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차리는 제사상

부모가 누군 인지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

by 아는이모

혼자일 때 특히나 더 효율이 오르는 영역이 있다.


'글쓰기와 요리'


한꺼 번에 여러 종류의 글을 쓰거나, 음식을 만들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글감 또는 식재료를 탐색하고 순서에 맞게 배치하고 다듬어 완성하는 과정은 잔잔한 외로움이 따른다. 3대 독자 장손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일 년의 몇 번은 주방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결혼 3년 차, 시어머니에게 집 대신 제사를 물려받았다. 집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1도 해본 적 없지만, 주위에서 제사를 물려받았다고 하니 다들 놀라긴 했다. 그야말로 얼떨결에 굴러 온 제사였다. 타의 주도적으로 일 년에 세 번 제사를 모셨다. (지금은 두 번으로 줄긴 했다) 아버님, 시할아버님, 시할머님 제사를 치르며 고요한 수련을 했다.


목련 꽃이 무렵, 제사 시즌이 돌아오면 머릿 속이 바빠진다. 일주일 전부터 머릿속으로 장 봐야 할 것을 생각해 두고, 신선하고 저렴한 재료를 사기 위한 동선을 짠다. 제사 하루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물을 다듬고 고기를 재우고 각종 전 재료를 볼에 손질해둔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봄날, 아버님의 제사상이 차려졌다. 남편이 먼저 술을 올린 후, 두 아들 녀석과 나란히 두 번 절을 했다. 몇 초의 침묵이 흐른 뒤 남편은 굳게 다문 입술을 뗐다. 이 곳 소식을 육성으로 전하기 위해서다.


“아버지, 저는 회사를 잘 다니고 있습니다. 두 아들은 이제 6학년, 3학년이 되었고요. 아내는 글을 쓰며 가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보살펴주신 덕분입니다.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전을 부치다 손목에 기름이 튀어 따갑다고, 솥을 닦다 팔이 빠질 것 같다고 투덜대던 게 생각나서 괜히 냉장고 문을 열고 닫았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허리가 욱신거린다며 남편에게 엄살 섞인 예고를 해댄 것도 유치했다.


고백컨데 난, 친정 식구들에게 먼저 안부를 묻지 못하는 차갑고 정 없는 딸이자, 남편과 어머님의 대화에 넉살 좋게 끼지 못하는 무뚝뚝한 며느리다. 어려서부터 난 나밖에 모르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아이였다. 시장 골목에서 똑 부러졌던 난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학군지라 불리는 곳에 사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아는 ‘단지’는 소금이나 고추장을 담는 작은 항아리였다.


그들의 언어에서 등장하는 단지는 '그릇'이 아닌 사는 '집'이었다. 친구가 사는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면 ‘나도 이런 곳에서 태어났다면.’ 이란 허무한 상상을 했다. 어떨 땐 못 올 곳을 지나는 것처럼 어깨가 움츠러들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알았다. 그 허무한 상상을 나의 부모 또한 수없이 했을 거란 걸. 움츠러든 딸의 어깨를 보며 숨죽여 가슴을 쳤을 거란 걸. ‘나 같은 부모를 만나지만 않았어도.’라는 생각으로 그들이 자주 울컥하게 했을 거란 걸. 더 내어 줄 게 없어 자신을 탓하는 ‘부모’가 돼서야 뒤늦게 그들의 마음이 보였다.


‘너네 아브지 뭐 하시노?’ 오래된 유행어가 아직도 회자되는 건, 우리 인생에 부모가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부모와 상관없이 내 삶을 살 수 있다면. 혹은 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청소년 소설에서 찾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부모가 누군 인지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페인트, 이희영>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 그러고 보니 ‘너 자신을 알라.’는 오래된 현자의 가르침을 뒤로하고, 우리 사회는 부모와 뿌리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예로부터’라는 문화 때문인지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비슷한 질문을 하며 사는 게 당연하다고 믿었다. 그들이 먼저 각자의 삶에서 다른 질문을 할 수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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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남들과 똑같이 살기 위해 애쓰지 않고, 부모나 사회의 요구에 따른 삶 대신 자신만의 삶을 과감히 선택해도 된다고. 당신과 우리는 그러기에 충분하다고.


불안의 파도에 휩쓸려 살다 보면 자신을 알아갈 기회를 놓치곤 한다. 어쩌면 자신이 그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저마다 다른 이유가 삶의 원동력이 될 때, 우린 더 자유로울 수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더 반짝이다 보면, 몸에 맞춘 듯 편안한 행복도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닐까.


요즘 난 할 말이 많아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길 원하는지를 알고 난 이후로, 말과 글에 분명한 무언갈 담고 싶어졌다.


돌아오는 아버님 제삿날에는 나도 한번 술을 올리며 조용히 속삭여 봐야겠다.


“아버님, 당신의 아들과 두 손주. 알아서 잘 크도록 조치해 뒀어요. 이제는 제가 클 차례인 것 같아요. 엄마, 아내, 며느리도 좋지만 저는 작가로 불리는 게 더 좋습니다. 쓰고 싶은 글 마음껏 쓰며, 남편과 함께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다 가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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