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행복 해지는 법을 잊을 뿐이지

자가와 투자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by 아는이모


첫 책을 쓰고 나니 누구의 아내와 엄마 이외에 나를 가리키는 타이틀이 하나 더 생겼다.


'경제강사'


강의를 할 때면 숨어있던 자아를 불러와 세팅한다. 지적인 카리스마를 장착하고 마이크를 잡는다. 마인드컨트롤을 수없이 해도 아직도 강의 시작 5분 전이면 심장이 쿵쾅거린다. (이 말을 하면 다들 놀라긴 하니 난 연기를 해야 했나 싶다. 훗)


"저는 하루빨리 집을 샀으면 좋겠는데, 남편이 지금이 기회라며 주식투자만 하려 해서 요즘 너무 불안해요."


한 강연장에서 만삭의 임산부가 수줍게 질문했다. 순간 10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집이 없던 우린 시어머님 명의로 된 집을 빌려 살았다. 그 집에 들어가 5년을 살며 남편은 공단 주변 소형 아파트에 투자를 했다.


임대인의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인 2천만 원짜리 아파트. 월세를 받아봤자 3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보일러를 교체하고 장판과 방충망을 갈아주면 몇 달치 월세가 빠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투자였지만, 그 기간 동안 학군지 아파트는 2배 넘게 올랐다.


빌려준 집을 수시로 방문해 창틀 먼지와 빛바랜 메리야스를 보며 살림은 이렇게 하는 거다를 몸소 보여준 시 어머니. 매월 신용카드 고지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한 푼이라도 아껴 투자를 하려는 남편. 이 둘 사이에서 난 무엇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연스레 신축 아파트에서 고급 유모차를 밀며 백화점을 다니는 일상을 포기했다. (부끄럽지만 당시 내 로망이었다)


'남들처럼 집 하나 사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인가?'


쓸모없는 후회를 수시로 했다. '내 말 듣기를 잘했지, 그때 안 샀으면 어땠을 뻔했어' 식의 말은 꿈에서나 가능했다. 투자에 대해 무지했던 아니 돈에 대해 관심이 없던 난, 남편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최선이었다. 결혼 후 10년 동안 작고 사소한 불행이 켜켜이 쌓여만 갔다. 불쑥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을 때, 이 고통의 근원이 '돈' 때문이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달라져야만 했다.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되어야만 했다.


'오늘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대신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준비하면 돼?'라고 남편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편과 함께 투자를 시작했다. 제대로 된 돈 얘기를 시작했을 뿐인데, 인생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그간 우리의 선택에도 배움이 있었다고. 모으고 불리는 속도에 조급해하는 대신 오래도록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을 거라고.


새로 산 물건의 소중함이 그리 오래가지 않은 것처럼, 번쩍이는 대리석 바닥도 가구와 카펫으로 채워지면 빛을 내지 못하는 것처럼. 돈에 맞춰 산 집에서의 만족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원하는 집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날 자가를 마련하자고 남편과 약속했다.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한 집을 볼 때면 '여기도 살기 괜찮을 것 같은데?'라며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지난 수년간, 유튜브 속 슈퍼개미처럼 자랑스러운 수익률은 내지 못했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수확을 우린 이뤘다.




투자 방법에 확신이 생긴 것.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끊어낸 것.

돈을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


무리하게 자가를 마련했다면 결코 이뤄내지 못했을 것들이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 길을 잃지 않을 베포가 필요하다. 비록 과정은 험난할지라도, 과정 속에서 우리를 변화시킬 기회도 만날 수 있다는 걸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법을 알고 있다. 단지 그 방법을 시시때때로 잊을 뿐이다. 측정 가능한 소비 행태로 관찰되는 물질적인 것에 노출될지라도. 줄을 세우고, 등수를 매기고 소, 돼지, 닭에게 까지 등급을 매겨야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에 살 지라도. 좋은 사람으로 행복하게 늙어갈 방법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흐려지지 않고, 전복당하지 않고, 붙들고 살아야 할 것들이 있다. 돈 되는 정보는 언제 어디서나 쏟아진다. 하지만 행복해지는 법은 내가, 우리가 스스로 찾아야 된다. 질문자의 볼록한 배와 동그란 두 눈을 번갈아 보느라 몇 초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겨우 입을 뗐다.


'제 생각에는 괜찮을 것 같아요.'

'일단 남편의 의견을 지지해 주면서 함께 공부를 시작해 보세요. 지금 상황에 맞는 투자 방법을 찾으실 거예요.'

'아이가 어릴 때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해 볼 수 있어요. 투자도 경험을 통해 배우는 거잖아요.'

'학군지로 이사 가는 건 여유 있을 때 결정하셔도 늦지 않아요. 무리하게 미리 이사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부디 뱃속의 아가에게도 도움 되는 말이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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