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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업공방 디렉터 Apr 09. 2021

[육아 일기] 딸내미와 친해진 이틀을 돌아봤어요

여자 사람과의 관계는 정원 가꾸기와 같다

그제는 딸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딸이 더 어렸을 때도 육아휴직 때도 수없이 읽어주었던 책인데 퇴근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를 찾아와 책을 읽어 달라고 했다. (엄마는 저녁 준비로 어려워 아빠한테 가라고 한 모양이다)


"1분 뒤에 읽어줄게. 소파에 가 있어." 하고 부랴부랴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3분이 지났을까 5분이 지났을까 할 일은 언제나 넘치니 잠시 멈추자 생각하고 딸을 찾았다. 딸은 아빠가 진짜 올까 싶었는지 책을 놓고 다른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빠가 책 읽어줄게. 가져와~" 이러니까 표정이 밝아지고 금새 책을 가지고 와 옆에 앉는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책을 읽어가는 데 아주 사소하게 넘겨질 주인공 캐릭터의 인형 입장에서 지금 이 인형이 주인공 캐릭터의 못난 행동에 대해 어떤 마음이었겠는지를 재잘재잘 이야기한다. 수없이 읽어 보았지만 이런 반응은 처음이다. 그사이 이렇게 많이 컸나 싶은 생각에 (기분이 업 되어) 저녁 준비를 하는 아내에게 막 이야기를 했다. (딸은 자기 칭찬인 줄 알고 가만히 듣는다) 그 뒤로 책장을 다 넘길 때까지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 아니 더 강화되었다.


그리고 저녁 시간은 평소와 달리 매우 평화로웠다. 최근 몇 달 사이 딸의 투정과 반항 그리고 사소한 일에 울음으로 응대하는 모습에 아내도 나도 지쳐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 저녁의 작은 일상이 새로운 자각을 주었던 것 같다.


어제도 퇴근하니 딸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종이접기를 하자며 나를 끌어당긴다. 솔직히 약간 귀찮았지만, 어제의 신선한 충격이 나쁘지 않았기에 흐름에 맡겼다. 간단히 완성할 수 있는 종이접기를 하니 역시 딸내미 표정이 좋아졌다. 저녁을 먹고 나니 아빠랑 놀고 싶다고 아까 접은 새와 나비를 가지고 놀자고 침대방으로 데리고 간다.


아빠가 재워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딸내미 옆에 누워 있다가 11시 전에 잠이 들어 푹 자고 4시 40분 즈음 일어났다. 근데 딸은 안방으로 가버리고 없다. (아마 아빠 때문에 잠자리가 좁아서 갔나 싶다)


딸에게 책을 읽어주고 종이접기하고 같이 놀이를 했던 것이 즐거웠다. 지금 딸은 아빠랑 놀고 싶어 하고 그래서 아빠를 기다린다. 그런데 이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불만이 쌓이고 사소한 일에 징징대는 사람이 되는 원인이 되는 것 같다.


이틀 동안 깨달은 바다. 아내를 포함해 여자 사람과의 관계는 정원 가꾸기다. 하루에 몰빵 좋은 걸 사주고 해서 될 게 아니다. 꾸준히 사소한 관심과 애정의 물을 뿌려주고 가꾸어야만 탄탄한 관계가 형성되고 그 만족은 고스란히 나의 행복감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이틀 동안 딸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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