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응대법, 그리고 '친절'에 대한 고찰.
우리 편의점의 출입구는 정문과 후문의 두 군데.
정문의 자동문 혹은 후문의 미닫이가 열리면,
'띠리리~ 리리~ 띠리리~ 리리....'
(참 조악합니다만 이렇게 밖에는 표현이 안 됩니다...)
아기들의 장난감에서 익히 들을 수 있는, 정말 낯익은 클래식 음악이 나온다.
(글도 쓸 겸 찾아보니 Richard M.Sherman과 Robert B.Sherman 이 작곡한 '작은 세상'이라는 곡이라고 합니다. 아마 익히 들어보셨던 멜로디일 것이라 확신합니다)
어서 오세요~! XX입니다~!
벨이 울림과 동시에 오프닝 멘트(?)를 하며 손님 응대가 시작된다.
이 멘트는 내가 카운터가 아닌 다른 곳에 가 있더라도 벨이 들리면 거의 무조건 하는 것이 원칙처럼 되어있는데, 이는 손님에게 직원의 위치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기 위함으로, 별 것 아니어 보이지만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손님이 쉬지 않고 들어와 계속 인사를 해야 하는 경우나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 그 빈도를 줄이기도 한다.
(가끔씩 손님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에도 벨이 울리는 경우가 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외치고 본다)
그 이후의 물건 계산방법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다들 잘 아시겠지만 굳이 적어보자면,
1) 물건의 바코드를 찍는다.
2) 손님께 할인, 적립카드의 유무를 여쭤본다.
3) 할인, 적립을 진행하고 계산을 한다.
4) 봉투나 영수증이 필요하실 경우 드린다.
5) 가시는 손님께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라며 마무리 멘트를 한다. (하지만 진상 손님일 경우 대부분 생략되는 편이다)
편의점은 어디까지나 서비스업. 때문에 어느 정도의 친절함은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일을 해야 한다.
필자의 '친절함'에 대한 철학은 이렇다.
'가능한 한' 친절하게
문장 앞에 '가능한 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그 의미가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친절하게'라는 문장 앞에 '가능한 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어떤 차이점이 발생할까.
나는 이렇게 정의했다.
1) 내가 힘들지 않은 선에서,
2) 최선을 다하되,
3) 무조건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아니... 친절에 무슨 조건이 이리 많나?
손님이 왕인데 당연히 친절해야지!
이거 장사할 줄 모르는 친구 구만 이거....
(혹시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신 분이 계시다면, 당신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 서비스 업계 종사자들을 힘들게 만들고 계시는 바로 그 '진상 손님', 혹은 '꼰대'라는 뜻일지도 모르니 부디 자신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밝았던 점원들의 표정이 당신을 대하며 하나같이 어두워지고 기분 나쁘게 변해가는 것을 느끼셨다면, 그것은 비단 해당 점원이 일을 못해서가 아닌, 당신이 어딘가 그들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필자도 '직원 입장에서 고객에게 무조건!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옳고 또 당연하다!'는 나름의 서비스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말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뛰어든 뷔페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나는 내가 '친절'이라는 가치를 얼마나 철없고 순수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이 사회가 얼마나 팍팍하고 이기적인지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이 사회에서 '친절'이라는 가치는 너무나 쉽고 당연하게, 하지만 때로는 무가치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이었고,
항상 내가 준 만큼 돌아오는, 'Give and Take'가 되는 그런 성격의 것이 절대 아니었다.
(내가 10을 주더라도 상대가 0을 주는 경우가 수 없이 많다. 지금도 물론 그렇다)
뿐만 아니라, 어쭙잖게 베푸는 친절이 상대에게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며,
내 마음과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베푸는 친절은 나를 서서히 좀먹는 '병'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을 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던 필자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는 신념은 매 순간 스스로를 지치고, 때로는 숨 막히게 만들었다. 아마도 서비스 업계에서 고생해보신 경험이 있는,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이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아시리라 믿는다.)
뭉뚱그려서 적기는 했지만, 그동안 카페, 음식점, 콜센터 등에서 짧게, 또는 굵게 겪었던 온갖 서비스업에서의 경험은, 그리고 그때 느꼈던 친절의 어두운 이면은 필자에게 다시금 '친절'이라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다행인 것은, 그 온갖 경험들을 다 겪어 오면서도 필자의 안에서 세워놓았던 '친절'이라는 가치가 무너지지 않고 어느 정도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나는 스스로를 '쌓아놓은 공든 탑을 잘 지키며 일하고 있는 케이스'라고 표현하고 싶다.
(자랑은 아니지만, 점장님께나 손님들께 종종 "참 친절하시네요"라든가 "이 가게에서 제일 친절하세요"라는 칭찬을 들으며 1년이 지난 지금도 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가 아닐까. 뻥이 아닙니다 여러분...)
물론, 내가 이 전처럼 온몸을 내던지는 식의 친절함을 고수했더라면, 점장님이나 손님들께 칭찬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이렇게 오래도록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로 근무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것은 내가 어느 순간 부리기 시작한 요령, 혹은 원칙 덕분이 아닐까 싶다.
1) 받는 사람에게는 부담스럽지 않게,
2) 하는 입장에서는 어렵거나 힘들지 않게.
이 두 가지 조건이 붙는 순간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효과는, 바로 오버, 즉 무리하지 않게 되는 것.
받는 입장에서, 또 하는 입장에서 생각을 두 번 하게 되니,
1) 일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감정적 & 체력적인 소모가 줄어들어 부담이 없어지고,
2)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딱 적당한 정도의 친절함만 느끼게 되니 '아 이거 너무 서비스가 과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되면서 보다 편안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나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고 또 근무 철학이라면 철학이겠다.
(대신 그만큼 손님에게 살갑게 대한다기 보다는 칼같이, 제 일만 딱! 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조금 유연성이 부족하기는 합니다마는, 개인적으로 친절에 한해서는 '다다익선'이라는 말보다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고 또 맞다 생각합니다. 저한테도 이런 식의 근무 방식이 잘 맞는 것 같구요.)
아무래도 '기술적인 친절함'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듯한 이런 방법으로, 나는 매일 내가 베풀 수 있을 정도의 친절만을 베풀면서, 또 나름 만족스럽고 편안한 상태에서 일하고 있다.
예전에는 10 정도의 친절을 베풀었다면 지금은 6에서 7정도로, 어깨에 힘도 빼고, 조금은 여유도 부려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일을 대충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시지는 말아달라.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것은 지키며, 나름 빡시게! 'FM'대로 일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