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살 아들의 단골 문구점 이야기
아저씨 문구점 또는 파란 간판 문구점이라 불리는 곳, 학교 앞 상가 구석진 곳에 자리한 '골드 문구서적'은 아들의 단골 문구점이다.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의 아들은 용돈을 받고 나서부터 입이 터지기 시작했다. 모기만 한 목소리로 '이거 얼마예요?'라 묻던 아들은 북적이는 아이들 틈에서 목소리를 키웠다.
아들은 내가 궁금하지 않은, 골드 문구점의 신제품 입고 현황이라든지, 요즘 인기 있는 뽑기와 카드, 그리고 슬러쉬 종류와 가격 등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늘어놓았다. 골드문구 아저씨의 서비스 정신과 근황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엄마, 골드 문구점 아저씨는 우리랑 말장난도 한다."
"말장난?"
"응, 내가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물어보면, 아저씨는
"오"
"오?"
"오"
"오백 원요?"
...
"아저씨 이건 얼마예요?"
"팔"
"백 원"(이젠 감 잡았다는 듯)
"팔"
"백 원"
"팔백 원"
골드문구 아저씨의 서비스 정신은 말장난뿐만은 아니었다. 기분대로 하나 더 증정 이벤트는 물론, 단골고객이 원할 경우 외상과 특별 할인도 해주었다.
얼마 전에는 '개인사정 상 3일 간 문을 닫습니다.'라는 메모를 보고 와서는 골드문구 아저씨의 안위를 걱정하기까지 했다. 며칠 뒤, 아들은 아저씨의 행방을 증명하는 간식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주며 미소를 지었다.
'울릉도 호박엿'
아들은 태어나서 두 번째로 엿을 맛본다며 쩝쩝 거리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아저씨는 울릉도에서 찍은 사진을 계산대 옆에 떡하니 붙여 두고는 "너네는 울릉도 안 가봤지?"라 으스대며 자랑했다고 한다.
저녁을 먹다 아들은 "엄마, 아마도 골드문구 아저씨가 상가 주인인 것 같아."라는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입구 커피 자판기부터 상가 화장실까지 청소를 하는 사람은 골드 문구 아저씨뿐이라며 '방귀야 놀자' 무인 문구점 아저씨와도 이야기해봤다고 말했다.
아들은 검도관 가기 전 종종 방귀야 놀 자에 들러 군것질을 하며 주인아저씨와 수다를 떨었던 모양이다.
여름에 개업한 무인 문구점 '방구야 놀자'.
간판에 떡하니 무인 문구점이라 적혀있지만 사실 '무인'이 아닌 '유인'에 가까운 곳.
아들은 방구야 놀자 아저씨와 아마 이런 얘기를 주고받은 듯하다.
"아저씨는 왜 무인 문구점을 차려놓고 왜 가게에 나와 있어요?"
"내가 예전에 축구를 좋아했거든, 우리 아들도 날 닮아서 축구를 좋아해. 아들이 다니는 축구교실이 이 근처라 수업이 끝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곤 하지. 물건도 정리할 겸."
"아! 혹시 그 축구교실 **클럽이에요? 내 친구도 거기 다니는 데. 참, 아저씨 골드 문구점에는 알감자칩을 300원에 팔아요."
"그래? 이거 도매가가 300원인데, 어떻게 300원에 팔지?"
"도매가가 뭐예요?"
"큰 시장에서 대량으로 구매할 때 사 오는 가격이야, 여기서 파는 가격보다 싸지."
"아, 그렇구나. 그래서 애들이 알감자칩은 여기서 안 사요."
"그렇게 싸게 팔면 남는 게 없을 텐데, 혹시 골드 문구점은 사장님이 가게 주인인가?"
탐정이라도 된 듯 엄지와 검지를 턱 밑에 받치고 눈을 가늘게 뜬 아들은 밥을 세 숟갈 남겨놓고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음...... 월세를 안 내니까 물건을 싸게 팔 수 있고, 자기 가게니까 청소도 더 열심히 하시는 거겠지. 그리고 그 자판기도 아마 골드 문구 아저씨 것 일 거야. 그러고 보니, 아저씨 와! 부자다."
아들은 연달아 질문을 쏟아냈다. '상가 월세는 보통 얼마쯤 하는지, 보증금이 뭔지, 권리금이 뭔지'를. 남편과 난 대답을 해주느라 서늘히 식은 밥을 먹어야만 했다.
아들은 남편과 내가 궁금해하지 않은 이야기를 또 한 번 늘어놓았다. 간식거리 사거나 뽑기를 할 때는 보통 골드 문구점을 이용하고, 문제집을 사거나 노트를 살 때는 포인트를 적립해 주는 **문구점을 가고, 재미로 구경 가거나 약속을 정할 땐 방귀야 놀자 문구점에서 애들과 만난다고.
수다스러운 아들 덕에 동네 문구점의 상권분석과 경영 노하우를 접했다. 용돈으로 세상을 경험 중인 아들. 나도 모르는 새 활동 반경을 넓히며, 가르쳐 주지 않는 것들을 알아내며 아들은 자라고 있었다.
불현듯 집, 학교, 학원이 아닌 곳에서 아들은 어떤 어른을 만나왔는지가 궁금했다.
아들의 눈에 그들은 어떻게 비쳤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바람으로 이어졌다.
각박한 세상에 찌든 어른 대신 궁금하고 재밌는 세상이니 살아 볼만한 하다 말하는 어른을 만났으면,
살아가는 힘은 포인트 핵심정리나 스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깨너머 마음으로 배우는 것에 있다고,
호의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어린 순수함을 지켜주는, 희망을 자극하는 어른을 만났으면 한다.
상냥하고 다정한 어른이 될 것을 다짐해 본다.
부디 나만의 바람들이 아니길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