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콩팥이 두 개인 이유
책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은 신장 투석으로 삶이 메말라가고 있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콩팥 하나를 떼어 주는 감동 스토리다. 작가가 인용한 첫 사람 아담이 자신의 갈빗대로 만들어진 아내를 향해 최고의 사랑 고백을 한다 "네 살 중에 살이요 뼈 중에 뼈로다"의 고백을 이제는 남편에게 자신의 콩팥 하나를 떼어주며 전하고 있다. 사실 이 고백은 나에게도 특별하다. 아내에게 프러포즈할 때 플랜카드에 적었던 문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백은 살면서 가벼워졌고 희미해졌다.
인생은 자신을 내어주고 다른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보다 성숙해지고 충만한 자유를 얻는다. 기꺼이 내어주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며, 사랑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이리라.
저자의 간병생활과 이식 전후의 기록들은 우리 부부생활을 돌아보는 계기를 허락했다. 1년 간의 육아휴직을 마무리하고 3월에 복직을 앞두고 있다. 때문에 하루하루를 무언가에 쫓겨 분주하게 살고 있었다. 그 사이 아내는 남편의 빈자리를 느끼며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고 아이들과의 시간도 비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저자의 이야기는 분주한 내 마음을 내려놓고 아내를 향해했던 고백을 떠올리게 했다. 육아휴직의 유일한 목표였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은 나에게 삶 속에 숨겨진 보물들을 찾아보라고 잠시 나를 멈추어 세웠다.
오지 않는 행운에 들뜨지 않는 것처럼, 닥치지 않는 불행에 대해 불안해할 일도 아니다. 그러니 미래에 대한 근심을 섣불리 맘에 두지 않아야 하리라. 지금, 여기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그동안 성조의 투병을 지키며 익혀온 신조다.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쁘게 살아가는 인간에게 '질병'은 그야말로 브레이크다. 그제야 질병으로 멈추어 선 모든 일상을 다시금 조명해 보게 된다. 언제일지 모르는 생애 종말을 떠올리고 주변을 살피게 된다. 끝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인간은 모두 헛 똑똑이다. 홀연히 맞닥뜨린 개인적 종말 앞에 헛 똑똑이로 인생이 끝나느니 아프고 괴롭지만 질병이라는 브레이크가 걸리고 '뭣이 중한지'를 생각해 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도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도 헛 똑똑이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성조 곁에서 네댓 시간 동안 걸러지는 핏줄에 몸을 맡긴 투석 환우를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이 오갔다. 오래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늙고 병들고 마침내 생을 마치는 것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숙면이며, 살아온 날의 양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이 인생의 척도가 될 수는 있겠다. 나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행복으로 채워졌다면, 내가 이 땅에 온 의미를 그런대로 뿌리내린 것이라고 절로 중얼거리곤 한다.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를 통해 신장투석 환자와 가족의 삶을 알게 되었다. 나도 장애인을 일상에서 만나는 치료사 사람이다. 그들의 삶도 장애를 겪어 보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낯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의 삶, 특히 일상을 빼앗긴 이들의 삶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언제 입장이 바뀔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에게 당연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간절히 바라던 하루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의 평범한 일상에 감사해야 한다.
어떤 시련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을 지탱하는 게 세상이고 삶이다.
외모나 아파트 평수를 최고의 잣대로 삼거나 금수저에 대한 나른한 몽상에 빠진 현대인들이 깨우쳐야 할 진실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고 사랑이라는 것이다.
기적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몸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깊이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 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의 내면은 단단하고 아름다우며, 기적은 그 순수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때 얻어지는 열매일 것이다.
고맙다는 말은 또 얼마나 어여쁜 말인가. 고맙다는 말은 말간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 마냥 포근하다. 입술에 번진 미소가 귀로 찾아드는 진심의 팡파르다. 고맙다는 말도 많이 하고 살아가야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바람이 지나는 길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부부지간이라도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부모 노릇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추측대로 상대방을 속단해서도 안 될 것이다. 부부가 아니더라도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되는 대상이 사람이다.
간병인으로서 아픈이들을 바라보면서 저자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았다.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가치를 선명하게 보았다. 자신의 몸을 주고도 생색보다는 상대를 향한 배려와 존중이 이어져야 사랑임을 가르쳐준다. 보여지는 일상이 기적이었음을 체험으로 증언한다. 가장 가까운 부부라도 '존중'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해준다.
막연히 해피엔딩으로 기대했다가 끝에 일어난 저자의 골수암 진단은 충격이었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다. 단정지을 수 없고 단언할 수 없다. 인간의 한계를 되짚으며 신적인 영역 안에서 나를 오로지 발견하고 주어진 현실에서 나에게 주어진 길을 뚜벅이처럼 걸어가는 것 뿐이다.
저자분의 투병생활도 남편의 간병을 힘입어 잘 이겨내시길 응원한다. 지나오기 쉽지 않았을 인생의 묵직한 경험을 용기내어 나눠주어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이 책은 @bookmessenger에게 제공받아 서평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