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에 '의미'를 부여될 때 그 일과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생동한다.
최근 원하지 않는 감투를 쓰게 되었다. 병원 상조회 회장 자리다. 네 명의 후보가 추천되었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어느 하나 할만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나는 내 사정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개인 사정'이라고 적었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개인 사정이라는 두루뭉술한 개인 사정을 직원들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선이 확실해지고 며칠을 깊은 한숨으로 보냈다. 출근하는데 발걸음이 무겁고 즐겁지가 않았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한숨이 연거푸 나왔다. 그렇게 몰아 쉬어도 속이 답답했다. 잠도 잘 못 자고 소화도 안되었다. 시간은 이런 나의 속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간다. 신년이 첫 주가 되면 임기가 시작되니 함께 일할 임원을 뽑아야 했다. 내가 사정을 해야 할 상황인가? 추천도 받아보고 제안도 해보지만 누구 하나 긍정적으로 응해주지 않는다. 그럴 때마나 온몸에 힘이 빠지고 회의감이 몰려온다. 자신감도 없어진다. 다행히 같은 팀 후임 중에서 내 제안을 받아준 이가 있어 마음이 추스러졌고 또 한 명이 수락해왔다. 아직도 한 명의 임원을 더 뽑아야 하는데 오늘도 두 번이나 거절을 당했다. 예전에 벧엘 회장을 맡은 모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니 그때 거절했던 사람들 이름이 너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고 한다. 이거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한 주가 지나고)
나는 이일에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하는지를 하루에도 여러 번 묻고 있다. 의미 없이 하는 일만큼 괴로운 게 없다. 올해 계획을 다 세워둔 시점에 계획에도 없던 일을 맡았으니 할 수 없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나는 이 자리를 고사할 자신이 없다. 아니 그럴 수 없다. 내 사정을 거둬두고 나면 이 병원이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의 첫 직장이고 여기에서 나의 작업치료사로서 경험이 쌓였고 그게 나의 더 확고한 신념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벧엘 회장의 섬김을 받았고 누렸다. 그에 대한 보답도 내가 이 자리를 눈딱 감고 거절할 수 없는 이유이다. 내가 거절하면 누군가는 더 고통스럽게 이 자리를 감내해야 한다.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이 자리를 감당할 것인지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다행히 임원 한 사람이 더 합류하기로 해서 회장단이 꾸려졌다. (10번 이상 거절을 당하면서 밀려오는 회의감과 싸워야 했다) 이제는 할 수 있는 이유, 내가 해야 하는 이유를 함께 동역해주기로 한 사람들에게서 찾고 있다. 거절 메시지를 받으며 회의감과 싸우던 것보다 훨씬 마음은 가벼워졌다. 그러나 아직 '잘' 하겠다는 말은 안 나온다. 우선 해야 할 일을 실수 없이 하는 것에서 시작할 생각이다. 이후에 일을 하다가 이 일에 대한 '의미'를 더 발견하게 된다면 그래서 마음이 무언가 더 하고 싶어 진다면 그때 '더' 할 생각이다. 등 떠밀려서 의무감에 억지로 하고 싶지 않다. 바라기는 의무감을 뛰어넘어 '의미'를 풍성하게 발견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즐겁게 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마음의 동기를 살피며 행동을 조절하는 것. 자신만의 인생을 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술이다.