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트루 Mar 05. 2018

13. 편의점 알바 김씨의 '그 때 그 손님 #1'

'아... 그때 그러지 말 걸...' 생각합니다.

여느 때처럼 카운터에서 있던 어느 날, 손님이 가게로 들어왔다.


단골이라고 하기에는 좀 뭐하지만, 우리 가게에 가끔 들러 얼굴이 익숙한, 나보다는 어려 보이는 남자분.






헌데 그의 모습은 어딘가 평소와는 다르게 몹시 초조해 보이고, 이상하리만치 불안하더랬다.


입술을 깨물고, 연신 탄식을 내뱉으며 땅과 하늘을 번갈아 쳐다보는 그.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이기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리도 불안해하고 있단 말인가.


 여자친구와 원치 않는 이별이라도 한 것일까.


마치 그 슬픔에 못 이겨 해서는 안 될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그의 모습에 걱정이 되기 시작하던 찰나, 그는 천천히 카운터로 다가와 담배와 라이터를 달라고 하며 나에게 물었다.







혹시... 담배 피시나요...?







이런...


필시 본인이 느꼈을 극도의 괴로움으로 인해 새로 담배를 배우기 시작할 참인 불쌍한 영혼이렸다.


일단 담배를 피우지 않는 입장으로서 '피우지 않는다' 대답을 하니, 이제는 "피우다 끊으신건가요...?"라는 진지한 질문이 되돌아온다.


이 친구, 심각하게 고민 중이로구나.






호기심에서였는지, 측은지심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웬만해서는 손님에게 먼저 이런 이야기를 물어보지 않는 성격의 필자의 입에서 갑자기,






혹시 무슨 일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생각해보면 20여 년 간 비흡연자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어떻게든 이 악의 구렁텅이로 들어가기 직전인 불쌍한 어린 양을 구원해야겠다는 사명감이라도 생겼던 것 같다. 고맙게도 그런 나의 질문에 그는 술술 자기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시험을 준비 중인데 너무 힘이 들어서, 1년 간 끊어왔던 담배를 다시 피고 싶어졌단다.



아쉽지 않으시겠어요...?




다시 물었더니, 딱! 이것만 피고 끊을 생각이란다.




.....아 그러십니까....(한심)


한심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자 들기는 했지만, 그가 얼마나 담배를 피우고 싶어하는지, 그 유혹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가 느껴지며 '담배가 참 무서운 것이기는 하구나...' 하는 생각또한 들었다. 이런 그를 구원해 줄 인물은 역시 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허구헌날 계산을 하며 단련이 된 손놀림인지라.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벌써 계산을 뚝딱 마쳐버리고 만 필자의 몹쓸 손. 그리고 그에 맞물려 찾아오시는 다른 손님들. 계산을 해주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그 손님은 어느 새 바람처럼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몇 번의 계산을 마치고 그제서야,








'아이고야... 내가 그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그 어린 양을 구원하기는 커녕 다시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것은 아닐까하는 괜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담배를 산다는 선택이야 본인이 한 것이고, 그에 나의 책임은 전혀 없는 것이기에 내가 책망받을 이유는 없다지마는, 적어도 이번 한 번만 참아보라며, 그의 결정을 만류하는 따뜻한 말이라도 건넬 용기가 스스로에게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적어도 손님에게 물건을 파는 것만으로 나의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그 손님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음....


어쩌면, 지금 내가 손님들, 그리고 사람들과의 벽을 너무 높게 세우고 살고 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자기위안 속에서, 그저 사람들에게서 상처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그렇게 안일하게 손님을 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치며 지금쯤 담배를 피우며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를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합니다 친구.










....이렇게 산다.


1년 여 간 이 곳에서 터줏대감모냥 뿌리박고 지내왔으면서도, 이렇듯 아직 스스로에게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깨닫고, 그에서 매일같이 배우는 것이 나의 일인 것이다.


앞으로 1년 여를 더 이 곳에서 있으면서 나는 얼마만큼 자라게 될까. 얼마만큼 자라야 나는 정말로 잘 할 수 있고, 잘 알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나도 참 별종이다 별종.




매거진의 이전글 12. 편의점 알바 김씨와 '빨간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