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10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양복바지 하나 사는 것도 유난스러운 당신
진동이 울린다. 출근 중인 남편이다.
마침 두 아이를 등교시킨 후,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던 터라 바로 받았다.
무얼 빠뜨렸거나 등기가 올 게 있으니 받아달란 부탁이겠지 하고 전화를 받았다.
- 애들은 갔어? 밖이야?
- 아니, 집이지. 무슨 일?
- 아, 어제 온 바지. 그거 반품하고 치수 큰 걸로 다시 주문할 까?
- 어제는 괜찮다며? 살짝 붙긴 해도 그게 맞는 거라며. 작은 느낌은 아니었는데...
- 핏은 맞지. 근데 여름에 입으면 땀에 붙어서 불편할 거 같아서.
- 그럼 한 치수 큰 걸로 사서 입어보고 결정해도 되지 않아?
- 그래 막상 입어보면 또 너무 클 수도 있으니...
남편은 70% 세일가로 여름 정장을 구입했다. 시즌 지난 양복을 핵특가로 구입하는 거만큼 뿌듯한 일이 없다며 새 정장이 오면 입고 벗고를 몇 번씩이나 한다. 그럴 때마다 난 '오~ 핏 장난 아닌데. 이게 정말 세트로 10만 원도 안 해? 대박'을 연신 외쳐준다. 맨발로 바지를 입었을 때와 구두를 신고 입었을 때의 기장도 체크해 수선집에 맡기는 것도 내 몫이다. 둘 다 기꺼이 할만하다. 며칠 동안 한 톤 밝아진 얼굴로 출근할 그의 얼굴을 생각하면.
마흔 중반을 내다보는, 나름의 사회적 지위도 있는 양반이 옷 한 벌에 어린애처럼 신나 하는 걸 보면 그저 짠하다.
소풍날 입을 옷을 꺼내 두는 설렘. 새 학기를 앞두고 하얀 실내화를 신발주머니에 챙길 때의 두근거림. 잊혀버림직한 감정을 그를 통해 느낀다. 다시 또 진동이 울린다. 그의 전화다.
- 근데, 바지만 따로 반품이 되는가? 세트로 산 건데...
- 아, 그렇네. 전체 반품을 하고 아마 따로 주문해야 할 거야. 혹시나 몰라서 택 안 버리고 챙겨놨어.
- 그래? 고민되네. 한 치수 큰 게 편하긴 할 거 같아서. 그럼 어제 온 건 어떡하지?
- 바지 하나에 얼만데?
- 이만 팔 천 원?
- 그럼 둘 다 입어. 한 여름엔 큰 거 입고, 요즘 같은 날에는 딱 맞는 거 입고. 벨트 하면 허리 커도 티 안나잖아.
- 그래 그럼 되겠다. 요즘 저녁에 많이 먹어서 그렇지. 살 좀 빠지면 이것도 잘 맞을 거야.
나와 전화를 끊고도 그는 계속 바지 고민을 했나 보다. 고작 이만 팔 천 원 때문에. 과신중, 과피곤, 과예민한 성격을 내가 아님 누가 맞춰줄까. 그를 안 세월도 이십 년이니 터득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는 사소한 결정 하나도 나에게 의견을 구한다. 아이처럼 허락을 받아야 마음이 놓인 다는 듯. 그럴 때마다 난, 포청천으로 빙의해 단호박 솔루션을 내리는 편이다. 그런 성격이 못 되는데도, 이상하게 튀어나오는 무언가가 있다.
사랑과 헌신의 또 다른 이름, 책임이랄까.
어떤 결정을 내리든 당신만 탓하지 않을게.
내가 당신의 짐을 나눠 들게.
당신의 선택에 나도 힘을 실을 게.
당신의 안식처가 될게.
...
그로 인해 처리한 반품과 환불 접수가 생각난다.
필요시 내야 했던 궂은 소리도.
그래도 어쩌나. 등 뒤로 숨어 뿌듯해할 당신을 위해서라면.
그깟 반품쯤이야.
2024. 식목일 이른 아침, 마음 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