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예쁜 봄꽃이지만 꽃가루는 반갑지가 않다. 잠잠하다 싶더니 둘째의 재채기 소리가 심상치 않다. 어김없이 찾아온 비염. 둘째의 코 푸는 소리가 요란하다. 킁킁- 에에에취--- 휴지통 안은 코휴지가 가득하다. 새벽에도 킁킁 거리는 걸 보니,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도 소용이 없나 보다.
- 통통아, 내일 학교 가기 전에 비염약 받아서 먹고 가야겠어. 도저히 안 되겠다.
- 알았어. 요즘 병원 갔다 오는 애들 많아. 조퇴하는 애들도 있고.
평소보다 늦은 등굣길, 책가방을 맨 아이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아침 8시 57분, 병원에 도착하니 낯익은 원장선생님이 헐레벌떡 들어오는 게 보인다.
- 비염에 목도 부었고, 가래도 많네. 3일 분 지어드릴게요.
물약에서 알약으로 바뀐 처방전을 보니 세월을 실감한다. 갖가지 물약을 번갈아 먹이느라 애먹을 필요 없단 소리다. 아이는 포동포동한 손가락으로 약을 두 알씩 집어 입속에 넣는다. 그리고 물통을 열어 물을 들이켠다.
- 혼자서도 약 잘 먹네. 이따 점심 먹고도 챙겨 먹어. 까먹지 말고.
아이는 당연한 걸 왜 자꾸 확인하냐는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약국을 나서는데 봄 햇살이 목덜미를 비춘다. 따스한 햇살에 비친 얼굴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났다. 슬며시 내가 손을 잡으니 아이가 수줍게 입술을 뗀다.
- 엄마랑 학교 같이 가니깐 좋다.
엄마랑 학교 같이 가니깐 좋다... 이 말이 내내 가슴에 맴돈다.
2014년 4월 16일
알약을 혼자 삼키는 열 살 아이는, 10년 전 따뜻한 양수에서 헤엄치던 생명체였다.
출생신고 두 달 전, 아이는 앞뒤로 구르며 내 뱃속을 발로 툭툭 찼다.
발길질하는 생명의 몸짓과 선박에 갇혀 발버둥 쳤을 수백 명의 아이들의 몸부림이 겹쳤다.
살아있다고 보내는 신호가 살려달라고 보내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따뜻한 양수에 잠든 작은 생명체가 이 사실을 몰랐으면 했다.
차디찬 바깥세상을 이르게 나올 필요 없다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다 나오라고 외쳤다.
오늘 아침 꼭 잡은 손은, 십 년 전 누군가가 애타게 잡고 싶던 손이었을지도 모른다.
해마다 오늘이 돌아오면_ 아이의 온기가 얼마나 그리울까.
얼마나 보고 싶고 잡고 싶고 느끼고 싶을까...
<나의 상처로부터 해방되려면 이 사회적인 상처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아도르노의 말을 따르는 분들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