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없는 가게에서 주방장 마음대로 메뉴를 골라 주문했는데 씹어도 도저히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 수 없는 느낌요.
2. 산문과 달리 ‘시’가 가진 매력은 뭘까요?
두 줄에서 계속 헤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어요.
읽을 때마다 다른 묘한 매력이랄까. 시인들이 왜 고독한지 알겠어요. 자기만의 세계에 외롭게 빠져들어야 시를 쓸 수 있겠더라고요.
참, 그리고
시집 뒷부분인 허수경 시인의 발문에서 시는 이런 것이라고 하네요.
박준에게 시는 염분의 문제이니 눈물의 염분이 세계의 염분, 그 농도보다 조금은 높아질 때 쓰였을 것이다.
...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불편한 것이다. 일용할 양식과 도덕과 써야 할 말과 버려야 할 말 가운데. 자신의 부패와 타인의 몰인정함, 그리워하면 할수록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는 그리움과 함께, 또한 이 불편한 세계조차 유한하게 만들어 버리는 우리의 생물학적 조건과 함께. 그런 고통 때문/덕분에 어떤 시인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인류에 속하되 세계를 소화하는 위장만은 초식류의 동물들처럼 여러 개의 방을 가진 되새김위로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들여다보면 볼수록 멀어지는 것으로 여겨질 때 첫째 위안에 그것을 저장해 두고 되새김하는 어떤 시인들에게 세계는 씹어도 씹어도 소화되지 못하는 무엇을 뜻한다.
박준에게 시란 염분의 문제라니.
이런 표현은 시인들만이 할 수 있는 거겠지요.
세계의 염분의 농도보다 조금은 높아질 때
시를 쓰는 것은
응축한 무엇을 농축시켜 함축적으로
담아내야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러나,
씹어도 씹어도 소화되지 못하는 세계가 시인들에게도 있다면 무슨 맛인지 모른 채 되새김질만 해도 괜찮다는 말 아닐까요. 산문과 달리 ‘시’라는 녀석의 매력은 매우 허용적인 것에 있으니까요.
3. 작가는 왜 ‘시’라는 형식을 통해 글을 썼을까요?
길게 주절주절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
시인은 불친절함으로 자신만의 장르를 구축하는 거 같아요. 박준 님의 마침표가 없는 산문시는 정말 읽기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그것도 의도라 생각하니 꽤 멋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행과 행, 연과 연 사이 (국어시간에 써보고 처음 써 보네요.) 여백을 통해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하며 한 템포 쉬어가라고 ‘시’의 형식을 고수하는 게 아닐까요?
4. 가장 인상 깊었던 시 혹은 시 구절이 있다면? 그 이유에 대해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써 보세요!
22p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의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땅을 잃고 집을 잃은 이들의 소식을 접하니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없다. 나 따위의 슬픔은 자랑이 되면 안 된다. 이를 악물어 버틸힘을 그들에게 바래서도 안된다. 그 무엇도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 말 못 한다.
32p <光>
...
흠집은 흠집이 아닌 곳과 똑같은 두께로 약을 발라야지 말입니다 벗겨져도 같이 벗겨지고 덮여도 같이 덮이는, 흠집이 내가 되고 내가 흠집이 되는 저희 어머니도 서른셋에 아버지 보내시고, 그때부터 아예 아버지로 사시지 말입니다 지난 휴가 때도 얼굴도 몇 번 못 뵙고 그나저나 이번에 이효리 누나 춤 보셨습니까? 막 골반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데 말입니다 아, 다 바른 다음 말입니까?
이제 약이 이렇게 먹어 들었으면 여기에 물을 한 방울씩 털고 헝겊을 손가락에 두르고 같은 방향으로 밀고 나가야지 말입니다 김 병장님 그런데 신기하지 말입니다 참말로 더는 못 해 먹겠다 싶을 때, 이렇게 질기고 지겹게 새카만 것에서 광이 낯짝을 살 비치니 말입니다.
같이 벗겨지고 같이 덮이는 그런 존재들로만 가득하다면 정말 못 해 먹겠다 싶을 때 한줄기 광(빛)을 만날 수 있으려나. 광받는 세상을 보고 싶다.
54p <발톱>
...
동짓달이 가까워지면 동네 고양이들이 반지하 보일러실에서 몸을 풀었다 먹다 남은 생선전 같은 것을 들고 지하로 내려가면 어미들은 그새 창밖으로 튀어나가고 아비도 없이 자란 울음들이 눈을 막 떠서는 내 발목을 하얗게 할퀴어왔다
난 어떤 울음으로 자라왔을까. 누굴 할퀴며 컸을까.
55p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 글로 사람을 만나고 싶게 하는 말이다. 글로 맺는 관계의 특별함은 써 보고 읽어보고 느껴본 자들만이 아는 세상이다. 그러고 보니 매 순간 아름답고 싶어 나는 글을 쓰는 듯하다. 들춰내 곱씹어 따뜻한 내가 되고 싶어서. 결국 못난 나 대신 아름다운 내가 되고 싶어서.
37p <광장>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이면 좋았다 우리는, 같이 살아야 같이 죽을 수도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시절에 만났다 네가 피우다 만 담배는 달고 방에 불 들어오기 시작하면 긴 다리를 베고 누워 국 멸치처럼 끓다가...
결혼을 하는 이유를 이 시를 통해 알았다. 같이 살면 같이 죽을 수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왜 몰랐을까. 마지막을 지켜볼 수 있는 자격은 기혼자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 누가 먼저 겪을지 모를 그 의무에 정성을 쏟겠다 다짐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새삼 소중하다. 당신의 잠든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오늘. 6시간 뒤 깨어날 당신을 기다리는 오늘.
이어서 시 계속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었다.’ 정도의 글귀를 생각해 너의 무릎에 밀어 넣어두고 잠드는 날도 많았다 이불은 개지도 않고 미안한 표정으로 마주 앉아 지난 꿈 얘기를 하던 어느 아침에는 옥상에 널어놓은 흰 빨래들이 밤새 별빛을 먹어 노랗게 말랐다.
새를 위해 풀과 나무를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 어른인데 어른이 되려면 아직인가 보다. 난 아직 새로운 새장을 찾느라 바쁘다. 크고 기능적인 새장을 알아보는 걸 멈춰야 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