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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이모 Apr 21. 2022

그녀는 왜 11시 11분 11초를 기다렸을까?

열다섯. 문학소녀가 교습소 원장이 되었다.

출처 미미아뜰리에 창원



10,9,8,7,6,5,4,3,2,1 땡! 드르륵 의자가 밀려지고, 한 소녀가 교단 앞으로 걸어 나간다. 손에 쥔 직사각형의 상자를 50대 남성에게 내민다.

 
소녀는 11월 11일 11시 11분 11초의 순간을 기다렸다. 얼마나 많은 ‘1’을 세며 가슴을 졸였을까? 소녀의 빼빼로를 받을 대상은 깔삼하게 급변한 초등학생 동창도 매일 같은 버스를 타는 X도 아닌, 퇴직을 앞둔 수학 선생님이었다.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소녀의 마음은 뭘까? 영화 은교에서 은교가 이를 대변한다.

 
‘고등학생이 왜 섹스를 하는 줄 알아요? 외로워서 그래요.’

 
알 수 없는 결핍이 나를 사정없이 흔들 때, 누군가의 ‘인정’과 ‘관심’은 빼빼로에 발린 초코만큼 이나 소중하다. 초코가 없는 빼빼로는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하는 것처럼. 질풍노도의 시기 부러진 영혼들은 간섭과 강요 대신 따뜻한 ‘인정’과 다정한 ‘관심’을 원한다. 그들에게 닥친 불안한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초코가 없어 슬픈 빼빼로 손잡이 마냥, 스스로를 볼품없다 여겼던 소녀는 그로 인해 채워진 마음을 ‘사랑’이라 여겼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대상이 전한 뜻밖의 위로, 관심과 인정, 칭찬이 열다섯 소녀의 사랑을 불러왔다.

 
수학 선생님을 짝사랑한 문학소녀는 수학을 전공하고 교습소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아직도 11월 11일 11시가 되면 그를 생각할까? 아마 그녀보다 팔십을 바라보는 그가 그녀를 더 추억하지 않을까? 젊음으로 회귀했던 어느 11월 달콤한 순간을.
 



이 글은 숫자 11에서 받은 영감으로 쓰였습니다.







FROM

아는 이모 블로그.

https://m.blog.naver.com/onlykhsaq/222706426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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