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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Feb 23. 2018

10. 눈 나리는 귀갓길

서울에 폭설주의보입니다. 아마도요.

퇴근이 가까워진 시각, 단골손님이 머리에 갑자기 눈을 가득 묻히고 들어오셨다.


'어...?! 갑자기 눈이...?'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눈이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 참 희한한 일이로세. 번개가 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아 보인다.







일을 마치고 점장님께 우산을 빌려 밖에 나와보니 아니나 다를까. 우산을 쓰고 올려다보니 자줏빛으로 변한 하늘에서 굵은 눈발이 미친 듯이 내린다. '안에서 볼 때보다 더 많이 오는구만 이거' 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내일, 아니 자정이 지났으니 몇 시간 후면 제일 친한 친구 한 녀석이 졸업이란 것을 한단다. 어릴 적부터 벌써 20여 년을 친구로 지내온 이 녀석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내일이 자기 졸업식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이 녀석도 참... 아무튼 내일 아무런 일이 없는 내 입장에서는 친구로서 졸업하는 것 정도는 축하해줄 수 있을 시간이 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친구 녀석들은 저마다 일이 바빠 오기 어려울 참에 나라도 가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


같은 동네에서 나서 같이 자라고, 같이 놀고, 같이 배우고, 내게 평생 취미가 될 기타(Guitar)를 배울 계기도 만들어주고, 심지어 둘이 같이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서기도 한 녀석. 녀석이 먼저 취업전선에 뛰어들면서 이제는 보기가 예전처럼 쉽지는 않아졌지만, 앞으로도 별일이 없는 한 죽기 직전까지는 친구로 지내게 될, 그런 녀석들 중에 하나인 녀석. 도 드디어 대학생 딱지를 떼고 진짜로 사회인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한다. 이제 몇 시간 뒤면, 우리가 예전 같을 수 없을지도 모르게 되어버리는, 돌아올 수 없는 또 하나의 통과점을 지나게 될 예정인 것이다.


그런데 참 눈이....







내가 느끼기엔 이번 겨울 최고로 많이 오는 것 같다.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되어버린 세찬 눈은 어느새 길바닥을 새하얗게 물들여 버렸다. 번개가 또 친다. 하필 졸업식 전야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나리 다니. 번개도 치고. 난 징크스를 믿는 편은 아니지만 괜한 생각이 스쳐 애써 무시하려 노력한다. '뭐 비가 오는 것보다는 이쁘고 좋지 뭐' 하며.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언젠가는 생기기 마련이지만, 과연 이 녀석의, 그리고 우리들의 앞에는 어떤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렇게 미친 듯이 나리는 눈발 속이라 그런지, 참으로 그 대답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마는 것이다.


눈의 무게 때문인지 어느새 무거워진 우산을 툭, 어깨에 얹어놓고 발걸음을 뗀다.






아직 아무도 걷지 않아 발자국 하나 없는 새하얀 길. 그 길에서 한 편으로는 친구놈의 앞날을 축복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내 친구놈처럼 1년 뒤에 학사모를 머리에 얹게 될 나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과연 나는 1년 뒤에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아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금 내가 걷는 이 귀갓길을 똑같이 걷고 있을까, 잿빛으로 질척해진 진창길을 걷고 있을까. 아니면, 아무도 걷지 않은 눈밭을 나 홀로 조용히 걷고 있을까. 그리고 모 노래 가사에서처럼, 그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그 꿈을 이루면 과연, 난 웃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꿈을 이룬다는 것 만으로 나는, 웃을 수 있을까.


그려보려 애써보지만 나의 별 볼 일 없는 그림실력 탓인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이래 봬도 초등학생 때는 나름 상도 받고 했는데 말이다). '정말이지 미래는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로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오랜만에 집에서 혼자 맥주를 홀짝거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맥주나 한 잔 하고 자자.









 집으로 들어와 보니 어? 맥주가 없네.


아버지께서 드신 모양이다.


남아있던 한 캔.








역시 미래는, 참으로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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