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이모 Mar 18. 2024

사춘기 아들이 와락 품에 안길 때

어색하지만 확실한 행복

아이를 낳은 이후로 난 하루하루 시들어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들어 가는 나와 달리 하루하루 탱탱해지고 윤기가 흐르는 생명체를 보며 질투 아닌 질투를 했다.


그 생명체가 어느덧 내 키를 훌쩍 추월했다. 드라이기로 아이의 머리를 말려주다 까치발을 드는 상황이 오늘도 어찌나 어색하던지.
 
동화를 쓰며 누구보다 어린이들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 자부하지만, 아쉽게도 사춘기 아들과는 자꾸만 멀어진다.



 ‘엄마는 내 맘도 모르면서’


툭 내뱉는 말에 속절없이 마음이 무너진다. 디저트를 종류대로 배에 채워 넣어도 속이 허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5초도 아닌 0.005초 만에 붙접착제가 있단 거다.

와르르 무너진 마음을 순식 간에 붙여 버리는  바로 ‘와락’ 포옹!


아쉽게도 이 요술 접착제는 대가가 따른다. 용돈과 자유시간, 이 두 가지를 빵빵하게 채워줬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두 볼 위 언뜻 보였던 하얀 솜털 대신 시커먼 코털이 슝슝 난 아이는 ‘어음뫄~’하며 걸걸한 목소리로 날 부르며 다가온다.


아침에 감은 머리가 맞는지 의심되는 떡진 머리에 땀에 젖은 러닝을 돌돌 말아 일주일째 방치했을 때 나는 정수리 짠 내를 풍기며 내 품에 와락 안긴다. 소금물만 먹고 단식을 한 사람처럼 앙상한 척추뼈가 등 위로 도드라진다. 빨래판 같은 등을 토닥이며 중얼거린다.


‘두 놈 다 똑같이 먹이는 데 살은 한 놈만 붙냐. 넌 먹는 게 어디로 가니? 그래서 언제 들어올 건데? 숙제는 다 했어?’(이하 생략)
 
소년과 청년 사이 정체 모를 생명체가 가슴팍에 안기면 난 정신을 못 차린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벌어진 포옹은 찌릿함을 남긴다. 어색하지만 확실한 행복임은 틀림없다.

작가의 이전글 그때 그 아이들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