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참관수업

학교에서 우리 집 그 아이는

by 아는이모

참관수업 안내문이 일주일 내내 알림장에 떴다.


'다음 주 수요일은 학부모 참관수업 관계로 급식 후 5교시 수업을 하고 하교합니다. 그리고 방과 후 수업이 없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학교 교문을 당당히 들어선 지가 언제였던가. 코로나 기간 동안 철저히 외부인으로 구분되었기에, 몇 해가 바뀌도록 교실을 둘러볼 수도 담임 선생님을 만날 수도 없었다.


두 팔 벌려 학교에서 학부모를 초대하는 날이니,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두 아이가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욕실로 향했다. 머리를 감고 화장대 앞에 섰다. 마스크로 가릴 입술이지만, 정성껏 립스틱을 바르고 속눈썹도 한 올 한 올 올렸다.


준비를 끝내니, 아침 먹을 시간이 부족했다. 2시간가량 서있어야 했기에 늦더라도 무얼 먹고 나가야 했다. 쪽파를 넣은 양념장에 볶은 고기를 넣어 슥슥 비벼먹었다. 아침치고는 꽤 무거운 식사였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다.

후다닥 옷을 입고 무슨 가방을 들지 3초 정도 고민했지만, 시계를 보니 둘째가 두리번두리번 엄마를 찾고 있을 시간이었다. 손에 짚이는 가방에 휴대폰과 이어폰, 읽던 책을 넣고 학교로 향했다. '향수라도 뿌리고 나올걸. 구두를 신었어야 했나? 에코백은 좀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신호등을 건넜다. 예상대로 학교 앞은 조용했다.


계단을 올라가니 복도부터 교실 앞, 뒷문에 엄마와 아빠들이 우르르 몰려있었다. 둘째의 뒤통수라도 확인하고 싶어 무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 했지만 한 치의 양보를 바랄 분위기가 아니었다. 앞서 도착한 그들은 흐뭇한 얼굴로 아이의 모습을 관찰하거나, 날카로운 표정으로 선생님의 수업 스킬을 평가하는 듯 보였다.


상 하 좌 우 위아래 요리조리 각도를 비틀어 둘째의 뒤통수에 '엄마가 왔어' 텔레파시를 쏘아 보냈다. 이렇게 까지 하는데 한 번은 뒤돌아 봐주지라고 생각할 때쯤 둘째와 눈이 마주쳤다. 마스크로 가려진 입이 야속했다. 입 대신 눈으로 찡끗, 힘껏 '파이팅'을 외쳐줬다. 멍하니 있던 아이는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고는 고개를 숙인 채 선생님이 쓰라고 한 걸 그제야 쓰기 시작했다.


각본이 짜인 수업을 아이들은 예상된 반응대로 즐겼고, 선생님의 무미건조한 칭찬에도 어깨를 으쓱하곤 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몸짓과 표정, 앉아 있는 자세에 묻어났다. 덩치는 달랐지만 아홉 살 순수의 농도는 얼추 비슷해 보였다.




둘째의 수업이 마무리되는 걸 보고 첫째의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와 계단을 지나다니며 어깨에 걸쳐진 비슷한 듯 다른 명품백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반사적으로 가방 다음 신발에 눈이 갔다. 내 운동화도 썩 나쁘진 않았지만 진주와 벨벳, 토끼털로 장식된 단화도 나빠 보이진 않았다. 이참에 스타일을 바꿔 볼까, 염색을 해볼까, 생각을 하며 4층에 있는 5학년 교실에 도착했다.


고학년 교실은 분위기가 달랐다. 재기 발랄한 활기가 느껴졌다. 열두 살 어린이들은 모둠활동을 하는 중간에도 선생님 눈을 피해 장난을 치고 농담을 했다. 뒤에 누가 서있든 상관하지 않았다. 엄마도 아빠도 슬쩍 한번 쳐다보고는 끝이었다. 아니, 눈길조차 보내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당황스러웠던 건, 교장선생님을 대하는 아이들 반응이다. 빨간 넥타이를 맨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두 손을 흔들자 '우와'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머쓱해하는 학부모들에게 교장선생님은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대놓고 가르치지 않은 권력에 대한 예우를 5학년은 아는 듯했다. 몇 년 만에 학교로 온 엄마와 아빠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는 교장 선생님이 얄미웠다. 첫째와 자주 어울리는 친구의 이름과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려 하는데 우리 집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손목에 찬 시계를 가리키며 나갈 때가 됐다는 수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굳이 서 있지 않아도 된다고, 어서 나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집 밖에서 더구나 교실에서 만난 엄마는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나 보다. 킥킥 거리며 모둠 과제를 완성하고 발표하는 첫째의 모습을 보고는 쏜살같이 교실을 빠져나왔다.


나에게 한 없이 특별한 아이가 밖에서는 별 볼일 없는 아이처럼 보여서인지, 교실을 가득 메운 학부형들의 기에 눌려서 인지, 엄마를 반기는 아이의 반응이 기대 이하라 그런지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은 허하기가 그지없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갔었나를 확인할 정도로.


집 앞 카페에 들러 수제 초코 호두 쿠키와 아이스 라테를 주문했다. 평소 잘 안 먹는 메뉴로 일탈을 해야, 이 기분에서 헤어 나올 것만 같다. '얘네도 나처럼 긴장했겠지?' 차디찬 카페인과 바삭 달콤한 쿠키가 입안을 채우고 나서야 우리 집 아이들의 마음이 보인다.


서점에서 본 베스트셀러 제목이 불현듯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잊지 않고 우리 집 두 아이에게 말해줘야겠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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