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나에게도 올 날을 기대하며
1년에 한 번, 4시간은 거뜬히 머물렀다 오는 곳.
'미용실'
어렸을 적 난 머리를 하러 간다는 엄마의 손을 자주 붙잡았다. 돌돌 말린 엄마의 머리를 보며 요구르트를 마시고, 바구니 속 사탕을 종류대로 골라 입에 넣는 재미가 쏠쏠했다. 엄마가 미용실 원장님과 수다 삼매경에 빠지면 리모컨 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다. 파마약 냄새는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입 안 속 달콤한 사탕이, 화면 속 만화 캐릭터가 후각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사춘기가 찾아왔을 무렵부터 난 엄마의 단골 미용실 대신, 새로 오픈한 미용실 또는 친구가 소개해준 미용실을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학생, 조금만 더 기다려. 손님 커트 먼저 하고 봐줄게.’
예상 보다 한두 시간 더 오래 걸렸던 머리. 혼자 가면 늘 기다리는 게 일상이었다. 바쁜 어른들에게 학생인 내 시간은 양보해도 될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었을 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미용실에 갈 시간이 없었다. 나 또한 바쁜 어른이 된 것이다. 머리를 해야 하는데 하고 미루고 있던 어느 겨울, 퇴근하고 일터 맞은편 미용실로 갔다. 하나둘 손님이 떠나고 홀로 남은 가게에서 난 중화와 헹굼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보일러가 꺼졌나? 다시 켜도 온수가 돌려면 시간 걸리니까, 그냥 음... 좀 참으세요.”
내 머리를 감기는 사람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그가 바닥의 너부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모으고 있었다. 어서 마무리하라는 신호였던가. 찬물로 머리를 감긴 것도 모자라 머리카락도 대강 말렸다. 어깨가 축축했지만, 한 마디 불평도 하지 못한 채 계산을 하고 나왔다. 나의 소심한 대응은 그저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라는 인사에 대꾸를 안 하는 정도였다.
그 후로 십여 년이 흘렀다. (사실 이십 년에 가깝긴 하다) 미용실도 음식점처럼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 늘었다. 초록창 별점을 기준으로 이용 여부를 결정하는 분위기 때문에 미용실도 리뷰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색다른 마케팅으로 무장한 가게가 들어서고 소박한 마음으로 진심을 파는 작은 가게가 사라져 갔다.
살아남기 위한 서비스용 친절을 당연한 권리인 듯 누리는 사람들이 생겼다. 자본주의 사회에 학습된 습관에 물든 사람이 늘수록,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집을 잃었다. 찬물로 머리를 감는 추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냉혹한 현실이 계속해서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애써 대접받지 않는 손님이 되려 한다. 비용만큼 계산된 친절이 버거울 때. 돈과 상관없이 사는 소박한 주인에게 매료될 때. 주고받지 않는 관계의 담백함이 그리울 때면 공손한 손님이 되고 싶어 진다.
보름 전, 여름맞이 준비로 미용실을 찾았다. 원하시는 헤어스타일이 있냐고 묻는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딱, 지금 디자이너 선생님 머리처럼 하고 싶어요.”
진실대로 얘기했을 뿐인데 그녀가 웃었다. 나의 머리를 디자인해 줄 선생님. 어깨까지 내려오는 중 단발 길이에 C컬과 S컬을 과하지 않게 넣은 그 선생님의 머리가 하고 싶었다.
떡 진 정수리를 보여주기 민망해 머리를 감고 갔던 내게 그녀는 미용실 올 땐 머리를 안 감고 와도 된다고 친절히 알려 줬다. 그리고 내 두피 상태를 보고 귓속말로 얘기했다.
“고객님 두피가 안 좋으시네요. 저도 시중에 나오는 저렴한 제품 써봤는데 효과 있더라고요. 두피케어 팩과 세럼 사서 꾸준히 관리해 보세요.”
조심스레 얘기를 꺼낸 그녀는 내 머리에 첫 번째 샴푸를 했다. 그리고 파마약과 중화제 그리고 단백질 케어 세럼과 팩을 발랐다 몇 번이나 물로 헹구고 말리기를 반복했다. 디자이너 선생님 머리처럼 하는 데 걸린 시간은 총 3시간 40분. 그녀에게 지불 한 비용은 13만 5천 원.
그녀에게 물었다.
“선생님, 점심 못 드셔서 어떡해요?”
“워킹맘 제도로 근무 중이라 5시에 퇴근해서 괜찮아요.”
'아, 워킹맘이었구나.' 내가 거울을 보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내 뒷모습을 찍어 주었다. 그리고 수줍게 사진을 내밀며 초록창 리뷰를 요청했고, 난 열과 성의를 다해 후기를 남겼다.
묻고 싶었다. 당신의 손목은 괜찮은 거냐고.
그렇게 끼니를 거르고 일하면 위장이 남아나지 않을 텐데, 내시경은 매년 해보는 거냐고.
타인을 돌보다 정작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에너지가 고갈되는 경험. 그러한 경험을 반복하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일상. 나에게 소홀해질 때 벌어지는 일들을 안다. 그래서 나에게 묻는다. 사람도 사물처럼 소모되고 버려지는 게 당연한 세계에서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할까. 최소한의 적정온도를 유지하며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갈 방법은 없을까. 흔들리는 작은 마음도 모으면 무엇이 되진 않을까.
정수리와 가장 먼 위치에 있는 다섯 발가락이 계절의 바뀜을 알린다. '수족냉증' 한여름 밤에도 잠들기 전 가끔 수면 양말을 찾는다. 수면 양말에 발가락을 넣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게 뭐라고.’
그리고는 되뇐다. ‘그래. 따뜻함은 거저 생기진 않지.’ 사랑이 필요한 건 삶의 온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래서 자주 외치려 한다.
‘단언컨대 당신 덕분입니다. 덕분에 따뜻해졌습니다.’
이 말이 돌고 돌아 나에게 올 날을 기대하며. 들썩이는 마음을 꺼뜨리지 않아야지. 다독이고 헤아린 생각들을 수첩에 옮기며, 부끄러운 글의 조각들을 성실히 모아가야지.
누군가 내 손목의 안부를 물을 날들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