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책장을 기웃거렸다.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은 책 한 권이 눈에 띈다. 작년 봄,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에 문장을 옮겨 적으며 한 줄 한 줄 머물며 읽었던 <김승호 회장의 돈의 속성>이다.
'야, 너도 부자가 될 수 있어.' 야나두를 떠올리게 하는 수많은 재테크 책 가운데 '돈'에 대한 철학을 말하는 몇 안 되는 책. 2년 만에 꺼내 본 책에서 유독 두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돈은 인격체다.' '돈에도 품성이 있다.'
'그래 맞아, 어린이에게도 이런 책이 필요한데.'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는 걸 허락하지 않는 시대란 걸 알면서도 부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은 연령을 불문하고 늘고 있다. 그래서일까? 코로나 이후 투자시장 열기를 반영한 성인용 재테크 서적이 쏟아졌다. 덩달아 아동용 투자 수업과 경제동화도 눈에 띄게 늘었다.
어른들이 읽는 재테크 책은 단기간 동안 얼마를 벌 수 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혼과 노후준비 그리고 생활비를 당장 벌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절실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아이들에게도 굳이 필요할까? 남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모으는 것이 경제, 투자교육의 핵심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뇌를 침범할까 두렵다. 주식을 사고파는 스킬을 일찍이 예습한다고 부자가 되는 건 아닐뿐더러 그 돈으로 행복한 인생을 산다는 보장도 없다. 그럼 고도화된 자본주의 시대, 아이들에게 필요한 책은 뭘까?
돈의 속성처럼 '돈'에 대한 올바른 마인드를 잡아주는 책이 아닐까?
'비슷한 느낌의 어린이 책이 있었는데...... 난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아들의 책장을 뒤적거렸다. 아들이 읽기는 아직 어렵겠다며 쓱 치워둔 책 하나가 눈에 띄었다.
'맞아, 바로 이 책이었어.'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남편이 유명한 사람(보도 새퍼)이 쓴 책이니 읽어보라고 주문한 책이었다. 말하는 강아지가 나오는, 심지어 열두 살 소녀가 그 강아지를 돌봐주고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국내 정서와 맞지 않는 허황된 이야기를 하는 책이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뒤로 넘길수록 가슴에 찌릿한 전율을 느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려는 일을 정확하게 모른단다. 그저 더 많이 하려고 하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 얻을 수 있는 게 없단다.'
'돈은 마음으로 준비된 자에게만 오래 머물게 돼 있단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안다는 게 사실 어렵지 않은가. 10대 때 꾸지 못한 꿈을 50대 정년을 앞두고는 가능할까. 안정된 직장이 꿈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최근 2~3년 차 공무원 퇴사율이 최대치라 한다) 꿈을 향한 도전도 경험해본 사람이 두세 번 더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의 꿈은 직업이 아닌 반짝이는 행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진화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투자는 그러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충분하다.
키라처럼 한국의 철수, 영희도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고 관리하며 꿈에 대한 자신감도 기를 수 있다면?
그런 이야기를 쓴다면......
그러고 보니 첫째도 용돈을 벌어보겠다며 요리를 한 적이 있다. 아이스크림 심부름, 세차, 중고책을 팔기도 하면서. 번 돈으로 사고 싶었던 물건(굿즈)을 사고, 친구들과 야구장을 가기도 했다.
아는 이모 블로그 글 중
용돈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블로그에 적어둔 것이 기억났다.
'그래, 이거야'
드디어 무엇을 쓸지 아니, 쓸 수 있을지 가닥이 잡혔다. 두 아들과의 에피소드가 내가 쓸 동화의 기둥이 될 줄이야. 기둥에서 가지가 뻗어나가 어떤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릴지, 알 수없는 설렘에 가슴이 쿵쾅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