게 보낼지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문득,
아. 나 휴학생이지.
생각해보니 현재 나의 매일이 앞으로 나의 본격적인 삶을 앞둔 '쉬는 시간'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초조해진다. 그래서 나는 매일 초조해진다. 쉬는 것이 쉬는 것이 아니어야 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가운데에서 매일을 줄타기하듯, 그렇게 살아내야 하는 '경계에 놓인 자'로서의 의무감, 혹은 부담감이 다시금 나를 지그시 누르기 시작한다.
'쉬는 시간'
지금의 나에겐 '편안한 가시방석'과 같은, 그 어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