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소위 말하는 재력가들의 돈 관리를 담당하는 일을 한다. 처음에는 고객으로 만나지만 그중 일부는 형님, 동생 하는 관계로 진전되기도 한다. (형, 동생이 되었다고 떨어지는 콩고물은 없다.) 60 ~ 70대 (지역 유지라 일컫는) 회장님의 자산을 주로 관리하지만, 40대 후반 백억 대 자산가의 재테크 상담도 하고 있다.
뜻하지 않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돈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아들 친구의 영어학원 레벨 테스트 결과를 남편이 궁금해하지 않는 것처럼,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다. 하지만 그를 위해 내 두 귀를 열기로 했다.
가질수록 치열한 '돈'의 세계에서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월급을 받아오는 남편의 정신건강을 위해. 재력가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를 모른 척할 수 없기에.
남편은 고객들의 성공신화를 들어주는 일로 친분을 쌓아간다고 한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어디서나 쓸모 있는 법. 알면서도 개선이 쉽지 않은 그 능력을 20년 가까이 갈고닦고 있다. 인간극장, 서민 갑부에 나올 법한 식상한 레퍼토리를 경청하며 꼿꼿한 고객들의 신임을 얻었다.
'맨손으로' '일찍' '누구보다 성실하게'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다는 식의 이야기를 나에게 늘어놓을 때마다, '그럼 우리는 맨손이 아니었나, 불성실해서 평범하게 사는 건가.'라는 딴지를 걸기도 한다.
어쩔땐 사업에 성공하고, 돈이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 일하는 남편이 작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안다. 한낯의 희망이라도 품으려면, '운'을 '기회'로 만든 그들의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걸.
쟁쟁한 사람들과 엉켜 골프를 쳐야 하고, 명절 선물을 배달해야 하고, 크고 작은 심부름을 처리하는 남편을 볼 때면, 아들 딸을 SKY에 보낸 엄마들 사이에 끼여 팔딱거리는 거와 별반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괜한 연민에 그저 할 말이 없어질뿐이다. (다행히 아들은 고등학교 입학 전이다)
도시락 두 개를 싸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정교하게 칼집 낸 비엔나소시지를 볼 때마다 무한한 지지를 받고 있음을 난 느꼈다. 그래서 나 또한 소리 없는 응원을 그에게 보내려고 한다.
이를테면 60수 트렁크와 러닝 그리고 검은색 신사 양말을 부족하지 않게 준비한다거나, 벗어놓은 구두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계란 프라이를 2개 구워주는식의 조촐한 응원.
전세 대출 이자를 걱정하는 소시민의 평범한 불행이 비교의 잣대를 겨누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가혹함이 된다. 가혹함이 일상을 넘보려 할 때마다 우리만의 소소한 의식을 치른다. 서로의 미래와 꿈을 부끄럼없이 이야기한다.
줄 것이라곤 직접 농사지은 고구마와 품삯으로 얻은 사과 한 상자뿐이라며 미안해하는 시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길이면 두 아들의 코 고는 소리 사이로 각자의 미래와 꿈을 나눈다.
졸음을 피하기 위해서라지만 남편은 유독 이 시간을 기다리는 듯하다.
"고객이 나에게 1조를 맡기더라도, 난 그 돈을 관리해 줄 자신이 있어."
그는 자산의 대부분을 주식에 투자하며, 경험을 통해 잃지 않는 투자 원칙을 발견했다. 단 기간에 수 십배를 불리기를 원하는 고객의 돈이 아니라면, 맡은 금액이 얼마인지는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고를 덧붙이며.
자산관리 업무를 맡기 전부터 남편은 투자 고전을 읽으며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쌓았다. 공부로 끝나기만 했으면 경험치를 쌓지 못했을 텐데, 아내를 잘 만난 덕분에(자랑 좀 했습니다.) 집 판돈으로 주식을 샀다. ( 첫 책, 우리 아이 주식부자 만들기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소형 아파트 투자와 더불어 미국 주식, 중국 주식, 국내 주식, 배당주 등 골고루 투자해 본 경험이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유치한 반항심에 그의 노력과 성공을 인정하려 들지 않은 적도 있다. 한 남자를 사랑해 결혼했지만, 남편의 출세를 염원할수록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곤 했기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느끼는 좌절감과 열등감을 드러내기가 수치스러웠다. 나의 얄팍한 투정에 가려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두 아들이 자라는 동안 내 남편도 크고 있었단 걸.
그는 가진 사람들 틈에서 기죽지 않는 법, 자신의 위치에서 당당해지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돈 관리를 한다는 이유로 돈 이외 것도 의지하던 나 또한 변해갔다. 어디서나 '나'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 된 후로는 그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일이(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오늘은 또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한 얘기를 들어야 할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여야 할지. 받기 싫은 전화를 몇 통이나 받아야 할지를 생각하며 출근하는 남편의 어깨를 체크한다. 혹여 좁아지거나 쳐지진 않았는지를.
울며 겨자 먹기로 나간 아들의 반 모임에서 '회장님, 나이스 샷'을 외치는 남편을 생각한다. 다른 공간, 같은 마음으로 한층 더 비장해짐을 느낀다.
사소한 일에 의기소침해지는 대신, 사소한 일에 위로받을 수 있는 우리가 꽤 건강한 영혼임을 자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