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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Oct 29. 2018

22. 졸업논문을 제출하며.

'나도 드디어 사회로 나가는구나...' 했습니다.


번 주 화요일, 학과 사무실에 졸업논문을 제출하는 것으로 무려 7년 간 몸 담았던 대학교에서 떠날 준비를 드디어 마쳤다. 







우리 학과의 졸업 요건은 영어자격시험논문.


영어자격은 토익을 9월 초에 어찌어찌 봐서 자격요건에는 맞췄지만 문제는 논문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하기는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을 만나면,



1. 대, 빨리 치워 버리거나,

2. "에이... 기왕 하는 거 열심히 해보자!"



보통 위의 두 가지 중 한 가지 자세를 갖고 그 일에 임할 것이라 생각한다.






근데 문제는, 라는 인간 이 둘의 중간 그 어디쯤에 애매하게 위치한, '아... 해야 하는데 하기는 죽어도 싫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아... 그래도 기왕 해야 하는 건데 대충 하기는 또 싫다...!'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고야 마는,
 
그러니까 흔히 말해 '인생 피곤하게 사는 사람의 표본'이라는 사실.







 '할 거면 제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 사람'

'반드시 해야 하는데 죽어도 하기 싫은 일'과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혹시 아시는가?












 시작된다.






한 글자도 앞으로 전진할 생각이라곤 없는 논문을 붙들고 이만 쁘득쁘득 갈며 책상과 씨름만 하는, 아주 애처로운 나날들이 매일같이 반복... 이게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기는 싫은데, 해야 하고. 피할 순 없는데, 즐기는 건 또 불가능한. 참으로 모순 투성이인 이런 상태가 몇 주 간 지속되니, 마치 스스로가 반 송장이 된 느낌이었다.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하나, 위기에 닥치면 어디에선가 솟아 나온다고 하는 '인간 고유의 생존본능'이라는 것이 내게도 남아있던 것인지, 제출을 열흘 가까이 남겨두고 나서야,


'아... 이젠 정말 뭐라도 안 하면 진짜 큰일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내 뒤통수를 "떡!" 때렸다. 얼얼한 뒷머리를 부여잡고, 그때부터 더딜지언정 그나마 꾸준히 끄적였다. 논문으로 상도 몇 번 받고 한 자칭 '논문 고수'라는 친구에게 도움도 요청(대필 아닙니다. 전 양심은 소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하고 한 결과, 월요일 새벽에는 늦게나마 겨우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화요일, 제본소에 맡겨 놓았던 완성본과 마주했다.




'피, 땀, 눈물로 점철된...' 이라는 표현은 감히 붙일 수 없을, 그런 조잡시런 논문. 학과 사무실에 제출하기 직전에 찍었다.



제본소 사장님의 솜씨로 A4 용지보다 조금 작아지고 깔끔하게 커버가 씌워진 논문을 받아 드니, 불현듯 한 줄기 미소가.

그렇게 지겹도록 날 고생시켰던 녀석인데 왜 내가 이걸 보면서 웃고 있는 건지 당시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그만큼 하기 싫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꽤 잘 버텨냈고, 그게 결과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꽤나 기뻤던 모양이다(물론 결과에는 크게 기대하고 있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 필자는 양심만큼은 충분히 소지하고 있는 인간이다).








성적은 A, B, C, D 중 하나로 나올 거고요~
성적이야 어떻든 졸업 여부에 영향은 없을 거예요~



과 사무실에 영어성적과 함께 제출을 하고 나니 조교님께서 말씀해주신다. 내 대학 성적표에도 졸업 성적으로 '아주 작게' 적힐 예정이라고.



아차.



'이거 조금 더 공을 들일 걸 그랬나...' 하는 욕심이 그제야 불쑥 고개를 내밀지만, 다시 돌아가도 이 이상으로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므로... 여기서 만족하기로 하고 다시 밖으로.










그래. 후련하다.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을 많이들 쓰던데, 나는 그저 시원할 뿐이다. 공부하는 이유가 차츰 사라져 가고,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친구들을, 그리고 남들을 따라 '일반적인 대한민국 사람'이 되기 위해 걷던 깨끗한 포장도로에 점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던 2014년부터, 학교는 나에게 믿음직한 울타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래서 후련하다.


또 잠시 잠깐 목표를 상실한 채 조금 헤멜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떤가. 헤매는 데도 이제 뭐 익숙해졌고.


취업계를 내가며 이미 사회로 진출해 4학년 2학기를 보내는 '보통의 대학생들'과는 다르게 내가 아직 이 자리에 남아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초조해지지만, 나는 이 자리에 끝까지 남아 대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그리고 마지막 혜택인 '마음껏 헤맬 수 있는 자유'를 조금 더 누리다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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