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아이를 깨우면서 시작되는 아침 일상. 밥솥에 취사 버튼을 누르고, 학교에 가지고 갈 수저와 물통을 챙긴다. 간단하게 반찬을 준비하고, 아이가 학교에 입고 갈 옷을 꺼내 놓고 나도 얼른 ‘세수’란 걸 한다. (물 묻힘이 맞겠다) 로션을 바르며 아이가 식탁에서 눈을 뜨고 밥숟갈을 뜨는지 지켜본다. 남편이 출근하면, 아이들도 옷을 입기 시작한다. 준비물은 없는지 오늘 일정은 어떠한지 서로 이야기하고, 첫째가 먼저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선다.
둘째가 양치를 하고 옷을 입는 동안, 난 아침을 먹는다. 둘째의 배변 활동이 시작되면 그땐 내가 칫솔을 물고 옷을 챙겨 입는다. 변기에 앉은 채로 조잘대는 둘째에게 어서 나오라는 말을 하며, 노트북과 읽을 책을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나란히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선다.
“오늘은 어디까지 데려다줄 거야?”
혼자 가고 싶은 마음과 혼자 가기 싫은 마음이 공존하는 녀석의 마음을 난 잘 알고 있다.
“어디까지 데려다줄까? 오늘은 치킨집까지?”
학교 정문까지 꼭 데려다 달라던 녀석은 엄마를 위해서 약간의 용기를 냈다.
“아니야, 엄마 빨리 가야 하니까, 오늘은 커피집까지.”
커피집 앞에서 손을 흔들며 둘째를 보낸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을 건너야 하는 구간이라 아이의 뒷모습을 꽤 오랫동안 지켜본 후에야 등을 돌린다.
작은 아이가 더 작아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
걸음마가 느려 걱정이던 때가 있었다. 친구들 사이로 총총 뛰어가는 녀석의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라는 존재는 매 순간 새롭게 생산되는 ‘걱정’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뉴스를 들으며 파워워킹을 해본다. 뉴스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계절을 잘 버무려놓은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 스타벅스 간판이 조그맣게 모이면 앱을 켜 즐겨 마시는 커피를 주문한다.
‘OO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준비됐습니다.’란 목소리가 문을 열자마자 들린다. 오늘도 나이스 타이밍이라며, 커피를 받아 3층 창가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는다. 홀로 책을 읽는 여인들이 보인다. 나와 비슷한 부류의 여인들에게 다가가 ‘읽고 있는 책이 뭐예요? 일주일에 몇 번 정도 여기 오세요? 나오니까 좋죠?’ 오지랖 방귀를 뀌고 싶지만 참기로 한다.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묻는다.
‘오늘은 뭐부터 할까?’
얼마 전부터, 일이 엉킨 채 들어와 풀어내느라 용을 쓰고 있다. 강의안을 만들다 원고를 쓰고, 교정을 본다.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싶지만, 매번 버벅거린다. 뭘 빠트리고, 다시 만들고, 또 고치는 게 일상이다.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실린 첫 책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아직도 그 책을 볼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든다. 만약 2쇄를 찍게 되면, 표지에 있는 얼굴은 꼭 빼달라고 말해 볼 것이다. (2쇄를 찍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찌질함이 있다. 작은 내가 더 작은 나를 붙잡고 늘어진다. 찰기 적당한 밥을 짓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보며 누군가의 생명 연장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이다. 주방에서, 모니터 앞에서 난 시시때때로 주저앉는다. 작은 마음이 된 나를 자주 탓한다. 그럴 땐 ‘아-몰라 저녁은 찬밥에 라면이야,’라고 외치며 털어낼 궁리도 해본다. 반복되는 삶의 고단함 속에서 매번 다른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비슷한 듯 다른 날들을 버티기 위해. 작은 나를 키우며 남은 생을 늙어갈 준비를 한다.
누구든지 간에 매 순간의 ‘인정’은 필요하다며. 그 누구도 알아봐 주지 않는다면, 내가 알면 된다고. 내가 나를 인정해 주자고. 나의 감정과 노력, 이렇게 될 수밖에 없던 상황들을.
혼자서 호로록 커피를 마시며 생각한다. 오늘도 늘어짐을 뿌리치고 집 밖으로 나오길 잘했다고. 나만의 시간에 나만의 공간을 찾은 널 칭찬한다고. 밥을 하든 글을 쓰든 간에 살기 위해 애쓰는 네가 대단하다고. 그러면서 치사하고 찌질한 나를 잠시 꺼둔다. 펜을 든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우아해진 나를 밝힌다. 식은 커피마저도 달콤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